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고려” 정부, 유류세 인하 연장…전기·가스요금은?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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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보류 3주 지났지만 당정, 여전히 결정 못해
지지율 하락세에 여론 정취 과정만 반복하고 있어
5월로 넘어가면 3분기 요금 결정 시기와 가까워져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민·당·정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민·당·정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결국 유류세 인하 조치를 4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명분은 서민 부담 완화다. 세수 확보 차원에서 인하 폭 축소를 시사했지만 여당의 강력한 요청에 한발 물러선 셈이다. 문제는 더 큰 산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서민 경제와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기·가스요금 인상 여부를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는 “에너지 산업계가 무너진다”며 인상을 촉구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인상 여부가 내달로 넘어갈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빈 곳간에 맞춰서 살면 된다”고 밝힌 정부가 세수 부족에도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하기로 했다. 서민경제의 부담 완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인하 폭 축소로 인해 기름값이 올라 발생할 여론의 역풍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서민경제와 물가에 영향이 더 큰 전기·가스요금에 대해선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앞서 당정은 인상의 불가피함을 당정이 공감했다. 하지만 발표를 앞둔 지난달 31일 여당이 제동을 걸었다. 이후 여당은 여론 수렴에 나서겠다고 한지 3주가 됐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이런 가운데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몇 년 치를 한 번에 결정하자는 게 아니지 않나. 일단 2분기 요금을 어떻게 할 지 결정하는 만큼, 늦어도 이달 내에는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인상안 발표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현재 당정은 전기요금의 경우 ㎾h(킬로와트시)당 5~9원가량 올리는 안을 두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10원 이상 인상을 주장하고 있지만 여당에서는 민심 역풍을 우려해 두 자릿수 인상은 무리라는 입장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당장 업계는 조속한 인상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8일 전기 업계 주요 협·단체로 구성된 전기관련단체협의회는 간담회를 열고 “한전의 적자 가중으로 전기산업계는 생태계 붕괴가 우려될 정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전기료 정상화가 지연되면 한전 재정난이 심화되고 안정적 전력 공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최근 몇 년간의 한전 적자로 전기 관련 기자재 발주가 감소하고 공사 대금 지급이 지연되는 등 업체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 미수금이 쌓여 하루에 지급하는 이자가 50억원”이라며 “전기요금 동결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뒤로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시내 가스 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가스 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3분기 요금 조정에도 영향 미칠 듯…여름철 앞두고 인상?

당정은 의견 수렴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과 산업부는 오는 20일 국회에서 대한상공회의소·전기공사협회 등 산업계 관계자가 참석하는 ‘전기·가스요금 민·당·정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지난 6일 간담회에서 전문가·시민단체 의견 등을 수렴한 만큼 기업 측 이야기도 듣는 차원이다.

하지만 의견 청취 절차가 끝나도 인상 여부가 결정 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 다음 주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여론의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발표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 여당의 분위기로 읽힌다. 윤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와 국민의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주장은 정부가 인상 여부를 사실상 당에게 넘긴 상황이라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추 부총리는 “기재부와 산업부가 최종적으로 방침을 정하겠지만, 전적으로 당에서 판단할 부분”이라며 “당이 중심이 돼 정부와 전문가,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만큼 정부에서 당에 며칠까지 (결정)하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최근 상황을 보면 정책 결정에서 여당이 주도권을 쥐고 있음이 선명하게 보인다. 정부는 당초 부족한 세수를 채우기 위해 유류세 인하 폭 축소를 검토했다. 하지만 지난 17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최근 물가와 유가 동향, 그리고 국민 부담을 고려할 때 현재 시행되고 있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당분간 연장할 것을 정부가 적극 검토해주기를 촉구한다”고 밝혔고, 정부도 이에 호응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모습이 전기·가스요금 인상안 결정에도 재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인상 여부가 5월로 넘어갈 경우 6월 말이 유력한 3분기 요금 결정 시기와 가깝다는 점에서 정부의 부담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3분기는 여름철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 시기라 선택의 폭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인상 시기를 실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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