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진 트로트 오디션 혐오증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9 11:05
  • 호수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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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행사 시장 양극화 이슈 속 애꿎은 오디션에 집중포화

최근 20대 트로트 가수의 사망을 계기로 트로트 행사 시장 양극화 문제가 제기됐다. 트로트 전성시대라고 하지만 과실이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 트로트 전성시대 때문에 기존 트로트 선배 가수들과 무명 가수들은 오히려 피해를 본다고 했다. 전성시대를 소수의 신예 스타들이 이끌다 보니 행사 시장에서 출연료가 그 신예 스타들에게 집중된다는 것이다. 한정된 시장 규모에서 신예 스타가 많은 부분을 독식하니 트로트계 자체는 속빈 강정이 된다는 것. 

그러면서 트로트 오디션이 문제의 출발이라고 했다. 트로트 오디션이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벼락스타들을 탄생시켜 시장을 독식했다는 이야기다. 트로트 오디션이 이런 소수 독식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트로트 행사 시장의 소수 독식 문제만이 아니라 트로트 오디션 자체가 승자 독식 구조여서 소수만 빛을 본다는 것이다. 그 밖에 상위권 입상자가 이미 내정됐다는 의혹이 나오는 등 공정성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들도 등장했다.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트롯2》의 한 장면 ⓒTV조선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트롯2》의 한 장면 ⓒTV조선

트로트계만 문제가 심각할까 

이런 논리엔 많은 문제가 있는데, 일단 20대 트로트 가수가 성공하지 못한 것이 트로트계의 문제점이라고 하는 것부터 과도하다. 대중문화계 어느 분야든 무명 신인은 빈곤하다. 그나마 트로트계는 미래 희망이 조금 큰 편이다. 아이돌이라면 20대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실패를 예감할 수 있지만, 트로트 시장은 30·40대에 성공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활동시기가 60·70대까지도 이어지기 때문에 20대에 빛을 못 봐도 다른 대중문화 영역에 비해 비교적 희망이 있는 편이다. 그러므로 20대 가수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다른 영역도 아닌 트로트계를 콕 집어 문제라고 하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트로트 행사 시장 양극화, 소수 독식 문제도 그렇다. 양극화는 모든 대중연예 영역의 기본 속성이다. 아이돌 시장 양극화는 정말 극단적이다. 최상층 일부는 국제적 인기를 누리면서 놀라운 매출을 올린다. 하지만 뜨지 못한 다수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마이너스 상황이다. 그나마 트로트 행사 시장은 이보단 나은 편이다. 스타가 아닌 트로트 가수도 아주 약간의 수입 정도는 올릴 가능성이 있다. 

행사 시장 양극화 문제에서 트로트 오디션 탓으로 넘어가는 것도 이상하다. 아이돌 오디션 스타가 시장에서 각광받는다고 아이돌 오디션을 탓하진 않는다. 그런데 왜 트로트 오디션 스타가 그러면 트로트 오디션 탓을 할까? 그리고 소수 스타에게 출연료를 몰아주는 건 행사 주최 측이고 행사 시장의 관행이다. 이건 트로트 오디션이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행사 시장의 문제를 지적해야 할 사안이다. 신예 스타로 인해 선배들의 설 자리가 사라져 간다는 지적도 의아하다. 신예 스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대중연예계의 일반적 현상이다. 

트로트 오디션에 제기되는 ‘승자 독식’ 지적도 이상하다. 승자 독식은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통 구조다. 그나마 《미스터트롯》은 승자 독식 현상이 약한 편이었다. 톱7에 들지 못한 탈락자들도 많은 조명을 받았고, 오디션 후속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입상자가 내정됐다는 의혹은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언론이 이런 인터넷 음모론을 무분별하게 전하는 건 무책임하다. 

트로트계와 트로트 오디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들이 당연히 있는 건 맞지만 그건 다른 부문에서도 공통된 문제들이고 오히려 트로트 행사 시장이나 오디션 쪽은 문제가 덜한 편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왜 트로트계와 트로트 오디션에 대한 문제 제기가 반복될까. 

4월8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프로축구 K리그1 대구FC와 FC서울의 경기 시축자로 나선 가수 임영웅이 하프타임 때 팬들을 위한 깜짝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오래된 차별 

이건 오래된 트로트 혐오 또는 트로트 차별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트로트 차별은 뿌리 깊다. 과거 서구 문화와 그에 기반한 청년 문화는 뭔가 선진적이고 엘리트적인 것으로 인식됐다. 실제로 록, 포크 등을 즐긴 집단의 학력이 높기도 했다. 반면에 트로트는 서민이 즐기는 음악으로, 뽕짝이라고 불렸다. 저학력이란 이미지가 있었고 왜색이란 굴레도 있었다. 그래서 트로트는 음악적으로 내세울 만한 장르가 아니라는 인식이 컸다. 이런 편견이 아직까지도 이어지면서 《미스터트롯》으로 인해 터진 트로트 신드롬을 고깝게 바라보는 시선이 나타났다. 

또 요즘은 젊은 세대의 문화적 배타성이 매우 높아졌다. 원래도 젊은 세대에겐 기성세대의 문화를 거부하려는 속성이 있다. 그런데 미디어 플랫폼이 다변화·개인화되면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콘텐츠를 볼 이유가 사라졌다. 과거엔 집 안에서 TV 한 대를 공유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어른 프로그램도 봐야 했지만 지금은 철저히 자기 취향의 콘텐츠만 본다. 그래서 세대 간 문화적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멀어졌고 젊은이들의 문화적 배타성도 높아진 것이다. 안 그래도 트로트 편견이 있는 마당에 높아진 문화적 배타성까지 겹쳐 더욱 트로트 신드롬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트로트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가요무대》 정도에서나 소리·소문 없이 존재해야 하는데,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시리즈가 큰 신드롬을 일으켰다. 송가인과 임영웅 등 깜짝 스타가 포털 메인을 장식하고 이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이 시청률 1, 2위를 다투며 대중문화의 양지를 차지하자 불쾌감을 느끼는 젊은 세대가 많아졌다.  

그렇다 보니 《미스터트롯》 이후 트로트 오디션과 그 신드롬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그런 논리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황당한 건 트로트 오디션을 안 본 것 같은 사람이 “트로트 오디션 지겹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이다. 그냥 트로트 오디션이 화제가 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니까 이런 반응들이 나왔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땐 정작 감염 사태가 일어난 프로그램엔 별 비판이 없는 가운데, 《미스터트롯》 후속 예능에 비판이 집중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이렇게 트로트 오디션과 그 신드롬을 부정적으로 보던 차에 한 트로트 가수의 비보가 전해지자 또 그전부터 해왔던 비판 논리를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받는 시대에 구시대적인 트로트 차별이 이어진다는 점이 놀랍다. 서구식 음악만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문제다. 트로트도 힙합, 댄스, 발라드와 동등한 하나의 장르다. 트로트를 즐기는 사람들도 서구식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과 동등한 음악 청자다. 음원차트에 왜 트로트곡이 올라오냐고 화를 내는 누리꾼들은 이런 부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트로트 차별도 이제는 청산해야 할 악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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