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일제 강제 징용’ 발판 삼아 위상 회복 시도하나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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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개선 위해 韓 재계 대표로 부각
‘김병준’ 등판 이후 뚜렷한 존재감 보여
4대 그룹 빠진 기금 조성과 국민 여론은 미지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병준 회장 권한대행 체제로 돌아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최근 행보가 심상치 않다. 정부의 ‘일제 강제 징용 해법안’이 나온 이후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는 탓이다. ‘강제 징용’을 계기로 재계의 맏형에서 국정농단 사태 연루로 급격히 위상이 추락했던 전경련이 다시금 부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재계 주요 총수들이 오는 17일 일본으로 집결할 전망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참석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16∼17일)에 맞춰 한·일 재계 고위 인사 간담회(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정부의 ‘강제 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안’ 제시로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외교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재계도 경제 협력을 고리로 동참하는 모양새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재계를 대표해 온 대한상공회의소도 이번 방일에선 한발 물러서며 전경련을 밀어주는 분위기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해당 간담회를 일본 기업단체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과 전경련이 주관한다는 점이다. 앞서 2017년을 전후해 삼성전자,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은 전경련을 탈퇴했다. 국정농단 과정에서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고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이번 간담회를 준비하며 전경련에서 탈퇴한 4대 그룹에 초청장을 보냈다. 기업들도 이를 수락했다. 그간 전경련과 거리를 뒀던 것과도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재계에서는 4대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이 경제단체로서의 위상 회복에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김병준 권한대행은 지난달 23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들로부터 지지 받는 전경련을 만들면 4대 그룹 뿐만 아니라 기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경련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을 향한 시선과 지위가 전보다 달라진다면 4대 그룹도 재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일 것”라며 “이런 상황에서 전경련 초청에 4대 그룹이 응한 것은 전경련 입장에선 반색할 만한 일”이라고 평했다.

이번 간담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이는 ‘미래청년기금’도 전경련과 게이단렌 주도 하에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지난 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강제 징용 배상안을 발표하며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양국 경제계가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이후 전경련도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한 양국 정부 간 합의를 계기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 방안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미래청년기금’ 관련 구체적인 모금 방식이나 참여 기업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전경련이 한국 재계를 대표해 주도한다는 의미에서 지난 수년간 경제6단체 가운데 ‘패싱’ 수모를 당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참석자들과 떡을 자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참석자들과 떡을 자르고 있다. ⓒ연합뉴스

‘김병준’ 등장 이후 광폭 행보…위상 회복 시도

재계에서는 달라진 전경련의 행보 뒤에는 김병준 회장 권한대행의 존재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김 권한대행은 윤석열 후보 캠프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대통령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을 지내는 등 친정권 인사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의 경제인 초청 행사에서 줄곧 배제됐던 전경련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지난 1월 윤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 당시 꾸려진 경제사절단에도 전경련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다 김 권한대행이 6개월 시한부 수장으로 취임한 지 2~3주 만에 ‘강제 징용’을 발판 삼아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의 모습을 띠는 형국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5~6년 소외당했던 전경련이 김 권한대행 취임 이후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라며 “김 권한대행이 아니었다면 이런 돌파구를 모색할 수 있었겠느냐”라고 말했다. 정권과의 연결고리를 토대로 전경련 위상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라는 의미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4대 그룹이 회원사에서 빠진 상황에서 전경련의 미래청년기금 조성이 얼마나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얘기다. 4대 그룹 입장에선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으로 홍역을 치룬 기억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동참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아울러 ‘강제 징용 배상안’에 대해 비판 여론이 더 높다는 점에서 전경련의 적극적인 행보가 국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앞서 김 권한대행은 “국민 속으로 들어가서 국민들로부터 지지받는 전경련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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