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안 부결에 내심 쾌재 부르는 與…한동훈의 ‘의도된 도발’ 주효?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6 12:0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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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와 국민의힘의 총선 필승 전략은 민주당이 이재명 체제로 선거 치르는 것”

“이 정도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도 모자라, 앞에서는 ‘사과한다’ ‘특권 폐지한다’고 해놓고 등 뒤에 칼을 꽂은 것이나 다름없다. 애당초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의총에서조차 논의하지 않으며 ‘자율투표’ 운운할 때부터 통과시킬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더불어민주당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의 핵심으로 꼽히는 윤관석·이성만 무소속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직후 내놓은 논평이다. 유 대변인은 이어 두 의원의 탈당에 대해 ‘위장 탈당’이었다고 비판하면서 민주당이 두 의원에게 ‘갑옷과도 같은 방탄조끼’를 입혀줬다고 맹비난했다.

민주당이 노웅래 의원, 이재명 대표에 이어 정치권 대다수의 전망을 깨고 이번에도 자당 출신 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몰아주자 여당의 공격이 매섭게 전개됐다. 하지만 여당 역시 겉으로는 분노하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쾌재를 부르는 분위기가 포착된다. 한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설마 했는데 민주당이 이번에도 ‘방탄’을 택했다”며 “만약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고 이후 법원에서 체포영장이 기각됐다면 분위기는 민주당 흐름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6월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관석·이성만 무소속 의원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내 ‘이재명 비토’ 힘 잃을 거란 관측 나와

이 여당 관계자의 분석대로 당초 가결 전망이 우세했던 건 단순히 당위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무적으로도 가결이 민주당 입장에서 당연한 선택이란 분석이 많았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더라도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도 “현역 의원 다수가 연루돼 한창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영장이 기각됐다면 오히려 검찰 수사에 역풍이 불 수도 있었는 관측이 나왔다. 또 돈봉투 살포 의혹은 물론 김남국 의원의 거액 가상자산 보유 및 거래 논란으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은 민주당으로선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부결을 택했고, 유 대변인의 표현대로 불붙은 여론에 기름을 끼얹은 상황이 됐다.

이재명 대표 체제 민주당과 갈등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 입장에선 호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체포동의안 부결의 후폭풍이 오래 지속될 거라는 관측 때문이다. 민주당이 단순히 방탄 프레임에 갇히게 된 것 외에도 앞으로 진행될 혁신 작업에 대한 신뢰도에도 타격을 입는 등 연쇄적인 위기에 처했다는 시각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급 의원은 “민주당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 총선이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민주당이 오히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도와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번 체포동의안 부결로 이재명 지도부에 대한 비토 목소리가 힘을 잃게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여권을 반색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 민주당 비명계 인사는 통화에서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에 친명·비명 할 것 없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보이는데 비명계로서도 뼈아픈 실책이 됐다”면서 “방탄에 동조한 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겠느냐”고 말했다.

앞의 국민의힘 의원은 “사실 이 모든 민주당의 위기는 이 대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 대표가 물러나지 않고 계속 앉아있는 한 민주당은 앞으로 더욱더 깊은 자기모순과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라며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이 이재명 체제로 총선을 치를 경우 우리 당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다들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입’에 시선이 쏠렸다. 한 장관은 매번 체포동의안 표결 때마다 강도 높은 발언으로 취지 설명에 나서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노웅래 의원 때는 “돈을 받는 현장에서 돈봉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그대로 녹음돼 있다”고 했고, 이재명 대표 때는 대장동 의혹에 대해 “이재명 성남시장과 특정 업자들의 정경유착과 지역토착비리”라고 못 박았다.

이번 윤·이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한 장관은 발언의 수위를 더욱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장관은 “돈봉투를 받은 것으로 지목되는 약 20명의 국회의원이 여기 계시고 표결에도 참여하게 된다”면서 “‘돈봉투 돌린 혐의’를 받는 사람들의 체포 여부를 ‘돈봉투 받은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건 공정하지도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국민께서 이런 상황을 다 아시고 중요한 표결의 과정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 직후 민주당 의원들은 고성으로 항의했고, 이후 표결을 통해 두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모두 과반 찬성표를 넘기지 못하고 부결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한 장관의 발언이 (민주당 표심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6월9일 국회에서 열린 제7차 전국위원회에서 이헌승 전국위의장과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한 장관 태도에서 與 총선 전략 드러나”

정치권에선 한 장관이 국회 표결을 앞두고 철저히 의도된 전략적 발언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장관이 일부러 민주당 의원들의 부결을 유도하기 위한 도발성 발언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유승찬 정치컨설턴트는 “한 장관이 오히려 의도적으로 부결을 종용했다는 의심이 든다”면서 “법무부 장관이 체포동의안에 대해 국회에 요청할 땐 최대한 정중해야 하고, 자제해야 하는데 수수 의혹 20명까지 거론하는 등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실들까지 이야기해 반발심을 크게 불렀다”고 평가했다.

한 민주당 전직 의원은 통화에서 “한 장관의 발언은 전략적 노림수가 아니고서야 그 자리에서 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체포동의 요청이 아닌 싸우자는 신호였고, 반대표를 던지라는 도발이었다”면서 “사정 권력을 대동한 한 장관과 정부·여당이 어떤 식으로 내년 총선까지 정국을 끌고 갈지 한 장관의 태도에 이미 답이 나와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유승찬 컨설턴트는 “국민의힘이나 윤석열 정부는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의 사법 리스크 프레임을 강화한 상태에서 총선을 치르려고 할 것”이라며 “한편으론 그로 인해 이 대표도 자리를 내놓기가 더 쉽지 않을 듯하다. 이 대표 입장에선 그 프레임을 깨기 위해 거취 문제가 아니더라도 중도 확장 등 로드맵을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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