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물정 몰라” “오해 같은 소리하네”…‘주 69시간’에 뿔난 MZ세대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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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근로자 10인의 근로시간 개편안 ‘생생 반응’
“시대 역행” “과로사 책임져” “결혼‧출산‧육아는 언제”
尹정부, 여론 반발에 “내달까지 의견수렴하겠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당초 정부는 주 최대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게 하는 취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보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여당 사이에선 ‘전면 백지화’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향후 정부는 ‘MZ세대와 소통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근로시간 개편안 보완을 지시하면서 “MZ세대의 의견을 잘 반영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이날 MZ노조협의체(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와의 비공개 토론회를 시작으로 MZ 근로자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듣게 될 MZ세대의 반응은 무엇일까.

시사저널이 만난 MZ세대의 근로시간 개편안 관련 '말말말' ⓒ 그래픽=시사저널 양선영
시사저널이 만난 MZ세대의 근로시간 개편안 관련 '말말말' ⓒ그래픽=시사저널 양선영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69시간 근로’ 제동 건 MZ세대

15일 시사저널은 MZ세대 근로자를 중심으로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시사저널이 만난 10명은 한 목소리로 해당 개편안에 대해 “세상 물정 모르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근로시간 개편안은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한다는 취지다.

미디어 촬영 직군 8년차인 손아무개씨(35)는 “해외 커뮤니티에서도 한국 조롱이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가 트렌드를 못 읽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안녕히 계세요 대한민국’ 소리가 절로 나온다”며 “피라미드 만들던 이집트 노예들도 주 69시간 노동은 안 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언론사에서 작가로 근무하는 정아무개씨(29)도 “세상 물정 모르는 정부가 섣불리 내놓은 정책 같다. MZ뿐만 아니라 어떤 근로자도 노동시간 확대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업계 종사자인 강아무개(38)씨의 걱정은 ‘크런치모드’다. 크런치모드란 IT업계에서 마감을 앞두고 장시간 몰입해 일하는 행태를 말한다. 강씨는 “과거 일 좀 열심히 한다하는 리더들은 모두 과로로 실려 가거나, 휴직했거나, 암에 걸렸다. 아직 52시간 제도도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인데,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다”고 했다. IT업계 개발자인 조아무개씨(34)도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쉰다고 해도 망가진 건강이 회복되진 않는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포괄임금제를 적용받고 있는 김현정씨(32)는 “포괄임금제부터 폐지하고 근로시간 확대 소리를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통업계 홍보 직군인 김씨는 “선후관계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지금도 포괄임금제 탓에 공짜 야근 중인데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해지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간호사인 이아무개씨(26)도 “많이 일하는 만큼 많이 받는 것은 좋지만 이런 일이 모든 사업장에서 담보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우려했다.

모빌리티 관련 스타트업 종사자 조아무개씨(32)는 “한 쪽에선 일하라 그러고 한 쪽에선 결혼하고 출산하라고 한다. 주 69시간 일하면서 무슨 결혼을 하고 애를 키우겠나.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안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사진은 14일 오전 서울 신도림역에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탑승장을 나서는 모습 ⓒ 연합뉴스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안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 14일 서울 신도림역에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탑승장을 나서는 모습 ⓒ연합뉴스

“청년팔이 그만” “주4일제가 미래”

이 같은 청년 세대의 반응은 ‘잘못된 오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가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은 주 52시간제 관리기간을 현행 ‘일주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일이 몰릴 때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하고, 대신 일이 없을 때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이용해 기존 연차휴가에 붙여 ‘한 달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기존의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를 유연화하고 일이 몰릴 때 더 일하는 대신 전체 근로시간을 줄여 장기휴가를 촉진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MZ세대들은 정부의 해명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유통업계 종사자 박아무개씨(28)씨는 “오해 같은 소리 말라. 대부분의 직장인은 마음대로 병가도 못 쓰는 게 현실인데, 어떻게 한 달 짜리 휴가를 정부가 장담할 수 있나”라고 했다.

정부가 MZ세대의 여론을 왜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안을 만들면서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젊은 세대의 선호를 반영했다고 홍보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취지다. 대기업 종사자 서아무개씨(30)는 “도대체 어떤 MZ세대가 주 69시간에 찬성하는지 정부에 되묻고 싶다. 정부가 접촉했다는 MZ세대가 현실에 있는 MZ세대인가. 정치권이 MZ세대를 그만 들먹였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근로시간 확대 대신 오히려 ‘주4일제‘ 근무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은행업 종사자인 유아무개씨(30)는 “과거 ‘놀토(노는 토요일)‘를 도입했던 것처럼 ‘놀수(노는 수요일)’를 차근차근 도입하면 좋겠다. 쉬는 시간이 많아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주4일제가 미래”라고 했다.

여론조사에서도 MZ세대 10명 중 6명이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지난 1월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18~29세의 57%, 30~39세의 60%가 정부안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말하는 청년들은 대체 어떤 청년들인가. 더 이상 MZ세대 운운하며 청년을 위한 정책인 것처럼 호도하지 마라. 청년팔이를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당초 정부는 내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오는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전날 고용노동부는 입장문을 내고 “국민 이해와 공감대 속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현재 입법예고 기간인 만큼 청년 등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찾아가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는 내달 17일까지 의견수렴에 매진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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