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석도 형사의 ‘주먹이 온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2 13:05
  • 호수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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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어떠한 딜레마도 없는 범죄 드라마

2017년, 한국은 《범죄도시》를 만났다. 악랄한 범죄자인 장첸(윤계상) 일당을 시원하게, 말 그대로 ‘때려잡는’ 괴물 형사 마석도(마동석)가 한국 영화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688만 관객이 화답한 1편에 이어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가가 초토화됐던 여름, 마석도 형사는 1269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와 함께 속편으로 돌아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적. 심지어 제작진조차 얼떨떨하게 받아들인 성적표와 함께 이 시리즈에는 전에 없던 역할 하나가 부여됐다. 스스로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극장가의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것이다. 벌써 세 번째 이야기를 내놓는 《범죄도시》 시리즈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한국 영화 시장에 모처럼의 활력이 될 수 있을까. 모든 기대가 마석도 형사의 주먹으로 모이고 있다.

영화 《범죄도시3》의 한 장면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나쁜 놈 잡는 데 이유는 필요 없다

베트남 납치 살해범 강해상(손석구) 검거 이후 7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사이 마석도는 1, 2편에서 함께 활약한 금천경찰서 강력반 형사들과 작별을 고했다. 이제는 광역수사대에서 뛰는 그의 곁에는 장태수 반장(이범수), 김만재(김민재) 등 새로운 동료들이 포진해 있다. 지역 범죄를 상대하던 마석도는 이미 글로벌 범죄를 소탕하는 해결사가 돼있다. 이번엔 한국과 일본을 넘나드는 마약 유통 일당이 그의 레이더에 잡힌다.

호텔 추락사 사건에 약물이 연루됐음을 파악한 마석도는 신종 마약 하이퍼의 경로를 쫓는다. 그 과정에서 밀수 조직에 잠입했던 다른 형사가 이미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실도 드러난다. 야쿠자 토모(안세호)는 일본에서 몰래 빼돌린 약을 한국 파트너 주성철(이준혁)과 손잡고 유통해 왔다. 주성철은 새롭게 찾은 루트인 중국 조직과의 거래를 위해 20kg 분량의 하이퍼를 확보하는 데 혈안이 돼있다. 그사이 마약 횡령을 파악한 야쿠자 보스는 킬러 리키(아오키 무네타카)를 한국에 보내고, 목숨이 위험한 토모는 하이퍼를 가지고 잠적한다. 약을 찾으려는 주성철, 그와 토모를 쫓는 리키, 이들 모두를 추적하는 마석도와 광수대의 작전이 펼쳐진다.

《범죄도시3》는 별다른 예열이나 새로운 학습이 필요하지 않다. 확실하게 ‘아는 즐거움’으로 승부한다. 무리하게 몸집을 키우는 대신 관객이 이미 기대하는 바를 정확하게 타격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마석도에겐 위기가 없다. 설령 있더라도 금방 다시 재생 버튼이 눌릴 일시정지 정도에 불과하다. 극 중 마석도의 동료들은 물론이고 영화를 보는 관객 중 그의 안위를 염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마 형사의 주먹에 나가떨어질 악당의 충격과 공포를 염려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정의의 심판이 필요한 범죄자들에게 동정은 사치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마석도의 일갈은 이럴 때 주효하다. “나쁜 놈은 그냥 잡는 거야.”

마석도는 예나 지금이나 사연 없는 남자다. 우리는 누구도 시리즈 출발 이전의 마석도의 개인적 사연에 대해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이후 등장할 시리즈의 또 다른 속편에서 프리퀄로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인물을 뒷받침할 설명으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부분이 곁가지 취급을 받고 있다. 이번 편의 악당 중 한 명인 주성철도 마찬가지다. 그는 마석도가 잡아야 할 범죄자지만, 진짜 정체가 밝혀진 이후에도 그가 어떻게 마약 조직과 손잡게 됐는지 등의 사연은 밝혀지지 않는다.

여전히 중요한 건 오직 마석도의 주먹이다.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날아가 꽂힐 것인가. 상대는 얼마나 화끈하게 곤죽이 될 것인가. 그 타이밍과 방식이 기다려지기까지 하는 건, 전편들을 거쳐 오며 누굴 만나도 결코 지는 법 없는 마석도 형사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구축됐기 때문이다. 어떠한 딜레마도 없는 범죄 드라마. 3편으로 돌아온 《범죄도시》 시리즈가 여전히 고수하는 핵심이다.

영화 《범죄도시3》의 한 장면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범죄도시3》의 한 장면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범죄도시3》의 한 장면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범죄도시3》의 한 장면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범죄도시3》의 한 장면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범죄도시3》의 한 장면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더 긴 레이스를 지속하기 위한 과제

1편에서 ‘전 변호사’(전기충격기)를 호출해 위성락(진선규)을 압도했던 마석도. 이번에는 ‘주 변호사’를 소개하겠다며 꽉 쥔 주먹을 악당에게 들이민다. 웬만한 슈퍼히어로 영화 못지않게 설계된 타격 사운드가 귓가에 울리는 사이, 잊을 만하면 빈틈을 훅 파고드는 유머는 여전한 전매특허다.

마석도가 정보원 김양호(전석호)를 취조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도주한 양호를 찾아 모텔로 온 석도는 침대에 앉아 진지하게 취조를 시작하려는 중이다. 이때 하필이면 팀원들이 누른 스위치는 현란한 미러볼 조명을 켜고 원형 침대를 돌아가게 만든다. 웅크리고 앉은 마석도는 아담한 오르골 장식처럼 보일 지경이다. ‘민중의 지팡이’를 ‘민중의 몽둥이’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아가리또 고자이마스’로. 여전히 한 끗 모자란 마석도의 언어능력 역시 과격한 액션 사이에서 익숙한 윤활유 역할을 한다.

캐릭터를 일관성 있게 가져가면서 긴 공백을 두지 않는 것은 《범죄도시》 시리즈의 주요한 전략으로 보인다. 실제로 길게는 몇 년씩 기다려야 하는 여타의 시리즈 영화들에 비해 2편부터는 1년에 한 편씩 개봉하는 부지런한 속도다. 무술감독을 맡아온 허명행 감독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4편은 이미 촬영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즈가 더 긴 레이스를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위한 숙제도 남아있다. 전편들과 달리 악당을 두 명으로 내세웠지만 파괴력은 오히려 덜한 편이다. 그들이 얼마나 잔혹하게 사람을 죽이는 이들인지의 묘사는 이미 충분한 것으로 봐서 캐릭터 설계 차원에서의 아쉬움으로 지적할 만하다. 비슷한 탬플릿에 사건과 몇 가지 디테일만 갈아 끼운 듯 보이는 구성도 회차를 거듭할수록 반복의 피로를 남길 여지가 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아직은 진부함보다는 익숙함으로 받아들여지는 면이 더 크다는 점이다.

마동석이 수장으로 있는 빅펀치 엔터테인먼트는 2편부터 공동 제작사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주연배우가 기획과 각본에까지 참여하면서 시리즈는 사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마동석 영화’로 구분된다. 총 8편까지 이미 구상을 마쳤다는 마동석에게 《범죄도시》는 “연골과 주먹, 영혼을 갈아 넣은 작품”이다. 한 명의 캐릭터에게 한국 영화 시장 전체의 활력이 되기를 바라는 건 여러모로 무리한 요구 같지만, 《범죄도시》 시리즈는 어쩐지 그게 가능할 것도 같은 희망을 품게 하는 영화다. 마석도가 보여줬던 통쾌한 ‘한 방’이 극장가에도 통한다면, 이제부터 그를 정말로 슈퍼히어로라 불러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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