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을 조성·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원준 신풍제약 사장이 법정에서 혐의를 일부만 인정했다. 전체 비자금 91억8200만원 중 부친인 고(故) 장용택 전 신풍제약 회장이 생전에 조성한 57억5600만원에 대해서는 관여한 바가 없다는 주장이다.
장 사장의 변호인은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2016년 3월 이후 범행에 대해서는 인정한다”면서도 “부친인 장용택 전 회장이 살아있었던 2016년 2월까지의 자금 조성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장 사장 측은 “장 사장은 아버지 작고 후 이 회사 전무 노아무개씨로부터 비자금 조성 사실을 처음 들었다”며 “노씨가 사무실로 찾아와 ‘예전부터 회장님 지시로 만들어진 자금이라서 갖고 왔다’고 말해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검찰에 따르면, 장 사장과 노 전무는 장 전 회장과 공모해 2008년 4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의약품 원료 납품업체에게 원료 단가를 부풀려 지급한 뒤 그 차액을 어음으로 돌려받는 식으로 비자금 91억8200만원을 조성했다.
어음은 신풍제약 출신 이아무개씨가 설립한 사채업체를 통해 현금화돼 여러 계좌를 통해 노 전무에게 전달됐다.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은 장 사장에게 건네졌다. 장 사장은 해당 자금을 자사 주식 취득과 허위 급여 보전, 생활비 등에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장 사장은 비자금 조성 사실을 숨기기 위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신풍제약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해 공시한 혐의도 받는다.
장 사장은 “2016년 3월경 3억원을 받았고 이후 자금을 계속해서 받은 사실은 인정하지만 장 전 회장이 살아있던 기간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며 “배임 관련 범죄사실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 재판에서 밝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사장은 2018년 4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직접 34억26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장 전 회장이 조성한 비자금 57억5600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결국 장 사장의 변론 취지는 장 전 회장이 비자금 57억5600만원을 조성하는 데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자금이 조성된 기간 대부분은 장 사장이 신풍제약 경영권을 쥐고 있던 시기다. 장 사장은 2009년 신풍제약 대표이사에 올랐으나 2011년 분식회계와 리베이트 사건으로 사임했다. 이후 장 사장은 신풍제약 내 공식직함을 두진 않았지만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장 사장의 비자금 조성을 도운 노 전무는 지난해 12월 구속기소된 상태다. 그는 혐의를 대체로 인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풍제약 출신 사채업자 이씨도 대부업법 위반과 횡령 방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