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이 밀고 최문순이 당겼나…남헌기 막은 ‘동해 사람들’의 고백
  • 동해·춘천=공성윤기자, 조해수·김현지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1 10:05
  • 호수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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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이 추켜세운 인천시 직원, 강원도 넘어가 남헌기가 망상 개발사업 맡는 데 기여
개발사업자 선정 의혹 덮고 밀어붙인 최문순…“남씨와 정치권의 유착 주장 꽤 구체적”

인천 미추홀구와 강원 동해시 망상동. 직선 거리로 200km가 넘는 두 지역이 체감상 인접해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주, 함께 거론되고 있다. 연결고리는 인천 출신 사업가 남헌기씨(61)다. ‘건축왕’으로 불린 그는 인천 등지에서 주택 2700여 세대를 공급해 전세보증금을 챙겼고, 이를 토대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다 망상 토지 개발사업에까지 손을 뻗쳤다. 그러나 동해시 등의 반대에 부닥쳐 좌초했다. 남씨는 2021년 4월 언론 인터뷰에서 “동해시가 훼방을 놓고 텃세를 부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동해시의 결정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남씨가 인천과 강원에서 각각 500억원대 전세사기와 허위 자료에 의한 사업자 선정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졌기 때문이다. 이후 사안의 여파가 커지면서 ‘윗선’ 두 명의 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한 명은 지역민의 반대에도 망상 개발사업을 밀어붙인 최문순 전 강원지사다. 또 한 명은 개발사업 담당 직원을 적극 밀어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한때 민주당 대권주자였던 두 사람이 남씨를 매개로 엮이면서 전세사기 사건은 심상치 않은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남씨의 문어발식 사업 구조에서 지주사 역할을 한 곳은 건설업체 상진종합건설이다. 남씨가 실소유한 이곳은 망상 1지구 개발사업을 맡은 동해이씨티국제복합관광도시개발 유한회사(이하 동해이씨티)의 지분 70%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30%는 남씨 자신이 갖고 있다. 남씨가 상진종합건설을 통해 망상 1지구 개발사업권을 전적으로 쥐고 있는 셈이다.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이하 동자청)은 2018년 11월 동해이씨티를 망상 1지구 개발사업자로 최종 선정했다. 같은 시기 강원도의회에 “상진종합건설은 동해이씨티의 모회사”라고 처음 보고했다.

강원도 동해시 심곡동 419-1 일대 남헌기가 소유한 망상지구 토지 초입. 중간에 보이는 막사가 남씨가 망상지구에서 운영했던 유일한 사업체인 타조농장이 있던 곳이다. ⓒ시사저널 최준필
강원도 동해시 심곡동 419-1 일대 남헌기가 소유한 망상지구 토지 초입. 중간에 보이는 막사가 남씨가 망상지구에서 운영했던 유일한 사업체인 타조농장이 있던 곳이다. ⓒ시사저널 최준필

망상 개발권 따낸 남헌기에 동해시가 문제 지적

이를 계기로 상진종합건설과 실소유주 남헌기의 이름이 강원 정가에 퍼지게 됐다. 이때도 남씨의 실체에 대한 의혹이 간간이 제기됐다. 하지만 남씨와 동자청에서 정확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검증이 힘들었다. 이후 망상 개발사업은 이렇다 할 진척 없이 1년 넘게 공전을 거듭했다. 그러다 2020년 중순 들어 의혹은 급물살을 탔다.

우선 동해 시민단체가 2020년 9월 동해이씨티의 자금력과 사업자 선정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며 공론화를 시도했다. 시민단체는 동해경제인연합회를 중심으로 ‘동자청 망상지구 범시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를 조직해 세를 키웠다. 그해 10월에는 최재석 당시 동해시의원(현 강원도의원)이 같은 사안에 관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안을 상정하며 관심을 촉구했다. 다음 달인 11월에는 심규언 동해시장이 신동학 동자청장을 만나 망상 개발사업과 관련한 구체적 근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명확한 자료는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시사저널은 4월27~28일 춘천과 동해에서 심규언 시장, 최재석 의원, 전종규 범대위 기획국장, 동해시 실무자, 언론인 등 다수의 관계자를 만나 당시 상황을 들어봤다. 심 시장은 “핵심 의혹은 크게 두 가지”라며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는 사업자 선정 근거다. 상진종합건설은 예비사업자로 선정될 때 근거자료 없이 매출은 3000억원대, 직원은 200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보니 실제 매출은 턱없이 적었고 직원 수는 10명도 안 됐다. 두 번째는 사업자 선정 방법이다. 동자청은 처음엔 공모를 통해 뽑았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업체 유치’로 말을 바꿨다. 그렇다면 적격 심사를 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안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로 최문순 지사를 세 번 만났다. 나중에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잘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특감도 요구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문순 전 강원지사, 남헌기 전 동해이씨티 회장(왼쪽부터)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문순 전 강원지사, 남헌기 전 동해이씨티 회장(왼쪽부터)

“도시계획심의 통과 막으니 강원도가 압박해”

심 시장은 “망상 개발사업은 강원도 주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사업의 관문 중 하나인 도시계획심의에 대한 권한은 동해시가 갖고 있다”며 “사업자가 무능하다고 판단해 심의를 통과시켜주지 않으니 강원도로부터 압박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동시에 지역 언론엔 ‘동해시가 몽니를 부린다’는 취지의 기사가 나갔다고 한다.

최 의원도 증언을 보탰다. 그가 제공한 공문에 따르면, 동자청은 경제자유구역법을 근거로 “동해이씨티에 망상 땅을 무상으로 넘기라”고 동해시에 요구했다. 하지만 동해시는 법적 요건에 맞지 않다며 거절했다. 최 의원은 “강원도와 동자청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최종 결재권자인 최문순 전 지사가 배후에 있음을 의심하게 하는 정황이다.

최 전 지사의 압박과 별개로 남씨를 망상 개발사업에 끌어들인 사람은 따로 있다고 한다. 동자청에서 투자유치본부장으로 일했던 이아무개씨다. 이씨는 원래 송영길 전 대표의 인천시장 재직 시절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하 인자청)에서 같은 업무를 했었다. 그는 2011년 삼성의 바이오제약 사업을 송도에 유치한 성과로 송 전 대표로부터 “1%의 가능성을 100%로 만들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던 이씨는 유정복 시장 체제에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결국 그는 송 전 대표가 시장직에서 물러난 지 1년 후인 2015년 6월 인자청을 관뒀다. 이후 2016년 8월 동자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망상 개발사업을 맡게 됐다. 복수의 관계자 증언을 종합하면, 이씨는 ‘워커홀릭’에 ‘성과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는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인자청 시절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남씨를 어떻게든 사업자로 세우려 했다. 최근 그 이면에 송 전 대표의 추천이 있었다는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전종규 범대위 국장은 “남씨와 정치권 사이에 유착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언은 화자와 장소까지 특정됐다”며 “그냥 흘려듣기에는 꽤 구체적”이라고 주장했다.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사망한 전세사기 피해자가 살던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4월20일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4월2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남헌기 끌어들인 동자청 직원은 ‘송영길 사람’

동해이씨티가 사업자로 선정된 후인 2020년 말 이씨는 건강상 이유로 휴직계를 냈다. 이후 지병이 악화돼 유명을 달리했다. 시사저널은 이씨와 함께 인자청에서 동자청으로 넘어가 망상사업부장을 지낸 A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닿지 않았다. A씨는 2021년 언론 인터뷰에서 동해시를 질타하며 “가장 큰 피해자는 동해이씨티”라고 주장한 바 있다.

송영길 전 대표와 최문순 전 지사에게도 연락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최 전 지사 측 관계자는 “지사님이 남씨와의 유착 의혹에 이례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며 “망상 개발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는 지역 거점 사업이라 단체장이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최근 동해이씨티 신임 대표로 선임된 추광규 대표는 남씨의 정치적 배후에 관해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추 대표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상진종합건설의 사업자 선정 과정은 춘천지검에서 이미 무혐의로 결정 난 사안이고, 망상지구의 50% 이상 토지만 확보하면 노숙자든 망자든 사업자 지위를 따는 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앙지검이 같은 내용으로 기소했지만 어차피 무죄가 나올 텐데, 그 이후에 정치적 배후를 거론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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