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정치로 외통수에 걸린 국민…새로운 세력 출현해야”
  • 이원석·변문우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8 12:05
  • 호수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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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영에 갇힌 정치’ 문제점 지적해온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조국 사태, 민형배의 위장 탈당, 尹의 상대방 인정 않는 태도 등이 대표적 사례”

“정치는 막장에 이르렀고, 국민은 외통수에 걸렸다.” 철학자이자 지식인인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런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더더욱이나 최근 들어 선의의 경쟁은 사라지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에 매몰돼 불신과 공격만 난무하는 정치권에 대해 최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치는 한계에 이르렀고, 이는 곧 대한민국이 한계에 이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더 이상 양당에 우리 미래를 책임질 능력은 생길 수 없다고 본다”며 “대한민국의 운명은 새로운 세력이 형성돼 정치 환경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해내느냐 못하느냐가 결정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대신할 ‘제3지대’ 출현의 필요성을 말한다. 최 교수는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의 이사장이며, 지난 20대 대선에서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시사저널 박정훈

“민주화 다음의 어젠다 설정 아직도 못 해”

새 정부 1년이 다 돼간다. 여전히 정치는 막장이고 국민은 외통수에 걸렸다고 보나.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대선 전과 후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누구나 인정할 거다. 국민이 외통수에 걸린 것도 여전하다. 외통수는 선택이 막혔단 의미다.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상대방을 적으로 놓고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아직 출로를 못 찾고 있다고 본다.”

정치가 막장이란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염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간은 거짓말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벌어지면 수치를 느끼도록 진화했는데, (지금의 정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덕목을 파괴하고 소멸시킨다. 정당 색과 무관하게 문제 해결은 뒷전이고 문제를 키우고만 있다. 염치는 느끼지 않으면서 국회의원으로서 특권만 누리고 군림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정치가 막장에 이른 한 모습이다.”

언제부터 정치가 막장이 됐다고 보나.

“김대중 정부가 물러난 이후로 한국 정치는 진영에 갇혔다. 국가의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보다는 자기가 가진 이념을 강요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정치가 퇴락해온 것이다. 그 퇴락의 끝이 지금의 정치 상황이라고 본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정치는 직선적으로 발전했다. 건국,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그 시대가 필요한 비전을 설정하고 그 어젠다를 완수했다. 그런데 민주화 다음의 어젠다 설정을 아직 못 하고 있다. 그 능력조차도 사라진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도토리 키재기 싸움밖에 없는 거다.”

‘진영에 갇힌 정치’는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으로 나타나고 있나.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건 조국 사태였고, ‘위장 탈당’(지난해 검수완박법 안건조정위원회 통과를 위해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신분으로 표결에 참여한 일)도 문제였다. 이제는 진영에 따라 정의가 다르고, 상대방과는 어떤 대화도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영에 갇히면,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간주한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0.78%포인트라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그렇다면 본인과 비슷한 정도의 지지를 받는 반대 세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파멸시켜야 할 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정치는 더 진영에 갇히고 분열과 갈등은 커지고 있다.”

양당이 극단적 지지층에 매여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막장, 한계에 이를수록 극단적 지지자들만 발언권을 갖게 된다. 이들에 의해 당이 움직인다는 것은 당이 갈 데까지 간 것이다. 회복 능력이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계에 이르렀다. 현대사회는 정치로만 문제를 해결하도록 진화했다. 정치가 한계에 이른 것은 우리 사회, 즉 대한민국이 한계에 이른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우리보다 앞서 한계에 이르렀던 나라들은 극심한 사회 분열, 극심한 정치 갈등, 극심한 포퓰리즘으로 쇠락의 길을 걷는다. 지금 한국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상당히 심각한 상태다. 경제가 어떻고, 문화가 어떻다 하지만 그 사회의 민얼굴은 정치다. 대한민국에서 정치는 블랙홀이다. 예술도, 교육도 정치 진영으로 갈라진다.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진영에 의해 갈라졌고, 대부분이 진영의 대리인으로 사는 거다.”

 

“정당이 ‘대통령 제조공장’으로 전락”

최근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이 30%를 넘었다. 막장 정치에 대한 회의감일까.

“회의감은 오래됐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현대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꼽는 게 ‘안철수 현상’이다. 안철수라는 인물이 정계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때부터 이미 그의 지지율이 40~50%에 달했다. 이는 당시 양당 대신 새로운 세력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기존 당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왔던 것이다.”

최근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을 중심으로 또다시 새로운 세력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나타나고 있는데.

“현재 거대 양당은 무능하고 비루할 뿐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지고, 상상력과 사유가 고갈됐다. 더 이상 양당에 우리 미래를 책임질 능력은 생길 수 없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새로운 세력이 형성돼 정치 환경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해내느냐 못하느냐가 결정할 것으로 본다. 새로운 세력이 형성돼 우리의 경제력과 과학기술 발전 정도와 시민들의 바람을 채워줄 수 있는 정치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새로운 세력을 시도하는 것은 가능성보다도 당위성에 더 무게를 놓고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신당의 가능성에 대해 전례를 들어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제3의 세력이 실패해 왔다고 하는 건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바라보는 사람들, 평가하는 사람들 모두가 결과주의에 빠져서 그렇다. 집권하지 못하면 다 실패라고 보는 것이다. 정치의 본질은 이렇게 사는 것보다 저렇게 사는 게 더 좋다고 설득하는 과정이다. 그런 과정을 집행하는 수단이 권력인데, 대한민국 정치에는 이제 권력투쟁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정당은 ‘대통령 제조공장’으로 전락했다. 사실은 정당이 아니다. 여기에 무슨 비전이 있겠나. 그러니 정치 기술자만 난무하고 정치는 사라졌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정치 기술자로만 살았던 사람들이 새 정치를 꿈꾼다고 그것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진짜 정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회복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 어떤 이들이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정치를 얘기할 때, 보통은 기후 문제, 양극화, 출산율 등 구체적인 문제를 가장 크게 놓고 다루는데 훨씬 더 근본에 닿는 게 필요하다. 우선 최소한의 사람 노릇을 해야 한다는 거다. 또 많은 사람이 권력을 잡아야 선한 비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건 권력욕을 포장하는 말일 가능성이 크다. 권력이 부산물로 와야 하는데, 목적으로 주객전도된 것이다. 신당을 시작하는 이들은 의석수, 권력, 이런 걸 사은품이나 부산물로 생각하면서 정치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정치 세력이 성공하려면 일반적으로 대선주자급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그것 역시 꿈을 가진 인물이냐, 어떤 사유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냐가 아니라 대통령 제조공장 하나 더 만드는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창당과 대선은 다른 일이다. 더 나은 사회와 삶,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정치 행위를 하겠다고 모이는 게 창당이다.”

새로운 세력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대한민국 처음으로 교과서적인 정당을 시작한다는 자세로 덤볐으면 좋겠다. 정당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결사체다. 어젠다와 비전을 먼저 만들고, 사람을 모아 세를 형성하고, 비전을 설득하는 한 방편으로 권력을 잡는 순서가 돼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을 모아 먼저 세력을 형성한 다음에 집권을 위해 표를 얻기 쉬운 수단으로 거기에 맞춰 어젠다를 만든다는 건 앞뒤가 바뀐 거다.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 지금은 심각한 위기다. 혁신을 위해선 소박한 근본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시도들은 또 하나의 구세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의 선택도 중요할 텐데.

“유권자들 역시 진영에 갇혀 있다. 유권자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유권자가 안 바뀌면 정치인은 바뀌지 않는다.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천하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필부들에게 책임이 있다)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유권자들도 자기 편이더라도 거짓말 등 기본 소양을 안 지키면 그런 정치인들을 따끔하게 나무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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