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강원도, 공모 없이 '매출 1조社' 배제하고 남헌기에 토지개발권 줬다
  • 공성윤·조해수·김현지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5 12:05
  • 호수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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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전세사기범 ‘건축왕’ 남헌기 의혹 밝힐, 그의 100GB 하드에서 찾아낸 물증
‘자산 9000억원대’ 中컨소시엄 눈독 들인 동해 개발권이 남씨에게 간 이유…”이미 짜놓은 판”

‘건축왕’ 남헌기(61)의 전세사기 의혹과 그의 동해 개발사업에 대한 당국의 고강도 대응이 예고된 가운데, 남씨의 행적을 뒷받침할 근거 자료를 시사저널이 대거 입수했다. 남씨 회사의 100GB짜리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통해서다. 이를 토대로 남씨 주변인과 지자체 관계자 등을 인터뷰해 남씨를 둘러싼 다섯 가지 의혹의 실체를 파헤쳐봤다.

4월27일 강원도 동해시 심곡동 419-1 일대 남헌기가 소유한 동해 망상지구 내 토지 ⓒ시사저널 최준필

의혹① 인천 전세금과 동해 개발은 무관?

남씨의 전세사기 의혹이 유독 세간의 조명을 받은 배경 중에는 그의 전방위적 사업 확장이 있었다. 인천 임대사업으로 자산을 쌓은 그가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 일대 토지를 낙찰받으며 망상 1지구 개발사업자로 선정된 것이다. 관건은 이 과정에 자금의 이동이 있었느냐는 점이다.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는 “전세보증금이 망상 땅 매입에 사용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남씨 측은 “인천 임대사업과 망상 개발사업은 별개”라고 반박했다.

핵심은 근거다. 남씨의 하드에는 2020년 10월 작성된 ‘회사 보유 담보물건 현황’이란 제목의 문건이 들어있다. 여기서 ‘회사’는 망상 1지구 개발사업자이자 남씨가 실소유한 법인 ‘동해이씨티’를 가리킨다. 해당 문건에는 남씨가 직접 소유한 O아파트를 비롯해 남씨 일당 명의로 된 주택 5채(총 509세대)가 나열돼 있었다. 총 분양가는 1477억원이다. 주택 건축을 위한 대출금은 806억원, 여기서 거둔 전세금은 190억원으로 적혀 있다. 또 분양가에서 대출금과 전세금을 뺀 금액이 따로 나와 있다. 부채(대출금 및 전세금)를 제외한 순자산, 즉 담보 가치가 얼마인지를 시사하는 부분이다.

해당 문건의 용처는 알 수 없다. 다만 담보물 가치를 정리한 것으로 미뤄보아 동해이씨티가 담보대출을 받거나 신용 보강이 필요할 때 활용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망상 개발을 맡은 동해이씨티가 담보물이 필요할 땐 인천 임대주택을 동원했음을 보여준다. 문건에 나온 주택 5채 중 O아파트를 포함한 4채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 명단과 일치했다.

망상지구 투자금 출처에 관한 자료는 또 있다. 2017년 6월 동해이씨티 전신 상진종합건설은 망상 개발사업 주체인 강원도 산하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동자청)에 사업제안서를 제출했다. 입수한 제안서에는 재원조달 방안으로 ‘임대보증금’과 ‘임대료 수입’이 적혀 있다. 또 “효율적 타인 자본 조달 방법을 도입해 금융비용 발생 최소화”란 문장이 나온다. 대출이자 부담을 줄이는 대신 전세보증금을 돈줄로 쓰려 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동해이씨티는 자체 수익원이 없었다. 망상지구 안에서 운영한 타조농장이 유일한 사업체였지만 매출은 전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타조농장 직원 인건비 300만원과 망상 땅 낙찰대금 143억원에 대한 대출이자가 매달 빠져나갔다. 수입이 없으니 동해이씨티와 타조농장을 실소유한 남씨가 이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검찰은 남씨가 세입자들 전세금으로 대출이자와 급여를 돌려 막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박정훈·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 제공
3월6일 남헌기 일당에게 피해를 입고 극단적 선택을 한 30대 남성 세입자의 집 앞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 제공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박정훈·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8년 10월22일 망상지구 내 외국교육기관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남헌기 ⓒ시사저널 박정훈

의혹② 남씨 회사가 자산 1조2000억원 대기업?

동해이씨티의 사업자 선정을 두고도 숱한 의혹이 제기됐다. 주요 의문점은 회사의 재무 건전성이었다. 동해이씨티 전 신 상진종합건설이 2017년 6월 동자청에 낸 사업제안서를 보면, 회사 규모에 관해 ‘자산 1조2000억원’ ‘연 매출 3880억원’ ‘직원 2521명’ 등으로 적혀 있다.

이는 거짓이었다. 하드에서 발견한 2017년(회계연도 2016년) 상진종합건설 재무제표에서 확인한 수치는 ‘자산 15억원’ ‘연 매출 48억원’이었다. 인건비는 기껏해야 직원 2~3명 몫에 불과한 6450만원이었다. 남씨 사업 실무를 담당했던 외부 관계자도 실적을 부풀렸음을 인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시사저널과 만나 “하도급업체의 일용직 노동자를 직원에 포함시키고 관계사의 실적을 모두 합산해 과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상진종합건설은 사업제안서를 통해 “2004~16년 누적 매출액이 4조5000억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회사의 개업 날짜는 2011년 5월이다. 또 개업일부터 2016년까지 매출액을 모두 합해도 약 320억원에 불과했다.

상진종합건설의 열악한 재무 구조는 2020년 말 동해시에서도 문제를 제기한 부분이다. 이에 강원도는 그해 11월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당시 감사와 관련해 동자청 망상사업부장 A씨는 언론에 “상진종합건설 재무제표는 회사에서 밝히지 않는 한 알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업자 유치 과정에서 투자의향서(사업제안서)를 받은 것뿐이며 자산, 매출, 직원 수 등은 평가 대상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상진종합건설이 당초 밝힌 회사 규모대로라면 외부감사 대상으로 재무제표를 공시하게 돼있다. 전자공시시스템에서 검색만 해보면 알 수 있었던 부분이다. 또 망상 개발사업 근거인 경제자유구역법에 따르면 시·도지사는 사업자를 지정할 때 ‘재무 건전성과 소요자금 조달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 동자청 측은 ‘최종 개발사업자는 상진종합건설이 아닌 동해이씨티’라고 주장했지만 의미 없는 얘기다. 동해이씨티는 사업 달성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에 불과한 데다 실소유자는 어디까지나 남씨이기 때문이다. 동해이씨티의 지분 70%는 남씨 회사인 상진종합건설이, 30%는 남씨 개인이 갖고 있다.

검찰도 상진종합건설이 주장한 회사 규모를 문제 삼았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 남씨를 경제자유구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입수한 공소장에 의하면, 검찰은 “남씨는 개발사업자 지정에 있어 재무 건전성과 소요자금 조달 능력도 법률상 고려 사항임을 알았다”며 “회사 규모나 재무 상태로는 개발사업자로 지정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산, 자본, 매출액 등을 부풀리기로 마음먹었다”고 판단했다.

동해이씨티 명의로 2020년 10월 작성된 ‘회사 보유 담보물건 현황’ 문건 ⓒ시사저널 입수
상진종합건설의 2017년(회계연도 2016년) 내부 재무제표. 사업제안서에서 밝힌 내용과 달리 ‘매출 48억원’ 등으로 적혀 있다. ⓒ시사저널 입수

의혹③ 남씨는 어떻게 143억원 땅 선점했나?

사업자 선정 과정에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이처럼 부실한 업체를 왜 공모도 없이 뽑았느냐는 점이다. 동자청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관련법상 공모하지 않고 투자의향이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협약을 맺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사업자 선정 당시 투자의향을 내비친 기업이 상진종합건설 외에 3곳 더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회사 2곳과 중국 회사 1곳이다.

이 중 중국 P사는 항공기 임대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 투자그룹이다. P사는 중국의 또 다른 건설 대기업 K사와 컨소시엄을 맺고 2017년 중순 망상 개발사업에 출사표를 냈다. 두 회사가 동자청에 제출한 투자계획서에 따르면 2016년 P사의 자산 규모는 722억원, K사는 8493억원이다. 매출액은 각각 90억원, 1조1635억원이고 직원 수는 117명, 8102명이다. 상진종합건설이 거짓으로 부풀린 규모보다 더 크다. P사의 국내 영업을 담당한 이아무개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동자청 직원들이 중국에 직접 가서 회사 실사도 하고 통장 잔고까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동자청은 그에 비해 영세한 상진종합건설을 2017년 7월17일 예비개발사업자로 선정했다. 또 업무협약(MOU)도 맺었다. P사도 MOU 체결을 원했지만 무산됐다. 다만 예비사업자가 되더라도 정식 사업시행을 하려면 망상지구 토지의 50% 이상을 소유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에 상진종합건설은 경매에 나온 망상동 일대 178만㎡를 2017년 9월4일 감정가(143억원) 100%에 단독 낙찰받으며 조건을 충족하게 됐다.

P사 측 이씨는 이때도 특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매 개시일이 2017년 3월이었는데 동자청은 우리에게 미리 그 사실을 얘기해 주지 않다가 MOU 체결 여부를 논의할 때 뒤늦게 알려줬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래도 MOU만 허락해 줬다면 이를 근거로 외교부 승인을 받아 낙찰대금을 늦게라도 중국에서 끌어왔을 텐데 결국 실패했다”며 “투자계획서 만드느라 설계비용만 수억원 날렸다”고 했다. 이씨는 “다 짜놓은 판에 들어간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P사를 최종 배제한 동자청 이아무개 본부장은 2020년 휴직 후 지병으로 사망했다. 망상사업부장을 지낸 A씨는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의혹④ 남씨의 조력자는 누구?

인천에서 남씨의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범은 임대인,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 등 61명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는 남씨의 딸 B씨(34)도 포함돼 있다. ‘바지 임대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사저널이 입수한 하드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활동한 흔적이 나와 있다. B씨는 본인의 이름을 딴 건설사를 통해 동해이씨티 및 남씨 일당과 인적·물적 교류를 했다. B씨는 329억원의 예상 수익이 기대되는 주상복합주택 분양사업을 인천 미추홀구에서 진행 중이다.

망상 개발사업에도 조력자가 있었다. 주요 인물은 동해이씨티 재무이사 C씨다. 법무사 사무장 출신인 그는 남씨의 ‘금고지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씨의 관계사 어디에도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시사저널이 확보한 거래처 명단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익명의 외부 관계자는 C씨에 대해 “남씨의 비자금 조성을 맡은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남씨의 알짜 자산은 C씨에게 갔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C씨는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동해이씨티 부사장을 지낸 오아무개씨도 거론된다. 망상동 출신 오씨는 5선 강원도의원을 역임했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로 6선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망상 개발에 뛰어든 남씨와 연을 맺었다. 오씨는 강원도 정가에서 동해이씨티 사업을 홍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실익은 없었다고 한다. 최재석 도의원은 오씨에 대해 “남씨가 실무를 맡을 현지인을 찾다가 하수인으로 부린 것”이라며 “거간꾼처럼 이용만 당했다”고 주장했다.

오씨는 지난해 6월 동해시장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나섰지만 4월말 공천 탈락했다. 이후 심규언 현 시장을 돕기로 했으나 갑자기 선거를 2주 앞두고 경쟁 후보와 손을 잡았다. 그 배경에 관해 심 시장은 “오씨가 선거 막판까지 찾아와 ‘남씨를 만나 달라’고 부탁했지만 내가 거절하자 등을 돌린 것”이라고 했다. 오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고향이 개발되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에 1년 정도 남씨를 도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자금 경색이 닥쳐 남씨가 사기꾼으로 몰렸지만 동해시가 사업계획을 제대로 검토하고 수사기관도 영장 집행을 재고했다면 남씨가 세입자들 전세금을 돌려줬을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2017년 7월 중국 컨소시엄이 동자청에 제출한 사업제안서. 컨소시엄 양사의 자산 합산액은 9215억원, 매출액 1조 1725억원, 직원 수 8219명으로 나와 있다. ⓒ시사저널 입수

의혹⑤ 경매 취소시키면 피해자 구제 가능?

남씨의 자금 경색은 금리 인상과 함께 찾아왔다. 동시에 전세보증금 반환이 미뤄지면서 인천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사기 혐의 고소가 이어졌다. 결국 지난해 8월부터 동해이씨티 소유의 망상 땅이 경매에 나오기 시작했다. 미추홀구 피해대책위원회는 “동해이씨티 관련 자산을 전액 압류해 피해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해이씨티의 생각은 다르다. 남씨 측 대변인인 추광규 동해이씨티 신임 대표는 “경매를 취소시키고 동해이씨티를 정상화한 후 지분을 매각하는 게 피해자들을 구제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또 동해이씨티가 아직 망상 개발사업자 지위를 박탈당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동자청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동자청 관계자는 “사업 정상화를 위해 작년 하반기에 이미 개발사업자 교체 계획을 수립했다”면서 “경매를 취소시킬 돈이 있다면 피해자에게 반환하는 게 급선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망상 개발사업자 지위를 박탈하지 않는 것은 동해이씨티 측의 불복 소송 가능성 때문”이라며 “경매에서 다른 사업자가 망상 땅을 낙찰받으면 동해이씨티 토지 보유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져 자연스럽게 사업자 지위를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별도로 동해이씨티 지분 매각 자체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망상 토지 등기부등본을 보면 대출 공동담보 목록에 회사 지분도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남씨의 재산을 추적해 피해를 보전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남씨 일당이 보유한 법인·개인 사업자 중 현재 존속 중인 곳은 38곳이다. 이들 사업자의 재산 몰수가 한 가지 방법으로 거론된다. 단 해당 사업자가 이번 전세사기에 연루돼 있는지 규명하는 게 우선이다. 경찰은 남씨 일당에게 사기죄보다 형량이 무겁고 범죄수익 몰수·추징이 가능한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검토 중이다. 검찰은 5월2일 남씨의 횡령 혐의를 포착하고 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강원도는 최근 망상 개발사업 감사에 착수했다. 이 와중에 남씨는 5월3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사기 혐의 2차 공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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