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노트] “노영민 자금책, 홈앤쇼핑·허인회 태양광”
  • 조해수·김현지·공성윤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9 10:05
  • 호수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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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정근 노트에서 가장 비중있게 나와...관계도의 맨 꼭대기에 위치

친노·친문·친명계의 돈줄이 적힌 이른바 ‘이정근 노트’가 공개됐다. 이정근 노트는 ‘노무현’, ‘문재인’, ‘재수회(문재인을 재수시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모임)’, ‘류영진(문재인 정부 초대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이재명 7인회’ 등의 제목으로 각각 A4용지 1장 분량으로 작성됐다.

더불어민주당 현역 국회의원 14명을 비롯해 51명의 실명이 등장한다(4월21일자 <[단독입수]친노·친문·친명 돈줄 적힌 ‘이정근 노트’…판도라 상자 열렸다> 기사 참조).

문재인 정부의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정근 노트에서 가장 비중 있게 소개되고 있다. 노 전 비서실장은 ‘문재인’, ‘재수회’, ‘류영진’ 등의 노트에서 “재수회 좌장”으로 관계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시사저널 이종현·뉴시스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시사저널 이종현·뉴시스

노영민-이정근-박씨 연결고리 “신학림, 이상호”

이정근 노트에는 노영민 전 비서실장-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사업가 박우식씨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각종 청탁의 대가로 박씨로부터 10억여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4월12일 1심에서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전 사무부총장은 노 전 비서실장을 내세워 박씨로부터 수억원을 챙겼다.

박우식씨는 노영민 전 비서실장·이정근 전 사무부총장 외에도 다양한 민주당 관계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씨는 친노계 인사들과 오래전부터 막역한 관계를 맺어왔던 것으로 파악됐다(2020년 1월6일자 <[단독]‘정세균 포스코 청탁’ 朴씨, 친노 인사들 로비 의혹> 기사 참조).

가장 먼저,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과 박우식씨는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이재명 7인회’ 노트에는 “신학림(김두관의 친구)-박○○(전 민주당 지역위원장), 최○○(전 민주노동당 지역위원장), 이정근을 박우식에게 소개했으나 이정근이 노영민, 문재인, 송영길과 두루 친하다는 것을 이유로 이정근만 상대함”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신학림씨는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으로, 김두관 민주당 의원과 중·고교 동기다. 이와 관련해 신 전 위원장은 “이정근, 박우식을 전혀 모른다. 이정근의 ‘이’자도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노영민 전 비서실장과 박우식씨 사이에도 친노 인사가 등장한다. ‘류영진’ 노트에는 “이상호를 통해 박우식과 노영민이 연결됨”이라는 대목이 있다. 또한, 박씨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에 막대한 후원금을 조달했다는 내용도 기재돼 있다.

이상호 전 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은 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에서 ‘미키 루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상호 전 위원장은 ‘라임 사태’의 주범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8년 7월, 이 전 위원장이 “총선에 나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며 김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3000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전 위원장이 감사로 있던 전문건설공제조합이 김 전 회장의 사업에 투자하도록 알선해 주는 대가로 5000만원을 받은 혐의와 동생 회사가 판매하던 양말 1800만원어치를 김 전 회장에게 구매하도록 한 혐의도 받았다.

2021년 9월 대법원은 이상호 전 위원장에 대해 징역 1년6개월을 최종 선고했다. 최근 출소한 이 전 위원장은 “박우식이라는 사람을 전혀 모른다. 그런 일 자체가 아예 없었다”고 반박했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이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왼쪽), 이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 ⓒ뉴시스·시사저널 자료

노영민 “이정근과 각별한 사이...많이 도와주세요”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박우식씨와의 첫 만남부터 노영민 전 비서실장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구속영장청구서·공소장에 따르면,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2019년 12월 초순 박씨에게 “나는 유력 정치인 송영길 국회의원의 측근이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도 친하다”고 말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은 이런 방식으로 수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챙겼다(4월21일자 <이정근, 송영길 거론하며 공천헌금 요구 “내 뒤에 송영길 있다…스폰해 달라”>기사 참조).

노영민 전 비서실장이 본격적으로 연루된 사건은 ‘용인 스마트물류단지 인허가’, ‘포스코건설 보유 우선수익권 인수’ 등이다. 먼저 용인 스마트물류단지부터 살펴보자.

판결문에 따르면 박우식씨는 2020년 3월13일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과의 통화에서 “내가 물류센터(용인 스마트물류단지) 28만 평을 하고 있잖아. 이제 형식적인 절차만 남았어. 그랬는데 심의를 못 열겠다는 거야. 비서실장님(노영민)한테 한 번 이야기해봐. 빨리,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동생(이정근)이 한번 비서실장님한테 얘기 좀 해줘”라고 요청했다.

이에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나쁜 놈의 ××들, 빨리빨리 일을 해야지”라면서 노영민 전 비서실장에게 연락해 보겠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이 전 사무부총장이 노 전 비서실장을 앞세워 박씨로부터 2020년 3월25, 26, 31일 각각 3000만원 등을 받았다고 봤다.

박우식씨는 2020년 상반기에 포스코건설의 구룡마을 우선수익권을 사들여 구룡마을 주민자치회에 되팔려 했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에게 노영민 전 비서실장의 “도움”을 요청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2020년 8월25일 박우식씨가 “동생이 비서실장이라고 하는 것도(비서실장에게) 너무 약하게 얘기를 하고 있어, 지금”이라고 타박하자,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오빠, 나한테 한 달이나 두 달쯤 시간 좀 줘. 내가 비서실장님하고 ‘비즈니스 관계’로 전환을 해야 하니까”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 노영민 전 비서실장을 팔아 박우식씨로부터 2020년 6월30일 1억7000만원, 7월1일 3000만원, 7월14일 5000만원, 8월25일 5000만원 등을 챙겼다고 판단했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노영민 전 비서실장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를 스스로 남기기도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2021년 1월24일 16시32분경 이 전 사무부총장은 박우식씨에게 노 전 비서실장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텔레그램 메시지로 발송했다.

이와 관련해 박우식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 청와대 내부에서 노영민 (전) 비서실장과 손을 잡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면서 “이 (전) 사무부총장이 ‘노영민 (전) 비서실장에게 전달한다’며 돈을 받아간 것 역시 팩트(fact)다. 그러나 실제로 돈이 전달됐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노영민 전 비서실장과 박우식씨 간에 통화까지 이어줬다. 판결문에 따르면 2021년 1월24일 16시55분경 이 전 사무부총장의 전화를 건네받은 노 전 비서실장은 박씨에게 “제가 우리 이정근 위원장(민주당 서초갑 지역위원장)하고 옛날 인연은 있어 가지고 아주 각별하게 지내는 사이인데, 회장님(박우식)께서 또 많이 도와주신다 그래 가지고,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노영민 전 비서실장은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 CJ대한통운 자회사인 한국복합물류의 상근고문으로 채용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는 지난해 말 노 전 비서실장을 출국 금지했다. 시사저널은 노 전 비서실장의 입장을 듣고자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접촉했으나, 끝내 입장을 듣지 못했다.

동남아 순방길에 오르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1일 서울공항에서 노영민 비서실장과 이동하고 있다.
동남아 순방길에 오르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1일 서울공항에서 노영민 비서실장과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통해 인사청탁·알선 해결함”

박우식씨는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 외에도 문재인 정부 청와대로 이어지는 ‘줄’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재명 7인회’ 노트에서 “성식경”씨는 노영민 전 비서실장과 “특수관계”로 묶여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대책위원회 출신인 성씨는 “딸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는데 “박우식에게 관외에서 사람을 붙여주고,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자신의 딸을 통해 인사청탁·알선 등을 해결함 <딸이 심부름 담당>”이라고 자세히 소개돼 있다. 또한 성씨는 ‘노무현’, ‘문재인’ 노트에서 “부산·경남 인맥 관리”를 맡은 것으로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동서발전 감사,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장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던 성식경씨는 “우리 딸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딸이) 박우식을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다”면서 “나는 이정근이라는 사람하고 일면식도 없다. 노 실장님(노영민)하고도 사적으로 만난 적도 없고 통화도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박우식은 알고 있다. 대선 때 후배 통해서 만났다. 선거 끝나고도 다른 일로 가끔 만났다”면서 “기사(4월21일자 <[단독입수]친노·친문·친명 돈줄 적힌 ‘이정근 노트’…판도라 상자 열렸다>) 나가고 나서 박우식한테 전화해서 ‘네가 얘기한 것을 (이정근 노트로) 쓴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냐’고 하니까, 박우식이 ‘나는 관계없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제이에스티나
김기문 제이에스티나 회장(오른쪽)이 2018년 10월11일 중국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행사의 자사 홍보부스에서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이에스티나

노영민 전 비서실장-김기문 회장의 오랜 인연

‘문재인’ 노트는 노영민 전 비서실장의 자금책으로 “홈앤쇼핑”과 “허인회 태양광”을 지목했다. 홈앤쇼핑의 대주주는 중소기업중앙회(32.83%)다. ‘이재명 7인회’ 노트는 “조○○(박우식 측근)”과 “중소기업중앙회(여의도)”를 쌍방향 화살표로 묶고 “친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 서승원 (중기중앙회) 부회장-조○○이 요청하는 중소기업 대출 알선 등 처리”라고 적시했다.(4월28일자 <[이정근 노트]“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중소기업 대출 알선 등 처리”>, 5월5일자 <[이정근 노트] “친문 자금책” 홈앤쇼핑, 1000억원대 비자금 의혹> 기사 참조)

서승원 전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은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 전문위원 출신이다. 서 전 부회장은 2018년 말 임명될 당시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다. 서 전 부회장이 문재인 정부의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것이다. 당시 중기중앙회 노동조합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서 전 부회장에 대한 취업승인 불허요청 호소문과 직원들의 취업승인 반대 서명을 전달하기도 했다. 중기중앙회 임직원의 80%가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서승원 전 부회장의 입장을 듣고자 수차례 연락했으나, 서 전 부회장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이정근·박우식씨를 전혀 알지 못한다”면서 “중소기업 대출 알선은 중기중앙회 시스템상 불가능하다. 홈앤쇼핑이 친문 핵심 자금책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영민 전 비서실장과 김기문 회장은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우선, 노 전 비서실장(청주)과 김 회장(괴산)은 충북이 고향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노영민 전 비서실장과 김기문 회장 사이도 급속도록 가까워졌다. 노 전 비서실장이 2018년 10월 주중대사로 근무할 때 대사관에서 ‘2018년 국경일 및 국군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외교단, 교민, 특파원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였다.

재계를 대표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아모레퍼시픽 등 10여 개 대기업이 초청됐다. 주얼리·패션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제이에스티나’가 초청됐는데, 김기문 회장이 대표로 있는 회사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사관에 제이에스티나 홍보부스를 따로 만들어 핸드백, 선글라스 등 다양한 상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2020년 4월15일 21대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경만 의원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했다. 당시 중소기업계에서는 “김기문 회장이 노영민 비서실장의 전화를 받고 김경만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을 비례대표로 추천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김기문 회장이 이를 직접 해명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국회에서 김태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를 예방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노영민 실장님이라고 말한 적은 없고 민주당 인사가 면담을 한 후 중소기업인 후보 추천을 원했다”면서 “노 실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그렇게 와전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만 의원은 노 전 비서실장 추천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얘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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