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교체하지 말고 ‘시대’를 교체하라 [최병천의 인사이트]
  •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9 16:05
  • 호수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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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사태’가 호출한 ‘2023 청년 정치’의 빈곤함
‘시대 과제’ 해결 위한 ‘대안적 청년 정치’는 안 보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한국 정치에서 2023년 5월은 ‘김남국과 가상자산’의 달이었다. 처음에는 김남국 의원이 가상자산 투자를 한다는 뉴스였다. ‘국회의원은 투자도 하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지났더니, 김 의원이 ‘야수의 심장’을 가졌다는 뉴스였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신생 가상자산 계좌에 10억원 규모의 재산 전부를 풀 베팅했고, 수익률이 200% 이상이었다. 김 의원이 알고 봤더니, 야수의 심장을 가진 투자의 귀재라는 뉴스였다. 혹자는 대한민국 국민연금 기금 일체를 ‘김남국 펀드’에 맡겨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조금 더 지나니, 김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가 중독 수준이라는 게 드러났다. 한동훈 청문회가 열리는 상임위원회 자리에서도, 이태원 참사를 추궁하는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도 김 의원은 야수의 심장으로 가상자산 투자를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국민의힘 당대표로 출마했었던 천하람은 “‘김남국의 이모(某) 논란’이 이제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알고 봤더니, 김 의원의 주업(主業)은 가상자산 투자였다. 부업(副業)이 국회의원 의정활동이었다. 김 의원은 민주당 의원총회를 앞둔 당일 오전에 민주당을 자진 탈당했다. 징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 논란으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무소속 의원이 5월30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지역사무소에서 나오고 있다. ⓒ뉴스1

‘청년 할당’과 ‘세대교체론’이란 청년 정치 담론 

한국 정치에서 ‘청년 정치’에 관한 담론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먼저 ‘청년을 표방하는’ 정치다. 주로 청년에게 할당할 때 사용된다. 민주당의 경우 2012년 제19대 국회에서 장하나와 김광진이 ‘청년 배려’ 차원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받았다. 2020년 제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청년위원장 출신 장경태, 학생위원장 출신 전용기에게 비례대표 의원직을 줬다. 역시 청년 배려 차원이었다. 

다른 하나는 ‘나이가 청년에 해당하는’ 정치인들을 일컫는다. 정치권에서 청년의 기준은 만 45세로 통한다. 사람들은 왜 나이가 청년인 것을 주목하는 것일까? ‘세대교체 열망’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다수는 여전히 종북 빨갱이 타령을, 민주당 다수 역시 토착왜구 타령을 한다. 청년들은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정신 멀쩡한 청년 보수와 청년 진보가 등장하면, 그간의 저급한 싸움과는 구분되는, 조금은 더 멋진 정치를 해줄 거라는 기대가 담겨있다. 

2020년 21대 국회가 개원할 때, 만 45세 이하 청년 국회의원은 총 26명이었다. 비율로 보면,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8.7%였다. 총 26명 중 민주당 소속은 15명(57.7%)이다. 국민의힘 소속은 8명(30.8%)이다. 민주당 소속 청년 국회의원 숫자가 국민의힘에 비해 7명 더 많다. 그 밖에는 정의당 2명, 기본소득당 1명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5월14일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5월14일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번의 세대교체, 1박3김 등장과 86세대 부상

김 의원은 1982년생이다. 나이가 청년인 경우다. 제21대 국회의원이 되던 2020년 기준으로 만 37세였다. 2023년 현재 40세다. 김 의원은 ‘가장 인지도가 높은’ 청년 정치인 중 한 명이 됐다. 가상자산 사태가 있기 전에도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았고, 가상자산 사태로 인해 확고부동하게(?) 가장 유명한 청년 정치인이 됐다. 

김 의원이 청년 국회의원 전부를 대표하진 않는다. 26명 중 한 명일 뿐이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질문은 26명의 청년 국회의원은 ‘이전 세대 정치인들’보다 대안적인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지 여부다. 

한국 정치사에서 세대교체는 두 번 있었다. 첫 번째 세대교체는 ‘1박3김’의 등장이었다. 1박3김은 박정희(1917년), 김대중(1924년), 김영삼(1927년), 김종필(1926년)을 의미한다. 이들의 출생연도는 모두 비슷했다. 1917~1927년생이었다. 1박3김 이전, 한국 정치의 주역은 이승만(1875년), 신익희(1895년), 윤보선(1897년), 장면(1899년)이었다. 1박3김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 정치는 약 30년 정도 젊어졌다. 세대교체와 함께 시대교체도 이뤄졌다. 한국 정치사에서 군부 엘리트 출신이었던 박정희와 김종필은 산업화를, 야당의 대표 정치인이었던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를 주도했다. 한국 정치사에 1박3김이 남긴 업적이다. 

두 번째 세대교체는 ‘86세대’의 등장이다. 86세대란 1980년대 학번이고,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86세대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1980년 광주’였다. 전두환 일당이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대통령이 된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 1997년 김대중 정부의 집권, 2002년 노무현 정부의 집권을 통해 20여 년에 이르는 ‘점진적-연속적’ 민주화 과정을 거쳤다. 한국 정치사에서 86세대가 남긴 최대의 업적은 군부독재를 몰아내고, 권위주의 세력의 회귀를 저지한 것이다. 

2023년 현재, 세 번째 세대교체 주역들의 ‘시대적 미션’은 무엇인가? 26명의 청년 국회의원 중 ‘시대적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2021년 6월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됐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대선을 앞두고, ‘탄핵을 찬성했던’ 37세 청년을 뽑았다. 국민의힘이 ‘탄핵의 강’을 건너던 순간이었다. 

모든 세대교체는 나이 교체가 아니라 ‘세계관의 교체’였다.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시대적 미션에 도전하던 과정이었다. 김남국은 중요하지 않다. 가상자산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청년 정치’가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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