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딸’도 ‘윤핵관’도 싫다…제 3지대 출현할까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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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신당 창당 예고…김종인 “도와줄 것”
“늘어난 중도층이 기회” vs “새 인물 안 보여”

경기도 남양주에 거주하는 전민형(37‧가명)씨는 지난 대선 윤석열 대통령을 찍었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탓이다. 그러나 전씨는 이후 지지하는 당이 없는 ‘무당파’가 됐다. 전씨는 “정치에 신물이 났다”고 토로했다. 그가 보기에 거대 양당 모두 서민의 삶과는 괴리된 정책을 펴고 있다.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김주희(29‧가명)씨도 현재 지지 정당이 없다. 김씨의 관심사인 ‘인권‧환경’에 적극적인 정책을 펴는 당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의당과 녹색당에 관심을 가져봤지만, 김씨는 “당에 ‘매력 있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어느 당’이냐 보다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하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이 두 거대 양당의 대치가 날이 갈수록 격화되는 모습이다. 동시에 각 당을 대표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를 향한 당원들의 충성, 상대를 향한 반감도 더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이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뉜 정치판에 실망해 ‘가운데’에 머무는 중도‧무당층도 같이 늘어나는 양상이다.

이에 정치권에선 ‘제3 지대’ 가능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친윤석열계도 친이재명계도 아닌 각 당의 소장파 의원들이 원외 전문가와 힘을 합쳐 새 당을 만들 수 있단 관측이다. 실제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 창당을 예고한 가운데 ‘정치 9단’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멘토’로 합류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과연 차기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 체제를 붕괴시킬 새로운 당이 탄생‧성공할 수 있을까.

18일 국회에서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금태섭 전 의원,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민주당 이상민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주도하는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준비모임의 첫 토론회이다. ⓒ연합뉴스
18일 국회에서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금태섭 전 의원,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민주당 이상민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주도하는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준비모임의 첫 토론회이다. ⓒ연합뉴스

금태섭, 김종인 손잡고 ‘신당 창당’ 예고

정치권에서 ‘제 3지대’는 스타트업에 비유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란 ‘대기업’ 틈바구니 사이에서 생존하는 것만으로 성공이지만, 이 성공 확률이 극히 낮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지역주의를 타파를 내건 열린우리당도, ‘녹색돌풍’을 일으킨 국민의당도, 개혁보수정당을 표방한 바른미래당도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거대 양당에 흡수합병되며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2024년 총선을 1년 앞두고 또 다시 ‘창업’에 도전하겠다는 이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과거 민주당 소장파로 활동했던 금태섭 전 의원이다. 금 전 의원은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토론회에서 신당 창당을 예고했다.

금 전 의원은 토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당을 만드는 것은 준비가 되면 말하겠다”며 “2012년부터 ‘제 3지대 운동’에 관여하거나 지켜본 바에 따르면 서둘러서 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신당 창당은) 어려운 길이고, 정치인들이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지만 실제로 깨고 나오기는 어렵다”며 “저는 그 길을 걷겠다고 했고, 차차 준비되는 대로 말하겠다”고 덧붙였다.

금 전 의원은 신당의 구체적인 목표까지 숫자로 제시했다. 그는 “인물 중심이 아니라 문제 중심의 새로운 세력이 필요한 것”이라며 “내년 총선 때 수도권을 중심으로 30석 정도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세력이 등장하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재에 따르면, 금 전 의원이 창당을 주도할 것이란 소문은 이미 여야에 파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한 관계자는 “(비명계인) 금 전 의원이 적어도 옛집(민주당)에서 공천받기는 어려웠을 것인데 ‘친윤’과도 거리가 있는 인물”이라며 “창당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금 전 의원이 ‘누구 누구를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돌았다”고 전했다.

금 전 의원의 창당을 도울 ‘멘토’로 김종인 전 위원장도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직책은 맡지 않되, 금 전 의원에게 정책 방향을 제시‧조언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1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기존의 정당으로 자기네들의 기득권만 보호하려고 하는 이런 사람들로는 국가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그런 (국민들의) 각성이 있으면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진단했다.

바른미래당에 몸 담았던 유승민 전 의원(왼쪽부터), 손학규 전 의원, 안철수 의원 ⓒ시사저널 고성준·이종현·박은숙
바른미래당에 몸 담았던 유승민 전 의원(왼쪽부터), 손학규 전 의원, 안철수 의원 ⓒ시사저널 고성준·이종현·박은숙

늘어난 무당층 기회…“현실성 없다” 회의론도

과연 금 전 의원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예단은 어렵지만 ‘환경’은 나쁘지 않다. 우선 ‘수요’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한국갤럽 4월 2주차 여론조사(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 대상, 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 8.2%, 자세한 내용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36%, 국민의힘 31%였고, 무당층 비율은 29%로 집계됐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20대 대선 직후였던 지난해 4월 2주차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40%, 민주당 39%, 무당층 15%였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무당층이 2배 가량 증가했다.

다만 정치권에선 금 전 의원이 가시밭길을 걷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건 ‘인물난’이다. 쉽게 말해 당의 ‘간판’ 역할을 할 인지도 높은 정치인, 혹은 대중에게 호감도가 높은 원외 인사를 영입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제3 지대 합류 후보군으로 언급되는 인사들 모두 앞 다퉈 ‘합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기 시작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19일 경남MBC 라디오 《윤동현의 좋은아침》과의 인터뷰에서 금 전 의원이 띄운 제3당 합류 가능성에 대해 “신당이나 이런 행보들에 대해 아직까지 고민해본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금 전 의원이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했던 김재섭 국민의힘 서울 도봉갑 당협위원장도 “저는 국민의힘 소속”이라며 신당 합류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제3당 합류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저는 현재 민주당 국회의원”이라면서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이나 분화와 통합, 자기 뜻에 맞는 정치적 상황을 찾아가는 것은 본능적이고 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새 정당이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려면 3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도자급 인재를 영입하고 ▲기존 정당과 차별화되는 ‘혁신적인 어젠다(의제)’를 선점한 뒤 ▲이 어젠다를 정치권 화두로 띄울 수 있는 조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늘어난 무당층을 ‘제 3당 지지자’와 동일시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정당이 정치 궤도를 수정하는 순간 제 3당의 수요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늘어난 무당층이 ‘제 3지대’를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이 (기존 정치인인) 금태섭 전 의원에게서 희망을 볼까”라고 반문한 뒤 “새 정당이 성공하려면 기존 정치에 대한 대안과 더불어 조직력을 갖추고 명망있는 인사도 영입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프랑스 등 소위 말하는 정치 선진국도 제3의 정당은 있지만 많은 득표를 얻지 못 한다”며 “제 3당의 출현과 별개로 그 성공 가능성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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