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막말하는 중국, ‘중화주의 망상’에 사로잡혀 [유광종 쓴소리 곧은 소리]
  • 유광종 종로문화재단 대표(전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ykj3353@naver.com)
  • 승인 2023.04.30 10:05
  • 호수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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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 발언 트집 잡아 “불장난하면 타 죽는다”며 무례하고 노골적인 공격
스스로 과대평가하는 오래된 습성, 9000만 공산당원 기반으로 되살아나

요즘 중국이 막말을 한다. 특히 이웃의 대한민국을 향해서는 아주 노골적이고 무례하다. 한국 대통령의 발언을 트집 삼아 “불장난하면 타 죽는다”는 등 과격한 발언을 스스럼없이 사용한다. 외교부 대변인은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식의 말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중국이 왜 이러지?’는 사실 오래전에 품었어야 할 의문이다. 이념의 장막에 가려 절대 빈곤에 허덕이던 중국이 개혁개방을 펼친 지 이제 40여 년이다. 어려웠던 시절의 중국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낮췄다. 많은 것이 결핍 상태였고, 또 극도로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개방으로 ‘세계의 공장’ ‘지구촌 제2의 경제주체’라는 타이틀을 얻어가던 중국은 일찌감치 제 얼굴을 바꿨다.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국방력 증강에 꾸준히 힘을 쏟더니 급기야 얼굴색뿐만 아니라 자세와 태도도 싹 바꾸고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경제력으로 자신감을 회복하다 보니 옛 시절의 영화(榮華)가 그리웠다. 그 ‘옛 시절의 영화’라는 것은 중국인이 제 머릿속에 가둔 일종의 주술(呪術)이다. 세계의 중심이 자신이며, 모든 질서는 자신들이 주도한다는 이른바 ‘중화주의(中華主義)’ 망상이다.

이들은 세상을 ‘천하(天下)’라는 개념으로 읽는 버릇이 있다. 세상이 중국을 중심으로 하나의 세계(World)를 이룬다는 몽상이다. 현재의 상황은 아직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은 결국 중국이 이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중화주의 망상과 몽상을 중국 정치 엘리트들이 용도 폐기했다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EPA 연합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4월14일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독일 외무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

빈곤했던 시절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몸 낮춰

지난 40여 년 개혁개방의 시기에 다소 이를 감췄을 뿐이다.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鄧小平)이 “장점은 감추고, 약점은 보완하라”는 취지의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지침을 내놓자 교묘할 정도로 제 속내를 감췄다. 그러나 제 본색(本色)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시점으로 보자면, 중국이 2008년 베이징(北京)올림픽을 치렀을 때다. 당시 중국은 옛 황제의 거처였던 자금성(紫禁城)의 통치 축선(軸線)을 그 정북방 12km로 연장했다. 그곳에 올림픽스타디움을 만든 후 매우 거창한 개막식을 벌였다. 이는 옛 황제로 상징할 수 있는 ‘구(舊) 질서의 회복’을 세계 모든 나라에 알리기 위한 의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옛 질서’라는 것의 실체는 결국 중화주의다. 가난하고 궁핍했던 시절의 고난을 이겨내고 이제 과거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야심만만한 ‘선언’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중국은 스스로를 새로운 대국으로 당당하게 내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집권 공산당 최고지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는 미국을 향해 ‘새로운 대국 관계(新型大國關係)’를 맺자고 요구하는 정도까지 나아갔다.

그 후에 들어선 새 권력자 시진핑(習近平)은 이런 보수적이며 회귀적인 흐름을 더욱 강화했다. 남중국해 전체를 내해(內海)로 만드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고,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공격적 국력 확장을 마구 밀어붙였다. 최근에는 3연임에 성공한 후 미국의 견제를 빌미로 더욱 강고한 보수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중화주의의 폐단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데 있다. 중국은 물론 큰 나라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럽연합(EU) 속의 여러 국가가 억지로 한데 묶여 있는 듯한 형국이다. 그로써 하나의 문명성(文明性)을 획득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다양한 문명적 요소가 억지로 한데 묶여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점은 늘 감수해야 했다. 그로써 중국은 그 땅에 태어나 삶을 이어가야 하는 숱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고난과 역경을 떠안겼다.

따라서 중국은 옛 중화주의를 영광으로 생각할 때가 아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많은 사람을 위해 적합한 새 정치 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한 점을 우선 부끄럽게 생각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중국은 걸핏하면 그 옛 영광에 쉽게 빠져든다. 그로써 제 자신이 늘 세상의 중심이며, 대국이자 리더라고 자부하는 습성에 안주한다.

 

자유와 인권, 민주와 합리 가치 점점 줄어

그런 엉터리 중화주의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중국의 지배자들은 늘 자신이 “높고 크다”고 생각하는 자고자대(自高自大)의 심리에 빠져든다. 미국의 방심, 더 나아가 의도하지 않았던 도움으로 중국은 경제력을 쌓아가면서 이제는 주변국과 세계를 향해 마구 막말을 해대는 ‘싸움 늑대’(戰狼) 외교를 펼치고 있다. 자신들의 오랜 주술이었던 중화주의 망상을 다시 꺼내들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이런 막말 행진은 어디쯤에서 멈출 수 있을까. 집권 공산당이 옛 영화를 회복하려는 심리에 젖어있는 한 이런 막말과 무례함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그에 강력하게 편승하며 부채질까지 하는 그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9000만 명을 넘는 공산당 당원과 그를 뒷받침하는 방대한 관료 계층이다.

이들은 공산당 최고지도부가 보수적이며 과거 회귀적인 움직임을 보일 때 그에 호응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더 강화할 수 있는 집단이다. 이들에 의한 통치체제 유지는 전통적으로 ‘이치(吏治)’라고도 부르는데, 중국을 떠받치는 강력한 축의 하나다.

이들은 최고 통치권력을 받들면서 스스로를 ‘노재(奴才·종놈)’라고 자처했던 적이 있는 존재다. 왕조와 국가의 발전 동력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나친 충성과 아부로 급기야 왕조와 국가의 운명을 심각한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던 그룹이다.

개혁개방이 무르익으면서 이들의 권력이 분산, 분점의 과정을 거치다가 이제는 다시 완연한 회복세에 들어섰다. 공산당 최고 권력층이 드러내는 보수 및 과거 회귀적인 새 흐름 때문이다. 그로써 개혁개방 시기의 다소 합리적이었던 의사결정 구조는 모습을 감추고, 공산당 프로파간다에 편승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관료집단의 행태만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로써 자유와 인권, 민주와 합리라는 가치(Value) 차원의 동조화(同調化)로 순탄한 한중 관계를 꿈꿨던 우리의 기대는 잦아들고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기조를 철회했고, 이제는 체제 안정을 위해 미국과의 대결 국면만을 강조하며 서방의 가치체계와는 대척점에 있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요즘의 저들 ‘막말’은 사실 그 과정 속의 부산물일 뿐이다. 겉으로 뿜어내는 막말 세례보다는 궁극적인 중국의 지향과 동태를 더욱 자세히 살펴야 할 시점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광종 종로문화재단 대표(전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유광종 종로문화재단 대표(전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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