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6명 “편의점 상비의약품 늘려라”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9 11:0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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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편의성과 의약품 안전성 간 지루한 시소게임 계속
미국 편의점엔 3만 개, 일본은 2000개, 한국은 고작 13개

약국이나 병원이 문을 닫는 시간에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안전상비의약품(이하 상비약) 품목 수를 늘려야 한다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10년째 13개에 머물러 있어 국민의 선택권이 위축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약국 외에서 판매하는 의약품 수는 미국이 약 3만 개이고 일본은 약 2000개다.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된다.

밤이나 휴일 등 약국이 문을 닫는 동안 국민은 해열진통제 하나 구할 곳이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정부는 2012년 상비약 제도를 도입했다. 약사법을 개정해 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 가운데 가벼운 증상에 시급하게 구매할 수 있는 품목 20개로 한정했다. 시간에 구애 없이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어야 하므로 12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취급하도록 했다. 20개 품목 가운데 실제로 편의점 판매가 허용된 상비약은 해열진통제 5개, 감기약 2개, 소화제 4개, 파스 2개 등 총 13개 품목으로 확정됐다. 

당시 정부는 6개월 후 중간 점검을 하고 1년 후에는 상비약 품목을 재조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보건복지부는 2017년 시민단체·약학회·의학회·공공보건기관 등의 추천을 받은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마련해 상비약 확대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몇 차례에 걸쳐 제산제·지사제·항히스타민제·화상연고 등을 편의점 상비약 품목으로 추가할 것인지를 두고 논의했으나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2018년 8월 열린 6차 회의까지 상비약 품목을 재조정하지 못했다. 결국 편의점 상비약 품목은 10년째 13개로 고정돼 있다. 

이는 외국과 큰 대조를 이룬다. 미국의 약국 외 판매용 의약품 수가 지사제·제산제·알레르기약 등 3만 개를 넘는다. 드럭스토어나 마트 등을 통해 판매하는 약품이 약 2000개 수준인 일본에서는 최근 상비약 자판기까지 등장했다. 자판기에 설치된 카메라로 소비자가 의약품 주의사항 등을 읽었는지를 약사가 살핀 후 승인하는 방식이다.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 비치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대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 비치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대 ⓒ시사저널 최준필

약사회 반발이 편의점 상비약 확대 걸림돌

편의점 상비약 품목은 13개에 불과하지만 편의점 상비약을 찾는 사람은 매년 꾸준히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편의점 상비약 공급가액은 2013년 약 153억원에서 2021년 457억원으로 3배 가까이 성장했다. 의약품정책연구소가 2020년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8.9%는 ‘최근 1년간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13년 14.3%와 비교하면 5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구매한 이유로는 ‘휴일과 심야에 약국이 문을 닫아서’가 68.8%로 가장 많았다. 

편의점 상비약 수요는 증가하지만 품목 수가 한정돼 있다 보니 ‘국민에게 편의와 접근성을 높인다’는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제도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도 서울시보건협회와 학부모 단체 등 9개 단체로 구성된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는 대국민 상비약 인식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편의점 상비약 확대를 촉구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1000명의 응답자 중 96.8%는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구매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답했고, 이 중 62%는 ‘품목이 부족해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확대 방향은 새로운 효능군(의약품) 추가(60.7%), 새로운 제형 추가(46.6%), 기존 약품 변경·추가(33.6%) 순이었다. 

이명주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사무총장은 “국민 10명 중 6명은 그동안 판매하지 않은 의약품을 (편의점 상비약 품목에) 추가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가장 원하는(10명 중 7명) 편의점 상비약 추가 품목은 지사제였다. 상비약 제도 시행 후 10년간의 데이터가 쌓인 현시점에 약사법에 따른 품목 확대와 관리체계가 재정비된다면 국민의 편익 향상과 더불어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에 보건복지부는 난색을 보인다. 의약품 부작용 등 안전성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는 약사 단체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시민단체는 약사회의 반발이 편의점 상비약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로 본다. 실제로 약사 단체는 약사에 의해 약품이 관리되지 않을 경우 오남용과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며 품목 확대에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일반의약품은 전문의약품에 비해 약효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지만 정해진 용량을 지키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가령 12세 이상에 사용할 수 있는 타이레놀 500mg은 하루 최대 8알(4000mg) 이상 복용할 경우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전문적인 관리와 소비자에 대한 교육 필요

결국 소비자의 편의성과 의약품의 안전성 간 시소게임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지속해 확인하고 모니터링하고 조사했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을 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문제다. 2018년 이후부터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가 활동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편의점 상비약 품목을 확대하는 대신 ‘공공심야약국’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공심야약국 제도는 참여 약국이 100여 곳에 불과한 데다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만 운영하므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반면, 여러 조사에서 확인했듯이 편의점 상비약에 대한 인지율·이용 경험·이용 의향은 모두 높다. 특히 국민은 약국 영업 외 시간에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어 당초 취지에도 부합한다. 동시에 상당수 이용자가 필요한 의약품을 충분히 구매하지 못하는 현실도 존재한다. 

따라서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의료인의 개입 없이 환자가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주열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건강관리의 핵심 방향인 자기 건강관리(self-care)와 적극적 건강관리(positive care) 측면에서 상비약 제도는 적절한 보건 정책이다.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는 단순히 의약품 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건강관리 확보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상비약은 소비자의 자가 투약이 승인된 품목이니만큼 소비자가 적절한 의약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며, 상비약 품목의 확대는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는 건강관리 의사결정 범위를 확대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편의점 상비약의 안전성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처지다.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가 과학기술 등을 동원해서라도 안전성 문제를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 또 편의점 상비약 품목 수를 늘릴 때 의약품에 대한 전문적인 관리와 소비자에 대한 교육도 필요해 보인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편의점 상비약을 늘리려면 의약품의 유통과 관리를 지금보다 더 전문적으로 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의 마트 등 약국 외에서 파는 의약품은 기본적으로 전문가가 관리한다. 또 편의점에서 파는 해열진통제를 과용해 신장에 이상이 생긴 환자를 이따금 본다. 따라서 소비자가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상비약을 올바르게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편의점 의약품 구매·사용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 

매일 술을 3잔 이상 마시는 사람은 타이레놀 복용 후 간 기능 장애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용량을 잘 확인하고 복용해야 한다. 타이레놀정 500mg은 12세 이상이 하루 1~2알 복용한다. 타이레놀정 160mg은 알약을 삼킬 수 있는 6~12세에게 적합하다. 몸무게에 따라 복용량이 다르므로 설명서를 잘 읽고 확인해야 한다. 타이레놀정 80mg은 2~12세용으로 몸무게에 따라 복용량이 다르므로 설명서를 확인해야 한다. 딸기 맛에 씹어먹는 제형이어서 아이들이 한꺼번에 여러 개를 먹을 수 있으므로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어린이용 시럽은 생후 4개월부터 복용할 수 있으며 몸무게에 맞춰 용량을 지켜야 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4가지 소화제 모두 하루 3회 1정씩 씹지 말고 복용한다. 씹거나 갈거나 잘라 먹으면 약 성분이 위산에 녹아 효과를 볼 수 없다. 한두 번 복용 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단순 배탈이 아닐 수 있으므로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 7세 이하는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 편의점 감기약은 해열진통제와 같이 먹으면 간에 무리를 줄 수 있다. 따라서 감기약은 1종만 복용하고 약 포장지에 기재된 용량을 준수한다. 파스는 생후 30개월 이하에게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파스를 붙인 후 발진이나 가려움이 나타나면 파스를 제거하고 같은 자리에 파스를 붙이지 말아야 한다. 먹는 소염진통제를 복용했다면 파스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피부염이나 상처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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