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한반도에 ‘가을 폭염’ 잦고 겨울 사라진다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9 15:05
  • 호수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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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평균 기온, 온실가스 탓에 세계 평균보다 5배 빨리 상승
이미 한반도에 ‘기후 계엄령’ 선포된 상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이상고온현상’이 급격히 늘어나 40년 후에는 2021년과 같은 ‘가을 폭염’을 격년마다 겪게 된다.”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민승기 교수팀이 UNIST(울산과학기술원)·국립기상과학원·영국기상청과 공동 연구를 통해 내놓은 이 같은 결과가 최근 ‘미국기상학회보(Bulletin of the American Meteorological Society)’ 특별호에 소개됐다.

실제 2021년 10월 한반도에 유례없는 ‘가을 폭염’이 덮쳤다. 당시 평균기온은 19.9도로 평년보다 3.9도나 높았다. 수천 년에 한 번 정도 발생할 수 있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다. 남부지방은 10월 최고기온이 30도 이상이었다. 한여름 폭염을 일으키는 ‘기압 패턴’이 뒤늦게 나타나면서다. 2022년 11월에도 비슷한 강도의 이상고온현상이 관측됐다. 연구팀은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가을 폭염이 얼마나 더 잦아지는지 확률적으로 비교했다. 그 결과, 지금 수준의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하면 2060년대에는 2년마다 극단적 가을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파리협정 목표치대로 온실가스를 줄이면 가을 폭염이 30~40년에 한 번 정도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겨울이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는 걸까? 기상청이 장래 기상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마구 배출하고 살면 부산·대구·광주·울산·전북·전남·경남·제주 등 8곳은 금세기 후반기(2081~100년)에 겨울(92일)이 사라진다. 반면 봄의 시작은 3월6일에서 1월24일로 앞당겨지고, 6월1일부터 시작됐던 여름은 4월28일부터 시작된다.

ⓒ연합뉴스
제주도의 폭염과 열대야 발생일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급’ ‘이례적’ ‘기록적’ 기상이변 매년 반복

한국환경연구원 조사도 비슷하다. 2100년 여름은 지금보다 40∼64일 늘어나고, 겨울은 36∼47일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기관의 자료를 종합하면 60년 후에는 남부지방과 제주의 겨울이 사라지고, 80년 후에는 한반도 전역에 계절이 봄·여름·가을만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2070년 탄소중립 목표로 온실가스를 줄이면 겨울은 연중 50일 정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됐다. 

요즘처럼 비를 간절하게 기다렸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지난해 봄부터 시작된 가뭄의 긴 여정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지난해 겨울(2021년 12월∼2022년 2월) 전국 평균 강수량이 13.3mm로 1973년 관측 이래 가장 적었다. 이는 평년 강수량(89.0mm)의 14.7%에 불과했다. 특히 부산·울산·경남의 평균 강수량은 3.1mm로 평년(102.1mm)의 2.9%에 그쳤다. 기상청은 지난해 남부지방의 가뭄일수가 227일로 1974년 이래 가장 길었다고 밝혔다. 올겨울 강수량도 평년의 70% 수준이다. 

가뭄이 1년여 지속되면서 광주·전남의 최대 식수원인 주암호 본댐의 올해 2월 저수율 20%가 붕괴됐다. 합천댐 29.3%, 남강댐 34.5%, 밀양댐 61.3%로 경남 지역 식수댐 저수율도 예년보다 훨씬 낮다. 동해안 해수면 온도가 빠르게 높아지면서 저기압이 발달해 상대적으로 남부지방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남부지방은 타는 목마름에 기우제를 지내야 할 정도로 애를 태운 반면 중부지방에는 전대미문의 폭우가 쏟아졌다. 가뭄과 폭우는 반대 현상 같지만 기후변화의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다. 지구온난화로 수증기 증발량은 더욱 많아지고 대기권에 포화된 수증기는 물폭탄으로 변한다. 지난해 8월 서울엔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425mm)가 내렸다. 시우량(시간당 강우량) 141.5mm의 장대비가 쏟아진 것이다.

같은 날 인천에서도 하루 240mm의 폭우가 내렸다. 당시 수도권과 중부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사망 8명, 실종 6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후 이례적 경로로 올라온 초강력 태풍 ‘힌남노’가 남부지방을 휩쓸었다. 앞서 2020년에는 초강력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한반도를 덮쳤다. 기상관측 이래 최대 풍속의 태풍 5개가 모두 2000년대 들어 발생했다. 바다가 열을 받아 해수면이 뜨거워지면서 태풍의 몸집을 키운 것이다. 

우리나라에 슈퍼 태풍이 더 자주 올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구온난화로 태풍 경로가 우리나라로 향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해수부에 따르면 태풍의 최대 강도가 지난 41년간 31% 상승했고, 태풍 도달 위치도 육지 쪽에 가깝게 이동하고 있다. 

이제 한반도에는 ‘기후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나 다름없다. 지난겨울 영하 18도의 역대급 한파와 가뭄, 2022년 기록적인 폭우, 2021년 이례적인 가을장마, 2019년 최다 태풍, 2018년 최악의 폭염까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역대급’ ‘이례적’ ‘기록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기상이변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나라 밖도 기후변화의 진통을 톡톡히 겪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는 한파주의보와 폭염경보가 동시에 발령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초강력 허리케인 ‘이언’은 1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유럽은 500년 만에 최악의 폭염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기후가 요동치는 원인은 온실가스다.

ⓒ연합뉴스
남부지방에 가뭄이 계속되는 가운데 2월14일 전남 순천시 주암댐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국내 대기업들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추세

대기 중 99%는 질소(78.1%)와 산소(20.9%)로 구성돼 있다. 나머지 1%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메탄·수증기는 지구 표면을 온실처럼 감싸고 있어 온실가스(Greenhouse Gases)라 부른다. 지구 표면에 부딪친 햇빛의 70%는 흡수되고 30%는 반사돼 대기권 밖으로 나간다. 만약 온실가스가 없으면 햇빛이 모조리 빠져나가 지구 평균온도는 영하 18도 내려간다. 그런데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온실가스층을 너무 두텁게 만들어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지난 41년간(1980∼2021년) 1.4도 올라 세계 평균보다 5배 이상 빨리 상승했다. 지난 53년간(1968∼2020년) 우리나라 해역의 연평균 표층 수온도 1.2도 상승해 세계 평균 상승률(0.53도)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우리나라 1인당 탄소 배출량은 OECD 국가 중 5번째로 많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하고 있지만, 대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최근 3년(2018∼21) 사이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5.6% 줄어들었지만 50대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5.9% 늘어났다.

기업별로는 포스코(7848만 톤)가 가장 많았고, 현대제철(2849만 톤)·삼성전자(1449만 톤)·쌍용씨앤이(1061만 톤)·에쓰오일(1004만 톤) 등 순이었다. 3년 동안 증가율이 두드러진 기업은 삼성전자(34.5%)와 포스코(7.3%)였다. RE100 캠페인(재생에너지 100% 사용)이 세계적인 추세인 상황에서 국내 대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는 시대를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배출되면 길게는 수백 년간 머무르며 사라지지 않고 누적된다. 온실가스의 나비효과가 한반도 기후를 자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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