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정원 8인회 숙정?...김규현 원장, 尹 대통령 독대했다”
  • 조해수·김현지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6 07:3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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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국정원 국장급 간부 8명 '대기발령' 조치
김규현 원장 측 “간첩 잡는 '국정원 정상화'를 방해하는 세력의 음해”
대통령실 "엄중 조사 중...국정원장 진퇴 논할 단계 아냐”

국정원 관계자 A씨: “6월8일 용산(대통령실)에서 난리가 났다. 얼마 전 국가정보원에서 국·처장에 해당하는 1급 간부 10여 명에 대한 인사가 있었는데, 이때 ‘인사 전횡이 있었다’는 투서가 대통령실에 들어왔다. 8일 오전에 김남우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호출돼 대통령실의 관계 비서관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인사 대상자 중 7명에 대한 ‘대기발령’ 지시가 내려졌다. 이를 전달받은 김규현 국정원장이 대통령실을 급히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해명을 했다. 그러나 대기발령 지시는 그대로 유지됐고, 6월12일 공문으로 통지됐다.”

국정원 관계자 B씨: “투서의 핵심 내용은 국정원 내부에서 ‘자기 세력화’를 도모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고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진노했다고 한다. 심지어 ‘당장 면직하라’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김규현 원장이 윤 대통령을 독대하면서 ‘문재인 정부 때 망가진 국정원을 정상화하고 있는데, 이를 방해하는 세력이 음해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또한 ‘진상조사 후 사실이라면 어떠한 책임도 달게 받겠다’고 해, 면직에서 대기발령으로 겨우 바꿨다고 한다.”

국정원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규현 원장이 제청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한 국정원 1급 보직 인사가 일주일 사이에 번복됐다. 10여 명의 인사 대상자 중 7명과 인사 책임자인 국정원 인사처장까지 국장급 간부 8명이 ‘대기발령’ 조치됐다.

이를 두고 국정원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김규현 원장 사퇴설까지 거론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 국정원 고위 간부는 “쉽게 말해 계열사 사장이 부사장·전무·상무 등 임원진 인사를 냈는데, 그룹 회장이 이 인사를 ‘없던 일’로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나가라’는 얘기 아니겠는가”라면서 “이번 사태는 윤석열 대통령이 김규현 원장을 사실상 ‘불신임’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지금은 김규현 원장의 진퇴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2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규현 원장 최측근’ K 전 방첩센터장, ‘인사 전횡’ 지목돼

투서에서 인사 전횡을 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은 K 전 국정원 방첩센터장이다.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대통령실 관계자 등에 대한 시사저널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국정원 1급 보직 인사에서 대기발령을 받은 인물은 K 전 방첩센터장과 그의 국정원 동기 3명, 주미공사, 주일공사, 해외분석국장 등 7명으로 알려졌다. K 전 방첩센터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정책 관련 요직으로 옮길 예정이었다고 한다.

투서에는 K 전 방첩센터장과 동기 3명이 승진한 것을 문제 삼으며 ‘K 전 방첩센터장이 국정원 요직에 자기 사람을 심으면서 세력화에 나서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K 전 방첩센터장은 김규현 원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김 원장은 외무고시를 패스한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김 원장이 국정원에 입성하면서 ‘조력자’로 선택한 인물이 K 전 방첩센터장이다. 김 원장은 국정원장 비서실장으로 K 전 방첩센터장을 임명했다.

이후에도 K 전 방첩센터장은 김규현 원장의 ‘국정원 정상화’ 드라이브에서 중심에 있었다. 김 원장이 국정원장 직속의 ‘방첩센터’를 신설하면서 센터장으로 K를 앉힌 것이다.

국정원의 기존 조직도로 보면, 방첩센터는 대공 수사를 담당하는 2차장 산하에 두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김규현 원장은 중간 과정을 생략한 국정원장 직할 부서를 만들어 차장급들(1~3차장, 기조실장)과의 내부 헤게모니 투쟁 과정에서 주도권을 가져오고자 했던 것이다. 실제로 방첩센터는 지난해 말부터 창원·진주·전주·제주 민주노총 간첩 사건을 주도하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국정원 관계자는 “김규현 원장 체제 아래 K가 국정원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문제들이 불거진 것은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사 문제”라면서 “김 원장이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고, 만약 몰랐다면 이는 ‘무능력’이다. 둘 다 국정원장 자격이 없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이 1월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서울 사무실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물이 든 상자를 들고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원 내 진정한 우파는 3%에 불과”

반면, K 전 방첩센터장 측은 “국정원 내 좌파 성향 간부들이 K 전 방첩센터장으로 대표되는 우파들을 중상모략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정원 직원 약 50%가 좌파적 성향을 지녔고, 약 47%는 정권 부침에 따라 좌파 혹은 우파에 기생해온 이익형 집단이다. 3% 정도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혼심의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매파(대북 강경파)’라고 할 수 있는 김규현 원장이 취임하면서 우파가 중용되자 좌파들의 공작이 시작됐는데, K 전 방첩센터장은 시작에 불과하고 결국 김 원장의 옷을 벗기면서 우파를 밀어내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인사 대상자 7명과 인사처장에 대한 대기발령 직후 국정원 인사기획관에 S가 임명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 내 우파는 “S 인사기획관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 적폐청산 TF’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국정원을 망가뜨린 인물”이라면서 “S 인사기획관이 정체성이 확고한 직원들(우파)을 솎아내는 작업에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투서에 기반한 대기발령 조치는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K 전 방첩센터장과 우파에서 인사 전횡을 했는지에 대한 ‘선(先) 진상 확인-후(後)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투서 내용이 거짓일 경우, 음해를 한 세력을 끝까지 밝혀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정원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K 전 방첩센터장의 인사 전횡을 ‘투서’를 통해 알게 됐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대통령실은 투서를 일일이 대통령에게 모두 보고한단 말인가”라면서 “누군가 투서를 빌미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기망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사저널 박은숙
김규현 국가정보원 원장(앞줄)이 2022년 9월28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뒷줄은 왼쪽부터 당시 조상준 기조실장, 권춘택 1차장, 김수연 2차장, 백종욱 3차장 ⓒ시사저널 박은숙

김규현 원장, 인사 놓고 조상준 전 기조실장·권춘택 1차장과 갈등

김규현 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 인사를 둘러싼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김 원장은 국정원 직원들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매파 중의 매파'로 전해진다. 특히 김 원장은 인사에서 ‘이념적 선명성’을 가장 중요시했다.

이를 보여주듯, 김규현 원장은 국정원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정체성 교육’을 도입했다. 국정원 직원이라면 하루 8시간씩 3일간 모두 24시간의 이념 교육을 수료해야만 한다. 강사는 외부에서 초빙했는데, 대학교수는 물론이고 최원일 천안함 함장과 전향한 남파간첩도 강의를 했다.

또한,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신원검증센터를 신설해 국정원 외부 공직자의 정체성까지 살펴봤다. 

그러나 국정원 내부에서도 김규현 원장의 인사 기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조상준 전 기조실장이 대표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 국정원 고위 간부는 “김규현 원장은 투철한 국가관이 있다면 징계 전력이 있더라도 중용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조상준 전 기조실장은 이에 반대했다. 결국, 김 원장과 조 전 실장이 각자의 인사안에서 50%씩 절충하기로 했다. 그런데, 김 원장이 미국에 나간 사이 조 전 실장의 인사안이 100%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면서 “김 원장이 이에 대해 항의하자, 윤 대통령이 김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 때문에 조 전 실장이 임명 4개월 만에 자진 사퇴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규현 원장은 취임 후 문재인 정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대대적인 ‘물갈이’ 작업에 착수했다. 2022년 6월 1급 보직국장 27명 전원을 대기발령한 데 이어, 같은 해 말 2·3급 간부 인사를 통해 100여 명을 또다시 대기발령 조치했다. 또한, 이번 1급 간부 인사 후에도 추가로 100여 명을 직무 배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대규모 인적 청산을 놓고 권춘택 1차장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국정원 출신이 아닌 김규현 원장이 국정원 정상화에 대한 ‘속도’를 중시할 때, ‘정통 국정원맨’인 권 차장은 ‘내부 인화’를 우선시했다는 것이다.

권춘택 1차장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인 1986년 공채로 들어와 30여 년간 국정원에 몸담았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미 워싱턴DC 주미 대사관에서 정무2공사로 근무하며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협력을 담당했다. ‘미국통’으로 명성이 높은데, 한미 동맹 강화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원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장을 지낸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과는 고려대 영문과 동문이자 국정원 입사 동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강철 같은 한미 동맹”을 추진하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강조해 왔다. 김규현 원장이 윤 대통령의 이런 기조와 가장 잘 맞는 국정원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했던 조상준 전 기조실장의 낙마에서 볼 수 있듯,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김 원장에 대해 전폭적인 신임을 보여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국정원 1급 간부 인사 번복-대기발령 사태는 더욱 충격적이다. 이 사태가 김 원장은 물론 국정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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