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등 직전 사서 폭락 전 팔았다”…기막힌 우연? 의도된 조작?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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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 진실공방으로 번진 SG發 하한가 사태
‘진짜 배후’로 키움‧서울가스 등 ‘회장님’ 정조준

국내 증권시장을 휘감은 ‘릴레이 하한가’ 사태가 주가 조작 의혹으로 일파만파 번지는 분위기다. 사태 초반까지만 해도 반대매매(융자 상환을 위한 강제 매각)에 따른 시세 급락으로 여겨졌으나, 통정거래와 대리투자 등 주가조작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주가 조작의 배후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언급되고 연루자로는 배우 임창정씨 등 유명인이 줄줄이 주목되고 있는 터라, 여의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연루자들은 하나같이 ‘나도 피해자’라거나 ‘기막힌 우연일 뿐’이라며 주가 조작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증권가에선 이들이 작전 세력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데 힘이 실린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합동수사팀을 꾸리고 진상 규명을 위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국내 증권 시장을 휘감은 주가 조작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라덕연 H투자자문사 대표가 ‘릴레이 하한가’ 사태의 배후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을 지목했다. 키움그룹 측은 명예훼손 혐의로 라 대표를 고소하기로 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국내 증권 시장을 휘감은 주가 조작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라덕연 H투자자문사 대표가 ‘릴레이 하한가’ 사태의 배후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을 지목했다. 키움그룹 측은 명예훼손 혐의로 라 대표를 고소하기로 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돈 번 사람이 범인” vs “공교로운 우연일 뿐”

2일 증권가와 법조계에 따르면, 합동수사단은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된 하한가 사태의 배경에 주가 조작이 있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태에 가담한 의혹을 받는 10명을 출국금지한 데 이어, 핵심 관련자들을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행위 등 혐의로 입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의 중심엔 라덕연 H투자자문회사 대표가 있다. H사는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미등록 투자자문업체로 알려졌다. 검찰은 라 대표를 비롯한 주가 조작 세력이 3년여 전부터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해 통정거래를 하며 8종목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올려 시세를 조정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통정거래란 매수자와 매도자가 미리 짜고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사고파는 거래를 말한다.

다만 라 대표는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라 대표는 다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미등록 투자업을 운영하고 대리투자를 한 사실에 대해선 인정했지만, 통정거래 등 시세 조종 의혹은 전면 부인했다. 대신 주가 조작 세력의 배후로 김익래 회장을 지목했다. 본인은 하한가 폭탄 사태로 400억 규모의 손실을 봤는데, 김 회장은 수천억원 규모의 이익을 봤다는 취지에서다. 라 대표는 김 회장이 공매도로 시세차익을 올렸고 이 과정에서 키움증권이 증거금을 납입 받지 않고 거래를 성사시켜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라 대표는 이 같은 의혹을 토대로 김 회장을 고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SG발 폭락 사태' 직전 다우데이타 보유 지분 일부를 매각해 605억원을 확보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왼)과 주가 조작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라덕연 H투자자문회사 대표 ⓒ 연합뉴스
'SG발 폭락 사태' 직전 다우데이타 보유 지분 일부를 매각해 605억원을 확보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왼)과 주가 조작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라덕연 H투자자문회사 대표 ⓒ 연합뉴스

‘하한가 폭탄’ 8개 종목 ‘대주주’에 쏠리는 의심의 눈초리

키움그룹 측도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라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하기로 했다. 김 회장은 다우데이타 폭락 2거래일 전인 지난달 2일 시간외 대량매매로 140만 주(3.65%)를 4만3245원에 처분해 605억원을 확보했다. 이에 김 회장 보유 지분율은 26.66%에서 23.01%로 낮아졌다. 이 같은 매매 타이밍은 ‘기막힌 우연’이라는 게 키움그룹 측의 공식 입장이다. 자녀의 증여세 납부를 위한 재원 마련 차원에서 공교로운 시점에 주식을 매각했을 뿐 시세 조작은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김 회장이 주식을 대거 매입한 시점도 폭등 직전이란 점에서 의구심을 키운다. 이날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가량 다우데이타 주식 3만4855주를 집중 매입했다. 김 회장이 주식을 집중 매입한 것은 2008년 이후 14년 만이다. 이후 4개월 만에 다우데이타 주가는 4배 가까이 폭증했다. 결국 폭등 직전 주식을 대량 매입하고 폭락 직전 되판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신 내림을 받은 게 아니면 우연이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지나치게 기막히다”라고 평가했다.

김 회장 이외에도 ‘형제주’로 통하는 서울도시가스도 의심의 눈초리를 사고 있다.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은 지난달 17일 시간 외 매매 방식으로 서울가스 주식 10만주를 팔아 456억9500만원을 현금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합동수사단은 다우데이타와 서울도시가스를 포함해 하한가 폭탄을 맞은 8개 기업의 최대 주주가 사전에 주가조작 여부 등을 인지했는지와 공매도 세력 연루 가능성 등을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가수 임창정이 'SG발(發) 대폭락 사태'와 관련한 주가조작 행위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임씨는 자신 역시 이번 사태로 30억원을 잃은 피해자라며 연루설을 부인하고 나섰다. ⓒ 연합뉴스
가수 임창정이 'SG발(發) 대폭락 사태'와 관련한 주가조작 행위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임씨는 자신 역시 이번 사태로 30억원을 잃은 피해자라며 연루설을 부인하고 나섰다. ⓒ 연합뉴스

피해 금액만 8000억원 규모 추정…피해자인가 피의자인가

이밖에 1000여 규모로 알려진 H투자회사의 투자자들이 피해자인지 공범인지 여부를 가르는 것도 쟁점 중 하나다. 임창정씨, 박혜경씨 등 연예인과 이중명 전 아난티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이번 사태에 투자한 이들로 알려졌으나, 이들 모두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 규모는 8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시세조종 범행을 사전에 인지하고 묵인 또는 방조했다면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증권가 관계자들의 공통된 해석이다. 시세조종 행위를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제176조는 ‘자기가 매도·매수하는 것과 같은 시기에 그와 같은 가격 또는 약정 수치로 타인이 그 증권 등을 매수·매도할 것을 사전에 그 자와 서로 짠 후 매도하는 행위(통정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한편 주식시장에선 이날까지 하한가 사태의 여파가 지속되는 분위기다. 이날 오후 1시45분 현재 ‘하한가 폭탄’을 맞았던 8개 종목 가운데 다올투자증권(0.75%)을 제외한 7개 종목이 하락세를 띠고 있다. 서울도시가스(-11.34%), 선광(-9.7%), 대성홀딩스(-8.66%), 삼천리(-8.10%), 다우데이타(-7.66%), 하림지주(-4.06%) 모두 하락세다. 이들 종목은 4거래일 연속 하한가 혹은 그에 준하는 낙폭을 보이다 지난달 28일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크게 몰려 반짝 반등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재차 주가가 빠지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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