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있는데 ‘바람’이 안 분다? 제 3지대 딜레마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4.28 18: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당 체제 환멸” 늘어난 무당·중도층에…금태섭·김종인 창당 본격화
‘제2 국민의당 될라’ 인력난 발목…“집권에만 목 매면 필패” 분석도

윤석열 혹은 이재명, 국민의힘 혹은 더불어민주당. 오랜 기간 대한민국 유권자는 이 두 선택지를 받아들었다. 두 당은 시대마다 다른 당명을 내걸고 개혁을 외쳤다. 그러나 결과에는 물음표가 찍힌다. 특정 인물 중심의 계파 다툼과 서로를 ‘빨갱이’, ‘친일파’로 규정하는 ‘색깔론’이 반복되면서다.

이 탓일까. 2023년 여의도에 최대 화두는 ‘제3 지대’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크게 갈린 정치판, 그 가운데서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과연 국민의힘과 민주당이라는 ‘대기업’ 틈바구니 사이 ‘스타트업’은 생존‧성공할 수 있을까.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친윤’도 ‘친명’도 싫다…커지는 무당층

대한민국 정치판은 독과점상태다. 보수를 표방하는 국민의힘과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민주당이 번갈아가며 정권을 잡는 양상이다. 이 두 정당에 도전장을 내민 이들도 있었다. 이해찬, 안철수, 유승민, 김무성 등 걸출한 정치인들이 창당에 도전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지역주의를 타파를 내건 열린우리당도, ‘녹색돌풍’을 일으킨 국민의당도, 개혁보수정당을 표방한 바른미래당도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거대 양당에 흡수합병되며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2024년 총선을 1년 앞두고 또 다시 ‘창업’에 도전하겠다는 이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과거 민주당 소장파로 활동했던 금태섭 전 의원이다. 금 전 의원은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토론회에서 신당 창당을 예고했다.

취재에 따르면, 금 전 의원은 창당을 위한 구체적인 타임 테이블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9월 추석 전 당명과 주요 당직자, 추진 정책 등을 확정해 ‘제 3지대 깃발’을 들어 올리겠다는 게 금 전 의원의 계획이다. 이들의 주된 ‘타깃 소비자’는 수도권에 기반을 둔, 이념이 아닌 실용을 추구하고, 선호 당이 없는 무당‧중도층이다.

금 전 의원은 돕겠다는 책사도 등장했다. 주인공은 ‘킹메이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비대위를 이끌어본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 모두에게 ‘절망’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에 김 전 위원장은 금 전 의원을 도와 제 3지대의 성공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목표는 차기 총선에서 30석 이상을 얻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26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신당 추진과 관련, “30석 이상도 가능해 보인다. 추석 전에 창당해야 한다”면서 “대통령 못할 것도 없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양당이 10년 씩 집권했지만 문제 시정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며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지 않고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 9단’ 김 전 위원장은 데이터를 근거로 목표를 산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수요가 숫자로 확인된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지난 24~25일 정당 지지율을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38.6%, 민주당은 36.0%를 기록했다. 국민의힘이 직전 설문 대비 0.8%p 하락하는 사이, 민주당은 4.6%p 급락했다. 송영길 전 대표를 선출한 지난 2021년 5·2 전당대회에서 ‘돈봉투’가 살포됐다는 녹취가 공개된 여파로 분석된다.

민주당을 등진 유권자는 국민의힘이나 정의당으로 흡수되지 않고 ‘지지 정당 없음’ 무당층으로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의당은 2.5%에서 0.2%p 하락한 2.3%에 그쳤다. 그 대신 ‘지지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이 14.7%에서 19.3%로 4.6%p 급증했다. 민주당에 실망한 유권자가 국민의힘이나 정의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제 3지대 신당’이 창당할 경우 지지 의향이 있는지를 물은 결과, 국민 30.0%가 “기존 정당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에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그래도 기존 정당이 낫기 때문에 지지하지 않겠다”는 51.3%보다는 낮은 수치다. 다만 “잘 모르겠다”며 아직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유보적으로 관망하는 수치가 18.6%에 달했다. (27일 발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무선 100% RDD 방식의 ARS, 응답률은 3.1%,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18일 국회에서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금태섭 전 의원,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민주당 이상민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주도하는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준비모임의 첫 토론회이다. ⓒ연합뉴스
18일 국회에서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금태섭 전 의원,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민주당 이상민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주도하는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준비모임의 첫 토론회이다. ⓒ연합뉴스

금태섭‧김종인만으론 부족? 인력난 과제

과연 ‘금태섭‧김종인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전망은 분분하다. 이들의 도전을 응원하지만 별개로 성공 가능성에 물음표를 띄우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건 인물난이다. 쉽게 말해 당의 ‘간판’ 역할을 할 인지도 높은 정치인, 혹은 대중에게 호감도가 높은 원외 인사를 영입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신당 창당 시 합류 후보군 물망에 올랐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등은 일찌감치 ‘합류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개혁보수 바람을 일으킨 국민의힘 ‘천하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도 원외가 아닌 당내에서 개혁을 시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제3 지대 출마 가능성에 “당대표가 되겠다고 한 게 엊그제인데, 갑자기 나가서 3당을 하겠다는 건 현재로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른바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은어)이라 불리는 민주당 내 비이재명계 의원들이 ‘스카우트 제안’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금 전 의원과 더불어 ‘조금박해’로 불렸던 조응천‧박용진 의원, 김해영 전 의원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들 모두 제 3지대 합류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다. 김해영 전 의원의 경우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SNS에 올린 말 외엔 덧붙일 말이 없다. 정치를 본격화하게 되면 그때 이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늘어난 무당층이 제 3지대를 지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새 정당이 성공하려면 기존 정치에 대한 대안과 더불어 조직력을 갖추고 명망있는 인사도 영입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프랑스 등 소위 말하는 정치 선진국도 제3의 정당은 있지만 많은 득표를 얻지 못 한다”며 “제 3당의 출현과 별개로 그 성공 가능성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인력난이 발생하는 건 ‘시기’의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총선이 임박해 당내 공천 갈등이 벌어지면 ‘정계 개편’ 바람이 거세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이렇게 되면 제 3지대 ‘입당 러시’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제 3지대 창당을 시도하는 이들은) 양당 체제를 해체시켜버릴 만큼의 큰 충격을 주자는 건데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그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며 “현재 양당 모두에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 여기에 (총선이 임박해) 공천권을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정계개편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혁신을 위해선 소박한 근본으로 돌아가라”

양당 체제에서 정치적 효용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국민들. 그러나 제 3지대 지지는 망설이는 유권자들. 그리고 당내에선 소외됐지만 탈당은 꺼려하는 정치인들. 과연 제 3지대는 어디에서 희망을 봐야할까. 정답은 없지만, 전문가들의 분석에서 힌트는 얻을 수 있다. 골목 식당이 대형 프랜차이즈와 같은 메뉴, 유사한 가격으로 성공을 거두기 어렵듯, 제 3지대도 양당이 제시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어젠다’(의제)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후미진 골목에 있는 식당도 ‘맛집’으로 소문나면 손님이 몰리듯, 새 정당이 ‘정치의 맛’을 보여줄 수 있다면 유권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철학자이자 지식인인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치는 한계에 이르렀고, 이는 곧 대한민국이 한계에 이른 것”이라며 “더 이상 양당에 우리 미래를 책임질 능력은 생길 수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운명은 새로운 세력이 형성돼 정치 환경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해내느냐 못하느냐가 결정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제3의 세력이 실패해 왔다고 하는 건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바라보는 사람들, 평가하는 사람들 모두가 결과주의에 빠져서 그렇다. 집권하지 못하면 다 실패라고 보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처음으로 교과서적인 정당을 시작한다는 자세로 덤볐으면 좋겠다. 정당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결사체다. 어젠다와 비전을 먼저 만들고, 사람을 모아 세를 형성하고, 비전을 설득하는 한 방편으로 권력을 잡는 순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집권을 위해 표를 얻기 쉬운 수단으로 거기에 맞춰 어젠다를 만든다는 건 앞뒤가 바뀐 거다.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 지금은 심각한 위기”라며 “혁신을 위해선 소박한 근본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시도들은 또 하나의 구세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