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수주 호황에도 웃지 못하는 K조선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1 15:05
  • 호수 17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빅3’ 3년치 물량 확보하고도 인력난에 쩔쩔매
외국인 근로자도 못 구해 노인·여성 공공근로인력까지 ‘영끌’

현장을 떠난 기술자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는 근로자들마저 떠나고 있다. 지금의 역대급 수주 호황도 반갑지만은 않다. 심각한 인력난 때문이다. 국적·나이·성별·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일할 의지만 있다면 당장 누구라도 필요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일감은 풍년인데 일손은 흉년이다. 2023년 한국 조선산업의 현주소다.

국내 조선 3사가 10년 만에 수주 ‘잭팟(jackpot)’을 터뜨렸다. 한국조선해양은 197척, 239억5000만 달러어치를 수주해 연간 수주 목표의 137.3%를 달성했다. 20억 달러를 수주한 삼성중공업은 8년간의 지속된 적자에서 탈피해 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 일감도 지난해보다 67% 증가했다. 그런데 마냥 웃을 수만 없다. 독(dock)은 가득 찼지만 배를 만들 기술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선업의 인력난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 종사자는 2014년 20만 명에서 지난해 9만 명으로 반 토막 났다. 현재도 부족한 인력이 1만4000명가량인데 2027년에는 4만3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문제 해결을 서두르지 않으면 인도 지연으로 발주업체에 거액의 보상금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놓일지도 모른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납기에 쫓기는 조선사들은 일감 일부를 중국 업체에 하청을 주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의 고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조선소 용접사들은 정년을 앞둔 50대가 대부분이다. 조선·해양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발표한 ‘인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선박 도장 인력 2786명 중 20대는 132명으로 전체의 4.7%, 30대는 428명으로 15.4%에 불과하다. 또 조선업이 ‘구직자가 기피하는 직종(31.5%)’ 1위로 꼽혔다. 이윤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은 “현장 인력 고령화로 K조선의 경쟁력 약화도 우려되지만 젊은이들이 자동차·전자 쪽으로 몰리면서 조선의 인력난이 더욱 가중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삼성중공업의 대형 선박 생산 현장 ⓒ경남도청
삼성중공업의 대형 선박 생산 현장 ⓒ경남도청

MZ세대 떠나고 조선업도 고령화

실제 3월2일 실시한 현대자동차 생산직 공개채용에 20·30대 지원자가 ‘폭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400명 모집에 3만 명이 넘었다. 현대중공업 근로자들도 현대차 공개채용에 대거 참여했다. 지금의 일이 업무 강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데도 현대차와 비교해 연봉이 최대 2000만원 정도 낮아서다. 조선업계 인력난은 다단계 하청 구조 탓도 크다. 1990년 조선 분야 생산직 중 하청 근로자 비율은 21%였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69%로 10명 중 7명이 하청 근로자다. 연간 근무일수는 원청이 180일, 하청은 270일이지만, 임금은 원청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고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내려가면 원청 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쳐 1년 안에 그만두는 사례가 허다하다. 또 조선 경기 침체 때마다 하청 근로자들은 혹독한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2014년부터 시작된 수주 가뭄은 그들을 길거리로 내몰았고 최근 조선 경기가 호황으로 돌아섰지만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경남 거제의 한 조선소는 환갑을 넘긴 고령자와 여성들까지 작업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MZ세대는 조선소 일을 기피하고 외국인 노동자도 구하기 어려워 나이·성별 따질 겨를도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울산의 한 조선 기자재 업체는 생산직 구인광고를 두 달째 내고 있지만 지원자가 없어 한 명도 뽑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일손이 달려 수주물량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 3사의 공정이 도크장 기준 계획으로 한두 달 지연되고 있다. 수주량 증가에도 현장 인력이 격감하는 역전 현상 때문이다. 업계 1위인 현대중공업 가동률이 62%에 그쳐 인력난의 심각성을 반영하고 있다. 지자체도 팔을 걷어붙였다. 거제시는 최근 신규 취업자에게 1000만원 안팎의 지원을 확정했다. 울산시도 이주 정착비 300만원에 거제와 비슷하게 현금성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조선사들도 장학금과 기숙사 무상 제공을 내걸고 ‘기술자 모시기’에 나섰지만 인력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공공근로 인력도 ‘러브콜’ 대상이다. 울산동구청은 최근 시니어클럽·현대미포조선협력사협의회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공공근로 일자리를 신청한 60세 이상 노인 2000여 명을 조선소에 취업시키기 위해서다. 이들은 안전 기본교육을 받고 생산현장에 배치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은 ‘전문여성인력 양성과정’을 운영하면서 여성 근로자 32명을 현장에 투입했다.

지자체와 업계의 ‘영끌’ 영입작전에 대해 노동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래서 정부가 꺼내든 특단의 카드가 ‘용병 투입’이다. 우선 외국인 용접공의 2년 경력 조건을 삭제했다. 입국 절차를 5주에서 10일로 단축했다. 기업별 외국 인력 허용 비율도 20%에서 30%로 높였다. 숙련기능인력(E-7-4)의 연간 쿼터도 2000명에서 5000명으로 확대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조선업 관련 특정활동(E-7)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 1595명 중 베트남인이 55.1%(880명)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태국(233명), 우즈베키스탄(200명), 인도네시아(82명), 인도(56명) 순이었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는 전체 인력의 10% 수준이다. 조선사 ‘빅3’는 올해 3000여 명의 외국인 인력을 추가로 채용할 계획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급한 불을 끄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버스에 타고 있다. ⓒ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버스에 타고 있다. ⓒ
❶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버스에 타고 있다. ❷ 태국 출신 선박 용접공 10명이 인천공항에 도착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태국 출신 선박 용접공 10명이 인천공항에 도착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

외국인 불법체류자 고용 위험도 감수

지난해 현대중공업에서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30여 명이 무단이탈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입사한 지 1~2주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소규모 2·3차 협력업체들은 ‘막장 고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경남 김해의 조선 기자재 업체 2곳에서 일하던 외국인 불법체류자 11명이 지난 2월 당국에 적발돼 강제출국 조치됐다. 회사 관계자는 “정상적인 취업비자(E-9) 외국인 인력 고용은 대형 조선사나 가능하지 중소업체에는 그림의 떡”이라며 “공장을 돌리기 위해선 이 같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조선업이 호황이던 시절 울산·거제·군산 등 조선소가 있는 지역의 소득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중국의 신규 수주 싹쓸이로 우리나라는 수주 절벽에 빠졌다. 조선 인력은 뿔뿔이 흩어졌고 지역경제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수년간 암흑기를 보낸 K조선이 10년 만의 ‘슈퍼 사이클’에 진입해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고, 국내 조선 ‘빅3’는 3년치 물량을 수주한 상태다. 하지만 인력난에 발목이 잡혔다. 지난 1월 기준 한국 조선사들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32.7%로 전년 동기(40%) 대비 하락세를 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은 46.6%에서 57.4%로 급등했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운반선의 중국 수주량은 1년 새 800%로 급성장했지만 우리는 73% 느는 데 그쳤다.

한때 세계 조선 시장을 지배했던 일본이 중국과 한국에 밀려 과거의 명성을 잃은 지 오래다. 현장 인력이 빠르게 감소했고 설계 인력이 고령화되면서 기술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조선업도 일본과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