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G 2023] “불확실성의 시대 ‘4R’ 지켜야 살아남는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7 10:05
  • 호수 17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존전략 리빌딩(Rebuilding)․가치 회복(Recover)․기업 안정(Relief)․혁신(Reform)이 핵심
시사저널 주최 ‘컨퍼런스G 2023’에서 전문가들 한목소리로 주문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주역 계사전의 유명한 구절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영원하다’는 뜻이다. 최근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공포가 한국 경제를 집어삼켰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지 오래다. 전례 없는 수출 급감과 무역적자로 인해 한국 경제의 성장 곡선이 위협받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받았던 기업들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5월24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시사저널 컨퍼런스G 2023에서 권대우 시사저널 대표이사 부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기업 생존 전략, 원점에서 리빌딩해야”

그렇다고 마냥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후퇴하고 물러서는 기업에 R의 공포가 거대한 장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잘 대비하는 경제 주체들에게는 이 위기가 ‘넥스트 레벨’로 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시사저널이 5월24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 그랜드살롱에서 ‘컨퍼런스G 2023’을 주최한 이유다. 올해 11회째를 맞은 컨퍼런스G의 주제는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 OO으로 넘자’다. 권대우 시사저널 발행인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들에는 R의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기업 전략은 물론이고 생존 전략도 원점에서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 부회장은 현재 한국 경제의 상황을 ‘스톨 스피드(stall speed)’에 빗댔다. 스톨 스피드는 항공기가 수평 고도를 유지하면서 비행하기 위한 최저 속도다. 이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비행기는 추락하게 된다.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가 현재 고꾸라지지 않을 정도의 스톨 스피드로 겨우 버티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기업들이 생존 전략을 리빌딩(Rebuilding)하고, 가치를 회복(Recover)하고, 기업을 안정(Relief)시키며, 혁신(Reform)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오프닝 세션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인적자원, 즉 휴먼 오크라시(Human-ocracy)’가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세계적인 경영 구루인 피터 드러커는 ‘문화는 전략을 아침으로 먹는다’고 말했다. R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15%는 전략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85%는 기업의 문화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면서 “행동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문명을 만든다. 문명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의 생각이다. 이것이 휴먼 오크라시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정책 싱크탱크 애덤스미스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이몬 버틀러 소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R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로 그가 꼽은 것은 ‘공감’이다. 그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과 공감함으로써 강력한 커뮤니티를 구축한다”면서 “이 공감은 기업 성공의 매우 중요한 요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혁신이나 아이디어, 자본이 무엇이든 간에 이해와 공감이 없다면 위대한 기업가가 될 수 없다”면서 “지식과 기술, 창의성, 유연성, 집중력, 충성도 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리더가 인적자본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감 구축에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 영국의 팀슨(Timpson)이다. 이 회사는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직원들에게 제품의 가격을 정하고 고객의 불만을 해결하도록 의사결정 권한과 직무수행 자유를 부여했다. 그 결과 팀슨은 영국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오프닝 세션을 진행하고 있는 김기찬 가톨 릭대 경영학부 교수 ⓒ시사저널 이종현

진주시는 왜 폐교를 기업가정신센터로 리모델링했나

이날 컨퍼런스G의 모더레이터로 참석한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대학 교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꼬집었다. “사람에게 신뢰를 줬을 때 실패를 관용할 수 있는 문화도 중요한데 한국 사회는 실패에 자비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버틀러 소장은 “한국뿐 아니라 영국도 학술적인 성공, 학문적인 성공에 많이 집착한다. 직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도록 기업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경상남도 진주시의 최근 행보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영학회는 2018년 7월 진주를 ‘대한민국 기업가정신의 수도’로 선정했다. 경영학회가 주목한 것은 진주의 지수초등학교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고(故) 구인회 LG 창업주 등 재계 거물 4명이 이 학교 출신이다. 진주시가 2018년 폐교됐던 지수초등학교를 최근 기업가정신센터로 리모델링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서구에서 얘기하는 기회 포착, 도전, 위험 감수 등 기업가 정신 외에도 인간 존중, 인본주의, 우국애민 등이나 사업보국 같은 내용들이 이들 4개 기업의 경영철학에 녹아있다”면서 “덕분에 지난해부터 교육을 시작했는데 벌써 2000명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설명했다.

이날 컨퍼런스G 2023에는 세계적인 경영 전략가인 게리 하멜 런던비즈니스스쿨 전략 및 국제경영 담당 교수가 키노트 스피치 연사로 참석했다. 그는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이코노미스트, 포천 등은 21세기 최고의 경영 구루(Guru)로 그를 선정했다. 그가 R의 공포에 대응하기 위해 제시한 핵심 키워드는 ‘관리 혁신’이다. 그는 “산업 현장에서는 기술적으로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관리 혁신은 전무하다”면서 “고질적인 관료주의로 의사결정 단계가 여전히 많고, 직원들의 잠재력과 재능은 좁은 틀 안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톱다운(Top-down), 통제, 조율 등 관료주의는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발명품이지만, 19세기에나 통했던 구식이다”면서 “직원들의 재능과 잠재력을 좁은 틀에서 꺼내야 새로운 과제에도 도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관리 혁신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이다. 하이얼의 관리 계층은 단 두 개에 불과하다. 거대한 회사를 4000개 이상의 소기업으로 쪼개고, 새로운 기회 창출을 위해 각 비즈니스 파트가 협력하도록 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두둑한 인센티브는 덤이었다. 하이얼의 사례처럼 경쟁사보다 빠르게 관리 혁신을 이루는 기업만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는 조언했다.

이해선 한국마케팅협회 회장(코웨이 고문)도 기업의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빙그레, 태평양을 거쳐 CJ오쇼핑과 CJ제일제당, 코웨이에서 대표이사를 지낸 마케팅 전문가다. 지난 40여 년 동안 그가 기획해 조 단위 가치로 키운 브랜드만 10개가 넘는다. 이 회장은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가 5% 이상이다.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10%는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마케팅 전략의 혁신이 중요해졌다. 그 혁신은 다름 아닌 변화를 미리 준비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에너지와 원자재 비용 상승으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에너지 비용 상승 압박은 다시 인건비와 금융 및 환경 비용 상승으로 이어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복합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도 가장 먼저 대두되는 것이 에너지 비용 절감이다”면서 “친환경 산업에는 이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 전기차 수출과 친환경 선박 주문 급증은 그런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다”고 말했다.

오후 세션에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R의 공포를 이겨낸 구체적인 사례가 소개됐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별 관광발전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17개국 중 15위다. 해마다 순위가 상승 중이다. 김장실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특히 K팝과 K드라마 등이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등으로 시각을 넓혀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광산업은 일자리 창출과 GDP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면서 “관광이 세계적인 경기 침체 위기 속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몬 버틀러 애덤스미스연구소 소장과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대학 교수가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위기일수록 단골 전략이 먹힌다”

에이치와이(hy·옛 한국야쿠르트)가 식품기업에서 유통기업으로 거듭나 성공한 사례도 소개됐다. hy는 2021년 한국야쿠르트에서 지금의 사명으로 바꿨다. 이후 야쿠르트 등 유제품 방문판매 채널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새로운 배송사업을 시작했다. ‘야쿠르트 아줌마’로 불리는 프레시매너저를 활용, 밀키트와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프레딧을 구축했다. 지난 4월에는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을 800억원에 인수했다. 덕분에 hy는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인 1조1001억원을 기록했다. 신승호 hy 미케팅&세일즈 부문장은 “오래된 기업일수록 내부에 신사업 진출에 대한 두려움이 많고 반대도 심하다. 하지만 기업은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혁신은 말 그대로 가죽을 벗겨내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트렌드와 ‘단골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요컨대 미국 Z세대는 TV를 보지 않지만 NBA만은 즐겨 시청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 스포츠 리그의 매출이 감소했지만, NBA의 매출은 반대로 증가한 게 대표적인 예다. 이 연구위원은 “NBA 인스타그램에는 Z세대가 열광할 포인트가 가득하다. Z세대가 숏폼을 통해 경기 영상을 올릴 수 있도록 저작권 관리를 느슨하게 해 단골 의식을 높였다”면서 “이 단골 전략을 비즈니스에 적용한다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