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에 맞불? 김기현이 ‘의원수 축소’ 카드 꺼낸 속내는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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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의원정수 10% 감축’ 제안…“국민들도 ‘정치과잉’이라고 생각해”
‘이슈 선점’ 통한 정치개혁 주도 이미지 부각…당론 이어질진 미지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다시금 ‘의원 정수 축소’ 카드를 의제로 꺼냈다. 더불어민주당의 ‘방탄 국회’에 맞서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를 쇄신하자는 취지에서다. 정치권에선 김 대표가 이재명 대표와 차별화되는 이슈를 띄우며, 여당 대표로서의 존재감 띄우기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의원 정수 축소’ 방향이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 의원 축소로 갈 경우 ‘정치개혁’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 57%도 찬성하는 ‘의원수 축소’…與 존재감 띄우기

김기현 대표는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3대 정치 쇄신 공동 서약’을 제안했다. 국회의원 대상으로 ▲정수 10% 감축 ▲무노동 무임금 ▲불체포 특권 포기 내용이 골자다. 특히 김 대표는 ‘의원 정수 감축’에 방점을 찍으며 “주권자인 국민들께서 많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정치 과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원 숫자가 10% 줄어도 국회는 잘 돌아간다. 엉뚱한 정쟁 유발, 포퓰리즘에 골몰할 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전날 이재명 대표가 깜짝 선언한 ‘불체포 특권 포기’와 관련해서도 일침을 날렸다. 그는 “이재명 대표의 어제 불체포특권 관련 말씀은 만시지탄이나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표는 국민들 앞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해놓고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어겼다”며 “국민을 속인 점에 대해 정중한 사과부터 하라”고 촉구했다. 또 “어떻게 약속을 지킬지 구체적 실천 방안도 제시하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선 김 대표와 이 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이슈 선점’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 19일 이 대표가 대본에도 없던 불체포 특권 포기 선언을 한 것에 당황해 연설문을 급히 재검토했다는 후문이다. 기존 3대 정치 쇄신안 내용의 순서도 바꿔, 두 번째에 있던 ‘불체포 특권’ 포기 조항을 마지막으로 뺀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가 ‘선거개혁 어젠다’를 앞세워 당내 존재감을 키우려는 의도도 보인다. 최근 김 대표는 취임 100일째를 맞았지만, 당내에서도 김 대표가 주도한 ‘정책 아젠다’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명색이 집권 여당인데 무엇 하나 끌어낸 어젠다가 있던가. 만들어낸 뉴스거리라고는 김재원과 태영호만 있지 않았던가”라고 비판했다.

특히 ‘의원 정수 감축’은 국민 정서에도 호응하는 내용이다. 선거제 논의가 한창이었던 지난 3월24일 한국갤럽이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응답률 8.4%, 오차범위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응답자의 57%는 현행 의원정수를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늘려도 된다’는 응답자는 9%에 불과했다. 많은 국민들이 의석수를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셈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가 국민들 목소리에 호응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개혁 중이라는 이미지도 가져가려는 취지로 보인다”며 “여기에 혹시나 있을 수 있는 국회의원 의석수 늘리는 것을 막는 것에 쐐기를 박으려는 취지도 보인다”고 주장했다.

2022년 12월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2월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구체안은 실종? 비례 줄이면 ‘기득권 유지’ 역풍

다만 해당 안이 실제 국민의힘 당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관건은 ‘의석수 10% 축소’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지 여부다. 첫 번째는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는 방법이다. 여기에 대해선 김 대표도 대표연설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만약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면 당내 반발은 심상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본인의 지역구가 사라질 가능성이 커져서다. TK 지역구의 국민의힘 한 의원은 시사저널에 “김 대표의 연설 내용도 좋았고 선거제 개혁 화두도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는 것에 우리 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도 찬성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반대로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일 경우 ‘기득권 내려놓기’도 공염불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여야 양당 모두 지역구 의석수를 늘리는 것은 좋아한다. 비례대표를 줄이면서 정당지지율 높은 민주당의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를 차단하고 정의당 등 진보 정당의 국회진출을 차단하려는 취지”라며 “오히려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면 ‘정치개혁’이 아니라 국민의힘에 유리한 방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대부분 전문가들은 열에 아홉이면 비례대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지역구 의석수를 늘리게 되면 결국 지역 간 구도만 강화시키고 양당 체제를 고착화시키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김 대표가 비례대표 의석수를 그대로 두고 지역구 30석 줄이겠다고 하면 이건 엄청난 개혁이다. 진정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봤다.

이어 “의석수를 줄이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의석수를 어떻게 줄일지가 문제”라며 “김 대표가 두루뭉술하게 의석수를 줄인다고 화두만 던져놓고 사실상 비례대표를 줄이면, 당 이익을 위해 개혁 문제를 당략에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석수 축소가 아마 당론으로 이어지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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