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값’ 내리라는 정부…전방위적 식품업계 가격 인하 압박?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6.19 15: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면 물가, 1년 전보다 13.1%↑…2021년보단 24.1% 올라
업계 “가격 부담 경감 방안 검토”…물류비 인상 등에 속앓이
다음 타깃은 제과·제빵? 빵 물가 2년 전보다 22% 상승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라면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라면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라면가격 인하를 촉구했다. 라면업계가 가격을 동반 인상했던 지난해 9~10월보다 국제 밀 가격이 50% 가까이 떨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라면업계가 고심에 들어간 가운데 가격 인하 압박이 식품업계 전반으로 퍼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공공요금과 함께 물가를 끌어올린 주범이 먹거리물가인 상황에서 정부 입장에선 물가 재상승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례적으로 특정 품목의 가격에 대해 적정성 문제를 지적했다. 추 부총리는 지난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국제 밀 가격 하락을 언급하며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하나하나 개입해서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소비자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격 조사도 하고 견제하면서 압력을 행사하면 좋을 일”이라고 덧붙였다.

추 부총리의 발언은 국제 밀 가격이 최근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을 소비자 가격에도 반영하라는 일종의 압박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국제 밀 가격은 t당 228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419달러) 대비 45.6% 하락했다.

앞서 주요 라면 업체들은 지난해 일제히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해 9월 농심과 오뚜기가 각각 출고가를 11.3%와 11.0% 인상했다. 팔도는 9.8% 올렸다. 두 달 뒤인 11월엔 삼양식품이 라면 가격을 9.7% 조정했다. 라면 업계는 앞서 2021년에도 10% 안팎의 가격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5월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24.04로 지난해 동월보다 13.1% 올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9년 2월(14.3%) 이후 14년3개월 만에 최고다. 지난해 가격 인상의 여파다. 2년 전과 비교하면 인상률은 더욱 커진다. 5월 라면 물가지수를 2021년 5월과 비교하면 24.1%나 상승했다.

물가당국 수장의 인하 압박 발언이 나오자 라면 업계도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부담을 낮추기 위한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즉각적인 인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이미 들여온 밀이 소진되려면 3~6개월의 시차가 필요하다”며 “밀 가격 이외에도 다양한 부분을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라 인하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특정 품목을 꼭 집어 인하를 요구한 것에 대한 억울함도 내비쳤다. 지난달 국제 밀 가격(t당 228달러)이 지난해보다 낮아진 상황이지만 평년의 201달러보다는 비싸다. 전보다 원자재 부담이 늘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라면의 또 다른 원료인 전분은 오히려 가격이 오르고 있고, 물류비도 증가해 원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그럼에도 가격 부담 경감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인 간담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인 간담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라면 다음은 제과·제빵? 2년 전보다 20% 이상 올라

식품 업계에선 정부의 가격 인하 요구가 업계 전반으로 퍼질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당시에도 밀 가격 하락을 이유로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 특히 라면업계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 담합을 내세워 조사에 나서는 등 전방위적 압박이 펼쳐졌다. 이후 제과·제빵업계도 인하 대열에 합류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1~2년 사이에 두 자릿수 넘게 오른 품목들이 이에 해당해서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빵 물가는 1년 전과 2년 전보다 각각 11.3%, 11.5% 올랐다. 2년 동안 22.8%가 오른 셈이다. 아이스크림의 경우 1년 전보다 5.9%, 2년 전보다 19.6% 각각 상승했다. 특히 밀 가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과·제빵 업체들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2년 전보다 16.3% 오른 치킨 등이 그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최근 1~2년 사이 인상률이 높았던 물가들이 가격상승 체감도가 높은 품목이라는 점에서 업계는 정부의 추가 경고장이 어디로 향할지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