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걸려 서울 와서 5분 진료…고되지만 지방엔 의사도 시설도 부족”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8 07:35
  • 호수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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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진료 왜 필요한가│‘서울행 열차’는 전국 환자들을 싣고 달린다]
[르포] 강원도 홍천 60대 부부의 10시간 상경 진료 동행 취재…“체력 언제까지 버틸까”
의료 격차·고령화 대안으로 주목…환자에 집중하는 원격진료 논의 절실

매달 마지막 주는 서울 가는 날이다. 정확하게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간다. 강원도 홍천에 사는 이기수(가명·67)·박상아(가명·67)씨 부부는 서울의 병원에 가는 날이면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집을 나선다. 병원까지 꼬박 3시간이 걸리는데 해 떨어지기 전에 집으로 다시 오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옷은 여러 겹으로 겹쳐 입는다. 강원도 새벽 날씨와 서울의 낮 날씨는 일교차가 크다. 보온병에 따뜻한 차를 타고 요기할 간식거리를 싸서 가방에 넣는다. 신발을 제일 편한 걸로 신는다.

5월3일 서울 송파구 잠실나루역 1번 출구 인근 서울아산병원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시민들이 줄지어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의료 인프라 ‘지역 불균형’ 탓에 고난의 상경 치료

남편 이씨는 요즘 머리와 눈이 아프다. 강원도의 몇 군데 병원에 가봤지만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선 서울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좀 더 확실한”이라는 말이 의사 입에서 나왔다. 아내 박씨는 오랫동안 암 투병을 했다. 몇 차례 수술과 항암치료 끝에 암 자체는 많이 좋아졌지만, 합병증이 그를 괴롭힌다. 집에서 50분이면 갈 수 있는 강원도에서 가장 큰 병원의 의사로 주치의를 바꿔보려고 했지만, 의사가 원래 다니던 병원에 계속 다니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부부는 매달 마지막 주에 서울에 간다.

‘홍천 집-용문역-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역(이하 고터역)’. 부부가 서울로 가는 경로다. 일단 강원도 집에서 30~40분 운전을 해서 경기도 양평의 용문역으로 간다. 몸이 좋지 않은 만큼 운전하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돌아오는 길에 차가 막히면 병원 진료 후 체력 부담이 가중돼 몸이 천근만근이 된다. 용문역에서 서울행 경의중앙선을 타고 고터역까지 대략 1시간45분을 간다. 부부가 ‘고터역’이라 부르는 곳에서 둘은 잠시 헤어진다. 이때가 오전 9시쯤이다. 아내는 강남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 남편은 주치의가 고대구로병원에 있다. 7호선으로 갈아타 25분가량 더 간다. 

3시간을 달려 부부가 실제 의사 얼굴을 보는 시간은 5~10분 정도다. 미리 예약해도 1시간 이상 대기할 때가 있는데 의사를 만나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15분을 넘지 않는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한 달을 버틸 약 처방전을 받는다. 한 달 내 생각해온 증상 경과와 몸 상태를 구체적으로 알린다. “문제가 없네요. 약 드시면서 좀 더 지켜보죠.” 의사의 이 말 한마디가 너무 반갑다. 이제야 안심이 된다. 그렇게 부부는 병원을 나와 다시 고터역에서 만난다. 11시에서 정오 사이. 서둘러 식사를 한다. 먹어야 다시 3시간 동안 집으로 갈 힘을 얻을 수 있다. 

부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갈 때 가끔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서울까지 왕복 6시간을 다닐 체력은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10년, 아니 5년 후에도 가능할까. 서울에서처럼 강원도에서도 서울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원격진료라고 불리는 비대면 진료를 하면 이런 수고를 덜 수는 있을까. 원격진료가 가능하더라도, 식당에서 키오스크 주문도 낯설 때가 있는데 과연 자신들이 그걸 무리 없이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대화의 끝에는 다음 달 병원에 올 때는 의사 얼굴을 보고 오늘 미처 못다 한 질문을 꼭 하자는 다짐이 매달린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진료, 수납 등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시사저널박은숙

“아프면 서울의 ‘빅5 병원’으로 원정 치료 간다”

지방에 사는 환자들이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싣고 서울 등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는 광경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평일 아침 서울 수서역 1번 출구와 3번 출구 앞에는 삼성서울병원 셔틀버스를 타기 위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는데, 상당수가 지방에서 수서행 고속철도(SRT)를 타고 올라온 이들이다. 

기자가 찾은 5월3일 오전 수서역 셔틀버스 정류장에도 대기 줄은 30m 이상 길게 이어져 있었다. 8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셔틀버스는 40분 만에 150여 명이 넘는 환자와 보호자를 병원으로 실어날랐다. SRT가 도착하면 셔틀버스 대기 줄은 더욱 길어졌다. 대기 인원이 너무 많을 때는 버스가 정류장에서 연이어 대기하기도 했다.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김소영씨(41)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나주에서 올라왔다. 가까운 광주광역시에 큰 병원이 있지만, 가족들끼리 상의한 끝에 처음부터 ‘명의’로 꼽히는 의사 선생님이 있는 서울 병원으로 가자고 결정했다. 이 결정은 쉽고 빨랐다. 서울의 ‘빅5’ 대형병원으로 꼽히는 곳 중 어딜 갈지를 결정하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김씨가 말한 이른바 ‘빅5’ 대형병원은 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서울아산병원·강남세브란스병원을 말한다. 수서역은 이들 5개 병원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환자들이 주로 찾는 역이 된 지 오래다. ‘수서행 SRT는 전국 환자를 싣고 달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 환자들이 서울로 몰리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지방의 의료 인프라가 수도권에 비해 취약하다는 엄연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상급종합병원은 서울(14곳), 경기(5곳), 인천(3곳) 등 수도권에 몰려 있다. 대구(5곳)를 제외하면 3곳 이상의 상급병원을 보유한 지역은 없었다. 상급병원은 종합병원 중에서도 500개 이상 병상을 갖추고 중증질환에 대해 고난도 의료행위를 하는 병원을 일컫는다.

의사 숫자 자체에도 지역 간 차이는 존재했다. 전문의는 수도권에 5만여 명이 몰려 있었다. 서울과 울산의 인구는 각각 942만 명과 110만 명으로 8.6배 정도 차이가 나는데 전문의 숫자는 서울 2만5109명과 울산 1570명으로 16배 차이다. 불안감에 일단 서울의 큰 병원을 찾는 현상도 ‘서울 쏠림’ 현상을 키우는 주된 원인 중 하나지만, 소아암이나 희귀암처럼 발생 빈도가 낮은 암 치료를 위한 의료 인프라 격차는 서울과 지방이 상당하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환자 2명 중 1명은 수도권에서 수술

통계를 보면, 지역 간 의료 인프라 격차가 환자들의 ‘서울 쏠림’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시사저널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주요수술통계연보’를 분석한 결과, 환자가 자신의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수술받은 비율은 2015년 23.3%(40만260건)에서 2021년 27.7%(58만1418건)로 상승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비율은 2015년 23.3%, 2016년 23.8%, 2017년 24.2%, 2018년 25.0%, 2019년 25.7%, 2020년 26.0%, 2021년 27.7%로 한 차례도 낮아지지 않고 계속 올라가는 추세를 보였다. 상당수의 지방 환자가 더 좋은 의료 인프라를 찾아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 서울 등에서 수술을 받고 있다고 읽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서울 쏠림’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주요수술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인들이 받은 상위 5개 수술의 절반 이상이 서울·경기·인천 등의 병원에서 이뤄졌다. 이 비율도 2015년 50.0%에서 2021년 53.7%로 계속 상승하고 있다. 수도권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국민 2명 중 1명의 수술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들에게 한국인들이 주로 받는 주요 수술 경험이 쌓이니 환자들도 점점 더 많은 임상 경험이 있는 수도권 병원으로 몰리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셈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의료계에는 지역 간 의료 인프라·서비스 격차라는 엄연한 현실이 자리한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와 지방 소멸 이슈가 겹쳐지면 문제는 간단치 않아진다. 지방에 늙고 아픈 노인은 넘쳐나는데 이들이 갈 병원은 충분치 않다. 노인들도 더 경쟁력 있는 서울의 병원을 찾으려 한다. 그럴수록 지방의 의료 경쟁력은 더욱 약해진다. 의사들에게 지방 근무는 금전적 보상뿐만 아니라 의학적 임상 경험을 쌓는 데도 불리하다. 이 악순환이 지금의 현실을 만들었다. 지금 지방에는 의사와 병원이 충분치 않다. 

엄혹한 현실을 극복할 대책으로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대안이 바로 ‘비대면 진료’라 불리는 원격진료 도입이다. 그동안 ‘의료 민영화’로 가는 수순이라는 우려 등 숱한 갈등과 반대로 번번이 좌초됐던 원격진료는 3년 전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가 닥치면서 불가피하게 도입됐다. 코로나19로 의료진과 환자의 안전을 위해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됐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19 종식으로 비대면 진료도 함께 종료를 맞게 돼 이게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세계보건기구가 5월 국제공중보건 비상사태 종료를 선언하고, 우리도 코로나19로 인한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를 하향하면 비대면 진료는 법적 근거를 잃게 된다. 비대면 진료가 지속되려면 의료법 개정이 필요한데, 비대면 진료에 반대하는 의료계 대다수와 찬성하는 관련 업계 간 입장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비대면 진료를 둘러싼 찬반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허용 범위(초진까지냐 재진만이냐)와 대상(비대면 진료 대상을 만성질환으로 한정하느냐 아니냐)을 놓고 찬반 세력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각자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수치를 내세우는 여론전도 뜨겁게 달아오르는 모습이다.

 

한치 양보 없는 원격진료 논쟁, 정작 환자와 가족 목소리는 빠져

그런데 시사저널이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사람 상당수는 정작 원격진료 논쟁에 제일 중요한 대상이 빠져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 대상은 바로 환자와 보호자였다. 원격진료를 둘러싼 논의에 의료 서비스 공급자인 병원과 의사, 간호사, 관련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말은 넘쳐나는데 정작 그 서비스를 누릴 수요자의 입장과 관점, 애로사항 등에 대한 청취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분당서울대병원에 모친이 입원해 계시다는 신혜륜씨(가명·30)는 “병원에 오빠가 보호자로 24시간 상주하고 있지만, 어머니 상태를 제때 제대로 충분히 전달받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환자 스스로도 현재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 제대로 몰라 매우 답답해한다”며 “일부 서울 상급종합병원에서는 매일 문자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환자의 진료 과정과 상태 변화, 혈압 등 기초 정보를 보호자에게 제공해 주는 걸로 안다. 원격진료를 정말 도입하고 싶다면 이미 구축된 인프라를 통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한 의료 정보를 제공해 비대면 진료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부터 낮춰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원격진료가 도입되면 매달 마지막 주에 왕복 6시간을 들여 병원을 찾는 부부는 그간의 불편과 수고를 덜 수 있을까. 이씨 부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된다면 분명 시간과 체력, 비용 등에서 부담을 덜 것 같다”며 “꼭 필요한 검사는 직접 서울로 가더라도 검사 설명은 집에서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부부는 원격진료가 본격화되면 5분 진료가 좀 더 친절하고 상세해지는 것인지 계속 되물었다. 부부의 반문에 지금 원격진료 논의에서 빠진 알맹이가 다시 한번 드러난다. 누구를 위한 원격진료인가. 이것을 묻고 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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