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野 ‘줄다리기’에 가려진 존재감?…與의 딜레마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5.3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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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방송법도 ‘野 강행→尹 거부권’ 악순환 전망…“여야 협상이 먼저”
野 “여야 역할 바뀐 듯, 의지 안 보여”…與 “여소야대 정국선 불가피 상황”

최근 주요 입법과제가 ‘야당 강행처리→대통령 거부권→재의결 부결’ 무한루프에 갇힌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에서 강행처리한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이어 ‘노란봉투법’과 ‘방송법’ 등 남은 법안에도 줄줄이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면서다.

정치권 일각에선 정부와 야당 간 ‘줄 충돌’이 김기현 지도부의 악재가 될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정치 국면이 ‘윤석열vs이재명’ 대선 2라운드로 굳어질 경우 김기현 대표를 비롯한 현역 여권 의원들의 존재감이 옅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 이 같은 이유로 최근 여권 내부에서도 ‘당정일체’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세 번째 ‘대통령 거부권’ 가시화…“국회에 여당은 없나” 지적도

30일 국회 상황을 종합하면, 민주당은 현재 ‘본회의 직회부’ 상태인 노란봉투법과 방송법 등을 6월 국회에서 강행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의 강행처리에 반발하며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 등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후속 조치를 예고했다. 하지만 현재 여당 의석수로 거대 야권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다시 ‘대통령 거부권’ 카드를 꺼내들었다. 윤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이 노란봉투법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할 경우 윤 대통령에게 ‘세 번째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즉각 노란봉투법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대통령실도 여권의 ‘대통령 거부권 건의’ 예고에 발을 맞추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같은 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법안을 신중히 고려해 판단하겠다”면서도 “일부 언론에서 (야당의) 일방적인 입법 강행을 가리켜 ‘입법 폭주’라는 용어까지 쓴다”며 “그게 문제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야당과 대통령 간 ‘입법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집권여당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간호법의 경우 국회 계류 기간 등을 포함하면 충분히 야당과 조율할 시간 많았음에도, 결국 개정안 조율에 실패해 윤 대통령에게 부담감을 안겼다는 지적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킬 때 ‘여야 협상’이 먼저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행해지는 후순위”라며 “현재 국회에 ‘여당은 없는 상태’다. 윤 대통령과 여당의 직할체제가 구축되면서 여야 관계는 뒷전이 돼버렸고, 협치 없이 대통령과 야당이 강대강 대치를 이루면서 정치는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선 집권여당의 존재감 실종이 ‘의지 부족’과도 연관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 공보실 관계자는 “여당과 야당의 역할이 바뀐 것 같다. 지난 예산 정국에서부터 이어져온 여당의 수비적 태도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며 “문재인 정부에서의 여당은, 결과는 어떨지 몰라도 임대차3법 등 중요 정책을 정부보다 먼저 제시하고 추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4전 중진인 우원식 의원도 지난 24일 KBS 《사사건건》에 출연해 노란봉투법의 본회의 직회부 배경을 설명하며 “(국민의힘 소속이 위원장인) 법사위에서도 일을 안 한다. 위원장이 싫으면 안건 상정을 안 한다”며 여당이 제대로 일을 안 한다고 직격했다. 그는 앞서 cpbc 라디오 《오창익의 뉴스공감》에서도 “여당이 본인들이 여당인 거를 아는지 야당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국가를 제대로 운영하는 모습이 아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39주년 기념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39주년 기념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與 내부서도 존재감 어필 촉구…“집권당 역할 통해 악순환 끊어야”

여당에선 ‘여소야대’ 정국에서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무리 집권여당이라도 거대야당 앞에서 힘을 쓰긴 어렵다는 주장이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우리가 의석수 때문에 이번 국회에서 입법을 추진하는데 애를 먹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며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서 의석수를 확보해야 강력한 정책들을 추진하는 게 수월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여권 내에서도 ‘당정 관계’ 변화를 통해 여당의 존재감을 어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윤(비윤석열)계 국민의힘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대통령에 대해서 견제와 균형, 또는 긴장관계를 만들어내는 것도 집권당의 역할”이라며 “우리는 ‘용산의 사당(私黨)’이 아니라 입법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에게만 의지하지 않고 최대한 국회 내에서 협상을 통해 조율하며 현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부담이 덜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상병 평론가는 “김기현 대표가 윤 대통령과 직접 만나, 야당의 사법리스크와는 별개로 국정 운영을 위해 야당과 협치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교적 성과를 이뤄냈으니 이젠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고 상당 부분을 당이 앞장서게 뒤에서 도와달라고 (대통령 측에 촉구)해야 한다”며 “그 다음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만나서 여야 관계를 정상화시키고 적극적으로 협상과 협치를 이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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