식음료 가격 인상기 틈타 오너 일가도 고배당 ‘펑펑’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5 10:05
  • 호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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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식품·이디야 등 과도한 오너 배당금 뒷말
원가 상승 핑계로 결국 오너 일가 배만 불렸나
전문가들 “관련 당국도 소비자에 책임 전가 면밀히 살펴야”

정부가 최근 주류업계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물론이고, 국세청과 공정위까지 팔을 걷어붙인 상태다. “필요하다면 주류업계의 이익 규모나 경쟁 구도까지 살피겠다”고 엄포를 놨다. ‘소주값 6000원’ 시대를 막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국세청은 최근 비공개 간담회에 주류업계 임원들을 초청해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주류업계의 반응은 정부와 다르다. “가격 인상을 발표한 적 없고, 인상 계획도 없는데 정부가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성토한다. 익명을 요구한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소주 가격은 제조사의 출고가뿐 아니라 세금, 유통 비용 등이 붙어 형성된다”면서 “제조사가 가격 인상의 원흉이라는 식의 분위기를 정부가 조성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식품업계가 최근 경쟁적으로 제품 가격을 인상하면서 소비자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사진은 마트에서 맥심 커피믹스를 살펴보는 한 소비자와 이디야 커피 매장.(왼쪽부터) ⓒ연합뉴스․이디야 제공 

라면에서 커피까지 도미노 가격 인상 우려

정부의 실태조사는 최근 가격을 올리고 있는 식음료업계에 대한 일종의 ‘경고’가 아니겠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식품 및 음료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해 왔다. 간담회도 여러 차례 가졌다. 그럼에도 식음료 가격은 최근 몇 년간 상승을 거듭했다. 커피와 라면, 햄버거, 과자, 아이스크림, 빵, 음료수 등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와 직결되는 품목이 대부분 올랐다.

특히 가공식품의 경우 ‘1년에 한 번 올린다’는 업계 불문율마저 깨진 상태다. 적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에 한 번씩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일부 기업은 1년여 만에 세 차례나 가격을 인상하기도 했다. 장바구니 물가 상승으로 인한 비난의 화살이 정부에 쏠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정부가 최근 주류업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는데, 실제 타깃은 식음료업계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래서일까. ‘정부 눈치보기’를 하던 일부 기업은 최근 가격 인상 계획을 연기하거나, 아예 철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들이 자사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여파로 원가가 상승하고, 인건비와 물류비, 연료비 등이 증가한 만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하지만 일부 기업의 상황은 다르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면서 물가 상승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뒤로는 고배당을 통해 오너 일가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동서식품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현재 국내 커피믹스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매년 1조5000억원 안팎의 매출과 20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는 알짜 회사다. 이 이익은 매년 배당금 형식으로 주주들에게 전해진다. 2021년 배당액은 1160억원. 당기순이익(1631억원)의 71%에 이른다. 현재 동서식품 주주는 (주)동서와 몬델리즈 홀딩스 싱가포르로, 각각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두 회사가 800억원대 배당금을 나눠 가졌다는 얘기가 된다.

문제는 동서식품이 최근 커피 가격을 잇달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식품은 지난해 1월과 12월 두 번에 걸쳐 제품 출고가를 인상했다. 인상률은 각각 평균 7.3%와 9.8%다. 덕분에 ‘국민 커피’로 불리는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12g) 가격은 1만1310원에서 1만3330원으로 11개월 만에 17.8%나 올랐다. 카누 아메리카노(90g) 역시 2610원(17.8%) 상승한 1만7260원에 판매되고 있다. 동서식품의 가격 인상을 두고 ‘국부 유출’ 논란이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동서식품의 경우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을 국내에 재투자하기보다 배당 형식으로 상당 부분 해외로 내보낸다”면서 “가격 인상도 그렇고, 배당도 그렇고 소비자들을 돈벌이에 악용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시사저널 박정훈
식료품·가공식품 등의 가격이 잇따라 인상된 가운데 3월1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어쩔 수 없는 가격 인상이었다고?

동서식품 대주주는 (주)동서다. 동서식품에서 배당받은 돈으로 곳간을 채운 (주)동서도 매년 고배당을 하기로 유명하다. 2021년 배당금 지급액은 691억원이다. 당기순이익(1134억원)의 61%, 영업이익(383억원)의 180%에 이른다. 김상헌 전 동서그룹 회장과 김석수 전 동서식품 회장 등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이 현재 이 회사의 지분 66.8%를 나눠 갖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오너 일가 등은 지난해에만 460억원 이상의 배당금을 수취한 셈이 된다. 지난해 두 차례 가격을 올렸지만 배당금은 720억원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배당 성향 역시 2019년 50.4%에서 2020년 59.0%, 2021년 60.9%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동서식품의 가격 인상을 두고 오너 일가의 주머니 불리기용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동서나 동서식품 측은 “어쩔 수 없는 가격 인상이었다”고 항변하다. 그룹 관계자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원두 가격이 상승하면서 회사 재정이 과거에 비해 악화되는 만큼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국부 유출 논란에 대해서도 회사 측은 “배당을 많이 하는 주주환원 정책은 좋은 것 아니냐”면서 “지난해 기준금리가 많이 올랐다. 리스크를 감안해 투자한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커피 프랜차이즈 이디야도 최근 잇달아 가격을 조정했다. 이디야는 지난해 10월 주요 제품 가격을 올린다고 발표했다. 인건비, 물류비, 원부자재값 인상 등의 여파로 제반 비용이 상승해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점주들의 반발로 이 계획은 이틀 만에 보류됐다. 이디야는 점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12월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 등 일부를 제외한 57개 음료 가격을 200~700원 인상한 것이다.

이디야도 매년 거액의 배당을 실시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이디야의 매출은 2434억원,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90억원, 16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8.7%, 34.8%, 45.5% 증가한 수치다. 그해 이디야는 중간배당(20억원)과 연차배당(25억원)을 합쳐 45억원을 배당했다. 전년(28억원) 대비 60.7% 증가한 금액이다. 그럼에도 이디야는 지난해 가격을 인상했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ESG 경영의 S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

이디야 측은 현재 고배당 논란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다. 기자의 해명 요구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고배당으로 전환된 시점이 하필 문창기 회장의 2세들에게 지분이 승계된 직후부터라는 점이다. 회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문 회장은 2012년과 2016년 장남인 승환씨와 차남인 지환씨에게 각각 6%와 2%의 지분을 증여했다. 이즈음 배당액은 5억원에서 22억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면서 “경영활동과 무관한 자녀들까지 고배당을 타갔다는 점에서 가격 인상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음식료업계의 도미노 가격 인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원가 상승으로 가격을 인상할 수는 있다. 이 경우 책임경영 차원에서 오너 일가에 대한 배당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유행하는 ESG 경영에서 S(Social)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의미한다는 점을 기업들이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사회적 역할이란 오너가 언론에 나와 연탄을 배달하거나 김치를 담그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업들이 모범적으로 선제적 역할을 해야 소비자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계속된 식음료 기업들의 가격 인상 도미노는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못했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그는 “기업은 물론이고 자영업자도 원가 인상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면서 “관련 당국 역시 가격을 올리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농심·오뚜기·삼양식품 오너 봉급도 ‘줄인상’

원가 상승과 실적 부진을 이유로 가격을 올린 곳은 라면업계도 마찬가지다. 농심과 오뚜기, 팔도, 삼양식품 등이 최근 가격을 올리거나 올릴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원재료 가격 상승, 높은 환율에 따른 수입 비용 부담 증가 등이 가격 인상 이유였다.

실제 라면 회사들은 2021년 다소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 시장점유율 1위 농심은 매출 2조6630억원, 영업이익 106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1년 전보다 0.9%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3.8%나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996억원으로 전년 대비 33.2%나 줄어들었다. 올 상반기 농심의 국내 기준 영업이익은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내기도 했다.

3분기를 거치며 4분기에는 농심의 실적이 회복세를 보였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6.4%, 47.3% 증가했다. 덕분에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추정치는 3조1291억원과 1122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7.5%, 5.7% 증가했다.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환율을 고려한 원부재료 부담은 올 1분기까지 영향을 미치겠지만 민감도는 낮아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서일까. 경영진의 봉급도 크게 늘어났다. 신동원 회장은 2021년 13억9415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2020년 10억5975만원보다 32%가량 증가한 액수다. 농심 측은 언론에 “직급 변동에 따른 급여 인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연봉도 7억3700만원으로, 대표이사 회장 직책으로 연봉을 받은 지난해 상반기(5억7645만원)에 비해 21% 증가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2021년 승진한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의 연봉도 크게 늘어났다. 김 부회장은 2018년 4월 횡령 혐의로 남편인 전인장 전 회장과 함께 검찰에 기소됐다. 계열사가 삼양식품에 납품한 포장박스 등을 페이퍼컴퍼니에 납품한 것처럼 꾸며 50여억원을 빼돌린 혐의였다. 재판에 넘겨진 김 부회장 부부는 2020년 1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받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해 10월 김 부회장은 총괄사장으로 경영에 복귀했고, 1년여 만에 다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 과정에서 김 부회장의 연봉은 2020년 4억4070만원에서 2021년 9억9797만원으로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연봉은 13억7530억원으로 또다시 크게 증가했다. 반기 성과급 5억5000만원이 반영된 결과다. 연말까지 하면 연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최근 1년2개월 동안 두 차례 가격을 올린 오뚜기 함영준 회장의 연봉도 소폭 증가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시선도 따가워지고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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