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춘향 얼굴 맞아요?”…남원지역, 새 ‘영정’ 놓고 시끌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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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영정, 친일 화백 논란 일자 1억7000만원 들여 ‘새 영정’ 공개…“춘향 정신 제대로 못 담아” 또 논란
시민단체 “새 영정, 춘향의 기품 덕성 제대로 표현 못해”…남원시 “이제는 불필요한 소모전 중단하고 생산적인 논의해야”

춘향의 고장 전북 남원시에서 때 아닌 춘향 영정 교체 논란으로 시끄럽다. 발단은 남원시가 친일 화백 논란을 빚은 기존 춘향 영정 대신 새로 그린 영정을 지난달 춘향제 기간에 공개하면서 비롯됐다. 새 영정 공개 후 남원시와 지역시민단체가 서로 주장과 반박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남원 지역사회에선 어렵게 다시 제작한 영장의 모습이 기대와 달리 남원의 가치와 춘향 정신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새 영정은 춘향의 덕성이나 기품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며 억지 춘향을 만들어서 춘향정신을 모독하지 말라는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남원시는 “검증되지 않은 강 화백의 영정을 봉안하면 또 다른 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친일 작가’ 논란 끝에 2020년 9월 철거된 김은호 작가의 ‘춘향 영정’(왼쪽·1939년)과 남원시가 지난달 25일 봉안한 김현철 작가의 ‘춘향 영정’(2023년) ⓒ남원시

새로 그린 ‘춘향 영정’ 놓고…남원시-시민단체 ‘옥신각신’

이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새로 그린 춘향사당의 춘향 영정을 놓고 ‘춘향의 모습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며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남원시는 “이제는 불필요한 소모전 중단하고 생산적인 논의 해야한다”며 맞서고 있다. 

남원 지역의 15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남원시민사회연석회의는 15일 “새 춘향 영정이 춘향의 덕성이나 기품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라며 “민주적 논의 절차를 거쳐 다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특히 새로운 영정이 17세의 젊고 아리따운 춘향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지만, 도저히 10대라고 보기 힘든 나이 든 여성(의 모습)”이라며 “많은 시민도 최초에 춘향사당에 내걸었던 (강주수 화백의) 춘향 영정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연석회의가 문제 삼는 새 영정은 남원시가 2년 7개월여 만에 새로 제작해 지난달 25일 열린 춘향제 때 광한루 춘향사당에 봉안한 것이다. 가로 94㎝, 세로 173㎝ 크기로 경남 진주에서 생산한 비단을 사용하고 물감은 자연에서 채취·생산한 염료와 석채(돌가루)를 주 안료로 사용했다.

이번 새 영정은 남원시의 위탁을 받은 남원문화원이 제작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철 작가가 4개월 만에 그렸다. 

 

새 영정 작가 “남원 여고생들 참고해 그려”

앞서 새 영정을 그린 김 작가는 보도자료를 통해 “새 춘향 영정은 판소리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와 경판본 ‘춘향전’의 첫대목에 등장하는 5월 단오를 맞아 몸단장을 한 채 그네를 타기 위해 나오는 17세 안팎의 18세기 여인상을 염두에 두고 그렸다”고 밝혔다.

이어 “영정 제작을 위해 남원 소재의 여자고등학교에서 추천 받은 여학생 7명의 모습도 참고했고, 춘향의 인물상을 묘사하기 위한 머리 모양, 저고리, 치마, 신발, 노리개 등 옷차림 전반은 복식 전문가의 고증과 자문을 거쳤다”고 덧붙였다.

또 그동안 봉안됐던 2점의 춘향 영정이 1930년대 유행한 복식 형식을 띠고 있는 데 반해, 춘향가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8세기의 출토 유물을 근거로 당시 복식을 재현했고 필요에 따라 조형적 변화를 줬다고 한다. 남원시도 “새 영정은 춘향전을 토대로 한 17세 안팎의 여성을 모델로 했으며 의복과 머리 모양 등도 고증을 거쳐 최대한 당시 상황을 반영했다”고 거들었다. 

앞서 시는 춘향사당에 걸려있는 영정이 친일 작가 이당 김은호(1892~1979) 화백의 작품으로 드러나자 이를 철거했다. 이후 강주수 화백의 춘향 영정을 다시 봉안하는 방안과 새로운 영정을 만드는 방안을 놓고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새 영정을 제작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남원시는 이 같은 결정 배경으로 고증 결과 기존 강 화백의 작품이 민족작가로 분류되는 그가 그렸다는 증거가 확실치 않으며 춘향의 복식 또한 소설의 배경인 조선 시대와 동떨어진 것으로 조사되는 등 여러 문제가 발견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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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는 2020년 7월 29일 광한루원의 춘향 영정을 ‘친일파’ 김은호 작품(1961년·왼쪽)에서 민족작가로 분류되는 진주 출신 강주수 작품(1931년·오른쪽)으로 교체한다고 밝혔다. ⓒ남원시 ​

시민단체 “도저히 10대라고 보기 힘들어…억지춘향”

그러자 시민단체들이 반발했다. 강 화백의 작품으로 알려진 영정은 최초로 그려진 춘향 영정으로, 실제 춘향사당에 오랫동안 걸렸던 작품이라며 새 영정을 그려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연석회의는 “새 영정은 젊은 춘향의 곱고 순수한 자태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요, 목숨을 바쳐 지켜내고자 했던 곧은 지조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며 “화가는 17세의 젊고 아리따운 춘향을 표현하려고 했다하나 전혀 의도를 실현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림 속 춘향은 도저히 10대라 보기 힘든, 나이 든 여성”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연석회는 “춘향제 기간인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최초 춘향 영정과 새 영정의 선호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최초 춘향 영정이 1313표의 선호 표를 받았지만, 새 영정은 113표를 받는 것에 그쳤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는 “억지 춘향을 만들어서 춘향정신을 모독하지 말라”며 최초 영정 봉안을 촉구했다. ‘최초춘향영정복위 시민연대’는 성명을 통해 “춘향이를 새로 예쁘게 그린다는 것은 꽃노리개 춘향, 억지 춘향을 만들자는 것이다. 사당은 신을 모시고 제례를 거행하는 곳이지 미술관이 아니다. 춘향의 넋을 말살하는 미인도는 영정일 수가 없다”고 밝히며 최초 영정 봉안을 촉구했다. 

최초 영정이 평민의 옷을 입은 어사부인(평등), 태극 모양의 색깔인 붉은 저고리와 파란 치마(민족정신), 16살 춘향이가 아니라 변사또에게 항거한 열녀(항일)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검증되지 않은 강 화백의 영정을 봉안하면 또 다른 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이제는 불필요한 소모전을 중단하고 생산적인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앞서 남원시는 이당 김은호(1892~1979)호 작가가 1939년 그렸다가 유실돼 1961년 다시 똑같이 제작한 춘향 영정을 사용하다 2020년 9월 제90회 춘향제를 앞두고 철거했다. 그의 과거 친일 행적으로 영정 교체 여론이 컸다. 

이에 새 영전을 그려야 했고, 이번 영전 제작 비용에만 1억 7000만 원가량이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새 영정은 지난달 25일 춘향 영정 봉안식 때 광한루원 춘향 사당에 봉안됐다.

최초의 춘향 영정은 춘향사당이 세워졌던 1931년에 그려져 제1회 춘향제 때 봉안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30대의 어사 부인 모습으로 한국전쟁 중에 일부가 훼손됐지만 남원향토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어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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