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 띄우고 심야시위 금지…“자유 어디로” 들끓는 노동계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2 17: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與, 노·정 ‘강대강 대치’ 속 집시법 개정 추진
경찰 면책 등 ‘공권력 힘 싣기’에 노동계·野 반발
5월17일 출근시간대 시민들이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전날 밤 총파업 결의대회 후 노숙하고 있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원들을 지나치고 있다. ⓒ 연합뉴스
5월17일 출근시간대 시민들이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전날 밤 총파업 결의대회 후 노숙하고 있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원들을 지나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와 노동계 간 충돌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기획 분신설' 의혹으로 노동계가 들끓는 와중에 정부·여당의 '물대포' 발언과 집시법 개정까지 맞물리며 노·정 관계는 한층 더 얼어붙었다.  

국민의힘은 22일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1박2일 도심 노숙집회'를 '불법적 민폐 행위'로 규정하고 심야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법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집회·시위 장소 주변에 피해를 주는 과도한 소음 규제도 강화할 뜻을 분명히했다. 당정은 최대 소음 기준을 낮추거나, 소음 측정 횟수를 줄여 현장에서 신속하게 소음 규제에 들어가는 방향으로 시행령 개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상 방뇨와 음주, 노숙 등에 경찰이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면책 조항' 입법도 추진한다. 박 의장은 "정당한 공무집행에 대해서는 확고하게 보장하고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노조의 1박2일 총파업 결의대회를 기점으로 '살수차(물대포) 부활'까지 거론되는 등 정부·여당의 노조 압박 강도는 한층 더 세지는 양상이다. 박 의장은 지난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물대포를 없애고 수수방관하는 물대응으로 난장 집회를 못 막는다"며 "불법집회 하는 사람들을 제 식구 보듯 하던 이전 정부와 달라졌음을 분명히 알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이 경찰 면책 조항을 포함한 입법을 추진하는 것도 '강경 진압'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집회 현장에 경찰 살수차가 동원된 것은 2015년 11월 '백남기 사건'이 마지막이었다. 백씨는 박근혜 정부 시절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 살수차가 쏜 강한 물줄기에 머리 등을 맞고 쓰러졌고 10개월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 이듬해 9월 사망했다.

이후 경찰 책임론이 거세졌고 2020년 1월 심각한 수준의 소요사태에만 살수차를 쓸 수 있도록 경찰장비 사용 관련 규정이 바뀌었다. 집회현장에서 살수차는 자취를 감췄고, 경찰은 2021년 살수차 19대를 전량 폐차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박대출 당 정책위의장 ⓒ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박대출 당 정책위의장 ⓒ 연합뉴스

노동계는 정부·여당이 헌법상 보장된 집회와 시위 자유를 훼손하고, 물대포까지 재소환 해 과거로 후퇴하고 있다고 강력 반발하는 분위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고(故) 양회동씨 시망과 관련한 '분신 기획설'에 화력을 더한 점을 두고도 부글부글하는 모양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고(故) 양회동씨 유족 등은 이날 분신 방조·유서 대필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들과 및 관계자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건설노조는 SNS에 분신 방조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공유하며 "혹시나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쓴 원 장관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찰청에서 앞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조 집회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찰청에서 앞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조 집회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한수 민주노총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여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건설노조처럼 불법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유사집회는 금지 또는 제한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강 부위원장은 "국민의 집회결사 자유 기본권을 기본적으로 침해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야간 집회 금지·제한에 대해서도 "1박2일 일정상 수많은 조합원들이 이동하기 힘들고 그러다 보니 불가피하게 노숙하게 되는 과정들인데, 이것을 마치 불법 집회나 불법 시위 같은 것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숙'과 '집회'는 별개로, 이동이 여의치 않아 길 위에서 숙박한 것을 '노숙 집회'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계약해 둔 청소업체와 세 차례에 걸쳐 거리 청소를 포함해 뒷정리를 했다며 "오물이 있는 상황만을 부각했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자유'를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가 '건폭몰이'에 이어 집회와 시위 자유를 탄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이기중 정의당 부대표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확대됐기에 국민의힘도 자유한국당 시절 전광훈 목사의 손을 잡고 태극기 휘날리며 광화문을 누빌 수 있었다"며 "여당이 됐다고 집회 시위를 제한하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며,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기억 못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금 불법집회를 엄단하라고 길길이 뛰는 국민의힘 지도부도 4년 후엔 또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설지 모를 일"이라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오늘만 사는 정치는 그만 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