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세무조사 줄인다더니 전방위 ‘세풍’에 재계 냉가슴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1 12:05
  • 호수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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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의 특수부’ 통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나서
쌍방울·이스타항공·대우건설 등 줄줄이 특별세무조사 

연초부터 국세청의 세풍(稅風)이 매섭다. ‘친기업’ 세정을 펼치겠다는 정부 기조와는 정반대로 국세청 직원이 들이닥치면서 기업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 속에서 세무조사를 축소하겠다던 국세청이 강경 모드로 돌아선 까닭은 무엇일까. 국세청 안팎에서는 사정 정국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권교체기마다 국세청은 검찰 등과 함께 사정의 칼날을 갈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50억원 뇌물 수수 혐의가 무죄 판결이 난 다음 날인 2월9일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이 연예인, 유튜버 등의 탈세 혐의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브리핑했다. ⓒ연합뉴스

검찰 수사 중인 친야권 기업, 국세청도 털어 

대표적인 게 국세청을 통한 ‘야권 사정’이다. 현재 국세청은 민주당 정치인이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쌍방울과 이스타항공을 상대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쌍방울은 자본시장법 위반 의혹과 미화 밀반출 의혹과 함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가 한창이다. 이런 와중에 국세청은 쌍방울을 비롯해 광림, 비비안, 미래산업, 아이오케이컴퍼니, 디모아 등 쌍방울 전 계열사를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스타항공도 비슷한 상황이다. 국세청은 지난 1월초 서울 강서구에 소재한 이스타항공 본사에 사전예고 없이 조사관들을 투입해 세무조사에 필요한 세무·화계 자료 등을 일괄 예치했다.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백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아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검찰은 이상직 전 의원이 실소유한 의혹이 있는 외국계 회사 대표를 최근 구속하면서 추가 수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이 수사 중인 기업을 상대로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한 건 이례적이라는 게 사정기관 안팎의 평가다. 검찰 수사 중인 기업의 부과제척기간 도래 등을 고려해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경우는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각종 이슈의 중심에 있는 기업들에 대해 세무조사를 하는 일은 흔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 수사 중인 기업들은 대부분 자료가 검찰청에 압수돼 세무조사에 실익도 없다. 또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기업을 상대로 국세청이 세무조사까지 동시에 진행한다는 건 기업에도 큰 부담이기 때문에 수사가 끝난 후에나 조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주목되는 사실은 ‘국세청의 특수부’로 통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두 기업을 세무조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4국은 탈세 또는 비자금 조성 혐의 등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전담하는 부서로 정기 세무조사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정기 세무조사 때는 2주 전 해당 업체에 통보하며, 조사 대상 회계연도는 통상 2~3년이다. 반면, 특별세무조사는 탈세 혐의가 특정될 때 해당 기업에 통보하지 않고 불시에 압수수색하는 형태로 조사에 들어가며, 조사 대상 회계연도도 4~5년으로 조사 강도가 한층 더 높다. 

일각에서는 조사4국이 쌍방울과 이스타항공 세무조사에 투입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권이 주도한 사정 정국 중심에는 늘 국세청 조사4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원했던 태광실업을 조사4국에서 심층 세무조사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경우 관할청인 부산지방국세청이 맡아야 하지만 조사가 서울청 조사4국으로 이관되면서, 정권 고위층의 하명조사 의혹 등이 불거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국세청이 이명박 정부 당시 수혜 기업으로 지목된 CJ와 롯데, 효성을 비롯해 포스코, KT&G 등을 표적 세무조사한다는 풍문이 정치권에서 끊이지 않았다.

ⓒ연합뉴스
김창기 국세청장이 2022년 10월12일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김 청장을 상대로 국세청이 정치적으로 세무조사를 한 게 아니냐고 맹공을 펼쳤다. ⓒ연합뉴스

호남 기업들의 국세청 흑역사 반복되나 

문재인 정부 때 승승장구했던 호남 기업들도 서울청 조사4국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중흥건설이 인수한 대우건설이다. 2월28일 국세청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대우건설 사옥에 조사요원 100여 명을 투입해 회계장부 등와 컴퓨터 등을 예치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세무조사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우건설 측은 3월 예정된 정기 세무조사가 조금 일찍 진행됐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2021년 대우건설을 인수한 중흥건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인수한 첫 회사의 세무조사가 조사4국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적지 않게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지난해 말 M&A로 급성장한 호남 기업 SM그룹에도 국세청 조사요원들이 들이닥쳤다. 당시 지주회사 삼라를 비롯해 계열사 티케이케미칼 대구 본사에 서울청 조사4국 인력이 투입돼 특별세무조사가 진행됐다. 특히 티케이케미칼은 지난 10년간 세무조사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주회사 삼라는 SM그룹 오너 일가 지배구조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탓에 국세청 세무조사에 이목이 쏠렸다. 

재계에서는 호남 기업과 국세청의 악연이 이참에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호남 기업들 역시 진보 정권에서 보수 정권으로 교체될 때마다 국세청의 주요 세무조사 타깃이 됐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는 호남 기업이 세무조사로 다 망했다는 뒷말이 나올 정도다. 2017년 정부광주지방합동청사에서 열린 광주지방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박준영 전 국민의당 의원은 “대주건설과 남양건설 등 지역에서 활동한 큰 기업들이 전부 세무조사로 망했거나 지금도 회사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특히 국세청 비정기 세무조사는 정치적 목적으로 비칠 수 있는 만큼 호남에서 세무조사로 회사가 망했다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공정한 세정을 바란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국세청의 이 같은 세무조사가 기업 경영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앞서 국세청은 경기 불황 속에서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올해 세무조사를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올해 세무조사 건수를 작년보다 400여 건 줄어든 1만3600건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기업들을 안심시켰다. 강민수 서울국세청장도 지난해 말 한 간담회에 참석해 “기업 세무조사 부담을 지속적으로 완화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잘못한 기업을 조사하고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범정부 차원에서 경제 살리기에 나선 상황에서 잇따라 기업에 과도한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이중적인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연예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정권에 불리한 이슈를 ‘물타기’ 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2월9일 국세청은 연예인과 운동선수, 유튜버 등 84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전날은 대장동 일당이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에게 지급한 퇴직금 50억원이 ‘뇌물’이 아니었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던 참이었다. 아울러 같은 날 배우 유아인이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면서, 이날 9시 뉴스를 장식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연예인들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아울러 이미 오래전부터 고소득자인 연예인과 유명 인사들에 대해 조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던 와중에 국세청발로 연예인 탈세 스캔들이 터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티즌 수사대와 각종 언론을 통해 이병헌, 김태희, 이민호 같은 스타 연예인들이 탈세 혐의로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쏟아지면서 이목이 쏠렸다. 이 때문에 사정기관들이 연예인 스캔들로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는 음모론이 다시 제기됐다. 

ⓒ시사저널 임준선·박정훈
탈세 혐의로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은 김태희와 이병헌 ⓒ시사저널 임준선·박정훈

연예인 탈세 스캔들에도 음모론 솔솔 

그동안 굵직한 정치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중의 관심을 끄는 연예계 스캔들이 불거지는 우연은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이른바 ‘BBK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나왔던 2011년 4월21일,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위자료 및 재산 분할’ 소송 기사가 대표적 사례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인 2014년 11월11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성접대 의혹으로 기소된 사건이 무혐의 판결이 나온 날, 유명 연예인들의 불법 스포츠 도박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정권 음모론’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다만, 이 같은 음모론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정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국세청과 검찰, 경찰은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강력하게 반영되는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런 정치적 오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죄가 있으면 처벌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주도하는 기획수사와 표적수사는 왜곡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대통령이 굳이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사정기관들이 알아서 ‘상납수사’를 하는 역사가 반복됐기 때문에 이런 음모론까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세청 관계자는 “엄중한 경제상황 속에서 세무조사는 신중해야 하고, 민생경제 회복과 민간중심 활력 제고를 위해 세정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는 국세청 입장은 변함이 없다. 다만, 공정한 경쟁과 사회적 연대를 해치는 탈세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는 것이 국세청의 책무이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 중인 기업을 세무조사 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업이 수사를 받고 있다는 상황이 세무조사 착수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국민이 국세청에 위임한 세무조사는 법에서 정한 부과제척기간 내에 공평한 과세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엄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세청을 둘러싼 음모론에 대해서는 “ 극히 일부의 몇몇 사례만을 모아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는 일부 시각은 옳지 않다. 국세청은 법률에 따라 개별 납세자의 과세 정보를 철저하고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다. 이는 국세공무원에게 금과옥조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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