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세율 60% 상속세 부담에 재계 후계자들 허리 휜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0 10:05
  • 호수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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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락앤락․쓰리세븐 등 상속세 부담에 결국 경영권까지 매각
지난해 말 상속세법 개정됐지만 “한계 여전” 지적도

# 유니더스는 현재 의료용 장갑과 콘돔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고(故) 김덕성 회장이 1973년 설립한 서흥산업이 모태다. 지난 50년간 한 우물만 판 덕분에 국내 1위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세계보건기구(WHO)에 제품을 납품하기도 했다.

2015년 12월 김덕성 회장이 사망하면서 이 ‘성공신화’가 흔들렸다. 2세인 김성훈 유니더스 당시 대표가 부친이 남긴 주식 304만4000주(35.4%)를 넘겨받는 과정에서 막대한 상속세가 부과됐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상속받은 주식의 가치만 100억원 상당이다. 50억원의 상속세를 마련해야 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김 대표는 상속세를 10년에 걸쳐 나눠 내기로 국세청과 협의했다. 하지만 사드(THAAD) 여파로 갑자기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계획을 접어야 했다. 김 대표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를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 쓰리쎄븐은 손톱깎이 점유율 글로벌 1위 기업이다. 2003년 코스닥에도 상장했다. 하지만 2008년 창업주인 김형규 회장이 갑자기 사망했다. 김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150억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상속세 마련을 위해 가업승계 특례제도의 문도 두드려 봤지만 쉽지 않았다. 특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유족들이 30% 이상 지분(비상장 50%)을 보유해야 하고, 자산 처분이나 업종 변경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규직 직원 수도 7년간 변함 없이 유지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유족들은 결국 거액의 상속세 마련을 위해 경영권 매각을 추진했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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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포함한 상속세율 60%로 OECD 1위

2008년 5월 JW홀딩스가 유족들의 상속 지분 18%를 181억원에 인수했다. 제약회사인 JW홀딩스가 쓰리쎄븐을 인수한 이유는 세포치료제 사업을 하는 자회사 크레아젠 때문으로 업계는 봤다. 김 창업주의 유족들은 이듬해 10월 쓰리쎄븐을 재인수했다. 하지만 바이오 자회사를 되찾는 데는 실패했다.

이렇듯 최고 세율 60%에 이르는 상속세가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막대한 세금 때문에 경영은 물론이고 기업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현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명목세율은 50%로 일본(55%)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최대주주 할증과세를 포함하면 60%로 사실상 1위다. 2021년 기준 GDP 대비 상속·증여세수 비중도 OECD 회원국 중 공동 1위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대주주에게 상속세에 대한 획일적인 할증 평가를 하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면서 “상속세는 가업을 승계했거나 승계를 앞둔 기업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국내 사무용 가구업계 1위인 한샘을 비롯해 농우바이오, 락앤락 등 알짜 기업들이 상속 과정에서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막대한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가업 승계를 포기한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한국M&A거래소(KMX)에 매각을 의뢰한 기업은 730곳에 이른다. 이 중 118곳(16.2%)이 상속하지 않고 매각해 현금으로 물려준다고 답했다.

기업 승계를 장려하기 위해 2008년 도입된 가업상속공제 제도도 무용지물이다. 2016~21년 연평균 이용 건수는 95.7건, 총 공제금액은 2967억원에 불과하다. 임 연구위원은 “가업상속공제의 적용 대상이 매출 5000억원 이하 기업이고, 피상속인도 10년 이상 기업을 경영해야 공제 대상이 된다”면서 “요건이 까다로워 활용하려는 기업인이 적고 실제 공제금액도 크지 않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상속세를 낮추거나 폐지하고 있는 다른 OECD 국가들과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OECD 38개 회원국 중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23곳이다.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등 15곳은 아예 상속세가 없다. 스위스와 슬로베니아, 헝가리 등 5곳도 상속세가 있지만 직계비속이 상속할 경우 상속세를 면제해 주고 있다.

가업 승계 시 세금 유예해 주는 日·獨과 대비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앞서 경영자의 고령화 문제를 겪었다. 한때 가업 승계가 삐걱거리면서 중소기업 폐업이 속출했다. 일본 정부는 2018년 특례사업승계 제도를 만들었다. 대표직 유지, 지분 보유 등의 요건만 맞으면 상속·증여세 전액의 납부를 유예하게 한 것이다. 승계 이후 회사를 매각하거나 폐업하면 그때 평가액에 따라 세금을 부과했다. 그 결과 사업승계 제도 신청 건수가 급증했다. 2017년 276건에서 2018년 2931건, 2019년 3444건으로 2년여 만에 1148%나 증가했다. 

독일의 경우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상속세율이 최고 30%에 불과하다. 2016년부터는 자산 2600만 유로(360억원)까지 상속세를 면제해 주고 있다. 자산이 2600만 유로를 넘어도 감면율을 단계적으로 낮춰주고 있다. 이 때문에 2016~21년 가업상속공제 제도 이용 건수와 공제금액이 각각 연평균 1만308건, 163억 유로(22.5조원)에 이르고 있다. 경총이 최근 정부에 제출한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세제개선 건의서’에서 현행 상속세 최고세율을 60%에서 OECD 평균인 25%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나 국회도 그동안 제도 개선에 공을 들였다. 지난해 말 우여곡절 끝에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가업상속 공제 적용 대상을 매출액 4000억원 미만 중소·중견기업에서 매출액 5000억원 미만 기업으로 확대한 게 골자다. 공제 한도도 최대 500억원에서 600억원으로 높였다. 상속세나 증여세 납부유예 제도는 새로 신설됐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의 경우 어느 정도 개정안 통과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화선 중소기업중앙회 기업성장실장은 “그동안 현실과 안 맞다는 지적을 받았던 기업상속 제도의 요건이 상당 부분 개선됐다”면서 “중앙회는 현재 바뀐 기업승계 제도에 맞춘 정책 과제를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22년 12월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매출이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의 경우 여전히 상속세의 덫에 갇혀 있다. 2020년 10월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타계한 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연부연납으로 5년간 6회에 걸쳐 2조원씩, 12조원이 넘는 상속세를 납부 중이다. 이 과정에서 4조원이 넘는 대출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자로만 매년 수천억원을 내고 있는 셈이다. 이 선대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경우 보유 중인 삼성SDS 주식 전량을 매도하기도 했다.

한미약품의 오너 일가도 사모펀드인 라데팡스 등에 그룹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11.78%를 매각할 계획이다. 2020년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의 타계로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는 5400억원 규모의 상속세 부담이 발생했다. 거래가 마무리되면 라데팡스의 지분율은 송영숙 회장(11.66%)의 지분율을 넘어서게 된다. 물론 라데팡스와 공동보유약정을 체결한 만큼 오너 일가의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한동안 상속세 마련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기업 상속=부의 대물림’으로 인식된 현재 분위기를 가장 우려한다. 상속이 불법적인 재산 축적과 함께 불로소득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일부 재벌 회장의 일탈이 이런 분위기를 조장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친 상속세로 인한 국부 유출이나 고용 감소, 성장 둔화 등 경제적 손실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상속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기업 상속=부의 대물림’ 이미지 개선 시급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와 파이터치연구원은 2021년 기업 상속세율을 50% 인하할 경우 일자리가 26만7000개 창출되고, 기업 매출액이 139조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은 “그리스의 경우 2003년 기업 상속세율을 20%에서 2.4%로 크게 인하했는데, 기업을 상속한 가족기업의 투자가 약 40% 증가했다”면서 “현행 기업 상속세율을 과세표준 전 구간에 걸쳐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개별 기업의 경영권 이전을 넘어 사업 기반과 국가 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기업 승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면서 “과도한 상속세율, 현실적이지 못한 기업 승계 지원 제도, 승계 비용 조달 문제 등 정책 환경의 한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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