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사과 열흘 만에 ‘출구전략’ 찾는 이재명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8 14:05
  • 호수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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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이은 윤관석·이성만 탈당 조치로 2차 방어 나설 듯
“이 대표, 개혁 명분으로 공천 칼질 더 세게 할 수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위기를 맞은 더불어민주당이 추락한 지지율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리서치 등이 4월24~26일 사흘간 만 18세 이상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 31%, 민주당 30%, 정의당 4% 순으로 집계됐다. ‘모름·무응답’은 34%였다. 돈봉투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2주 전 국민의힘(33%)과 5%포인트 차까지 벌어졌던 지지율(민주당 28%) 격차가 다소 좁혀졌지만, 여전히 국민의힘에 뒤처졌다.   

현 당대표에 이어 전직 당대표까지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면서 보수세력에 비해 도덕성에서 상대적 우위를 내세웠던 민주당에 상당히 실망한 모습이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프랑스에서 귀국한 지 하루 만인 4월23일 서울시당에 탈당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고 논란을 해결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지율 반등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전·현직 당대표가 부패 의혹을 동시에 받으면서 민주당이 총체적 위기에 놓였다. 당대표가 당을 살리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할 것이고, (대처가) 지지자들 눈높이에도 맞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송영길 전 대표 탈당으로 ‘1차 방어’

민주당 내홍도 격화되는 모양새다. 돈봉투 의혹에 연루됐다고 지목되는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비명계의 탈당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지도부가 ‘강제 출당’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원욱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지도부가) 의혹 초창기에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리지 않고 검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겠다고만 했다. 법률적 책임에만 스스로 한정 지어버린 것이다. 이후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굉장히 잘못된 대처였다”고 비판했다. 

‘돈봉투’ 의혹이 불거지기 전까지 당내 분위기는 고무적이었다. 총선을 1년 앞두고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지지율 격차를 벌리면서 우위에 섰다. 그러나 이른바 ‘이정근 게이트’의 불똥이 송 전 대표로 옮겨붙으며 또 한 번 위기를 맞고 있다. 검찰이 확보한 이정근 녹취파일에서 또 어떤 의혹이 불거져 나올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 이재명 대표가 어떤 전략으로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내년 총선 전략을 세울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이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으로 1차 방어 전략을 실행한 다음 한동안 당 안팎의 여론 흐름을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 하락세가 이어지고 당내 자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경우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탈당 조치를 2차 방어 카드로 쓸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당 혁신안을 예정보다 앞당겨 발표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혁신안에는 비명계 의원들이 그동안 주장해온 안건들이 대폭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의 리스크를 잘 관리해 내년 총선까지 무리 없이 가는 것이다. 이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어느 정도 희석돼 가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부결로 위기를 한 번 넘겼고, 그 과정에서 당내 혼란이 심각했지만 당직 개편 이후 이재명 체제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친명계 등 당 지도부는 검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도 본격 총선철로 접어드는 올가을까지는 이 분위기를 이어가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자체 판단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2021년 전당대회 당시 송영길 후보 측근들의 돈봉투 살포 의혹이다.

당 지도부로서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송 전 대표 의혹까지 더해져 전선이 2개로 늘어나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즉각 송 전 대표에게 조기 귀국을 요청하며 선 긋기에 나섰다. 이 대표가 연루된 사건의 경우 측근들이 뇌물 혐의로 기소됐지만, 이 대표 자신이 사익을 취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송 전 대표는 ‘이정근 녹취파일’에 구체적 진술이 있는 데다, ‘이심송심(李心宋心)이 회자될 정도로 두 사람이 인천 계양을 지역구를 주고받은 관계이니만큼, 이 대표에게까지 파장이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해서라도 신속한 정리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 최준필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여야, ‘이정근’과 ‘김건희’로 서로 공격하는 구도 반복”

송 전 대표가 귀국한 후 자진 탈당 절차를 밟으면서 민주당이 1차 방어를 제대로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정치판은 돌발변수의 연속이다. ‘돈봉투’ 의혹도 돌발적으로 나온 사건인데, 민주당이 비교적 신속하게 대응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표 체제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엄 소장은 “검찰이 4월25일 송 전 대표를 피의자로 전환한 걸 보니, 추가적인 요소는 없는 듯하다. 검찰이 서두르는 감이 있는데, 민주당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의 피로도가 쌓이고 있는 점을 감안해 신속히 정리하려는 것일 수 있다. 송영길 대표 시절 민주당에서의 어떤 새로운 문제가 밝혀질 가능성도 있지만, 이 경우 이 대표와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데 검찰이 강력한 의지를 보이겠나. 오히려 이 대표 입장에서는 개혁을 명분으로 공천 칼질을 더 세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4월17일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던 이 대표가 열흘도 채 안 돼 ‘야당 탄압’ 프레임을 다시 꺼내드는가 하면, 국민의힘 공천 헌금과 관련된 의혹을 상기시키며 특유의 ‘물타기’ 시도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대표는 4월25일 국회에서 송 전 대표와의 통화 여부나 회동 계획, 윤관석·이성만 의원 출당 또는 탈당 조치 등을 묻는 취재진에 “김현아 전 의원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우리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 수사는 어떻게 되어가느냐”고 되물으며 “(박 전 의원 사안에는) 관심이 없으신가 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대표의 움직임을 못마땅하게 보는 당내 시선도 있다. 대표적 비명(非이재명)계인 박용진 의원은 “송영길 전 대표만 바라보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의 자정 능력, 쇄신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당이 망하기 직전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쇄신의 칼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하라고 만든 게 당대표 아니겠나. 당원들 대부분이 느끼는 자괴감을 이해한다면, 뽑아 든 칼에 본인이 베이더라도 혁신 지도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론이 더 악화할 경우 당 지도부의 다음 카드는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탈당 압박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우선 송 전 대표 탈당으로 사태가 진정되는지 지켜보다가 여의치 않으면 윤관석·이성만 의원에게 ‘결자해지’를 요구하며 당을 보호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탈당 조치는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영교 의원은 “탈당할 만큼의 내용인지 밝혀지기 전까지는 모른다”면서 “2021년 민주당이 소속 국회의원과 그 가족에 대한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를 권익위에 요청해 그 결과를 토대로 의혹이 제기된 의원들을 탈당 조치했지만, 이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적도 있지 않냐”고 말했다.

여야 대치 정국은 당분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1, 2차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반격 카드로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 특검 카드를 쓸 전망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4월27일 본회의에서 대장동 50억원 클럽 특검과 김건희 특검을 추진하는 내용의 이른바 ‘쌍특검법’안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지정을 추진해 본회의 의결을 이끌어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여당 지지율이 떨어지면 ‘이정근 녹취록, 중 하나를 꺼내 야당을 공격하고, 야당이 밀리면 다시 김건희 게이트를 꺼내 공격하는 구도가 반복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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