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석이형이 지핀 한국 영화 붐…‘연착륙’ 가능할까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3 13:05
  • 호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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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회복이 중요한 여름 극장가
《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온다

이것은 데자뷔? 올해 6월 극장가는 여러모로 2022년 이맘때 극장가를 연상시킨다. 지난해 극장가는 마동석이 이끄는 《범죄도시2》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톰 크루즈의 《탑건: 매버릭》이 800만 관객을 극장에 모으며 코로나19로 극심한 불황에 빠졌던 영화계에 한 줄기 빛을 비췄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고무된 배급사들이 여름 극장가에 제작비 200억원 안팎의 자사 대표 선수들을 내보낼 신호를 알리며, 한껏 들뜬 마음을 드러냈던 게 벌써 1년.

올해도 마찬가지다. 《범죄도시3》가 천만 돌파를 앞둔 가운데, 톰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7: 데드 레코닝》을 들고 또 나선다. 지난해 내한 당시 “다음 영화 때 한국을 다시 찾겠다”는 약속도 지켜질 예정으로 톰 크루즈는 11번째 내한을 앞두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국내에서 지지층이 꽤 넓은 영화다. 재미가 심각하게 나쁘지만 않다면 흥행에 선방할 것으로 보는 업계 시각이 많다. 시장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는 의미다. 동석이형이 흥행 불씨를 지피고, 친절한 톰 아저씨가 기름을 부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 분위기에 함께 올라타기 위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배급사들이 여름 시장 공략 작품들을 발표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장면 ⓒ(주)NEW·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마동석과 톰 크루즈 이후

그렇다면 중요한 건, 마동석과 톰 크루즈 이후다. 그 이후에도 2022년의 모습을 재현할 것인가, 아닐까. 잘 알다시피 지난해 여름 극장가에 나선 영화는 CJ ENM의 《외계+인 1부》,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한산: 용의 출현》, 쇼박스의 《비상선언》, 메가박스중앙플러스M의 《헌트》였다. 1주일 간격으로 출격한 이들 영화 중 《한산: 용의 출현》과 《헌트》만이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다. 더, 놀라웠던 건 다른 두 영화의 관객 수. ‘흥행 불패’ 최동훈 감독이 내놓은 《외계+인 1부》가 153만 관객에 그쳤고, 송강호·이병헌·전도연 등 굵직한 캐스팅을 자랑한 《비상선언》은 205만 명에 만족해야 했다. 감독과 배우들의 존재감, 그리고 제작비를 생각했을 때 단순한 실패 정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쪽박’이었다.

여름 시장이 안긴 충격파는 상당히 오랜 기간 이어졌다. 만들어진 영화들은 개봉하지 못했고, 개봉한 영화들은 족족 깨지고 돌아왔다. 투자 리스크가 커졌고, 실제로 투자의 씨가 말라버렸다. 한국 영화의 위기라며 ‘이러다 다 죽어!’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사실 ‘한국 영화 위기설’은 없었던 적이 더 드물 정도로,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관습적 수사다. 이유가 매번 달랐을 뿐이다. 바야흐로 엔데믹 시대. 이번 위기설은 그렇다면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난해 여름 영화들의 심각한 흥행 부진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가장 자주 언급된 건 ‘극장 티켓값’ 상승이다.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팬데믹 이전, 대한민국 인구 1인당 연평균 영화관람 횟수는 4.37회였다. 인구가 5000만 명인 나라에서 1000만 영화도 자주 터졌다. 엄청난 일이었다. 이런 문화 현상이 어떻게 가능했던 건가. 극장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극장은 여전히 우리 가까이, 그 자리에 있지만 극장보다 더 가까운 곳에 신종 플랫폼이 생겼다. 집에서 누워서도 볼 수 있고,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도 볼 수 있는 OTT 말이다. 자연스럽게 극장에 가려면 OTT라는 허들을 넘어야 하는데, 아뿔싸! 티켓값이 장난 아니잖아? 언제 요금이 3000원이나 올랐대? 취미처럼 극장을 드나들던 사람들이 돌다리를 두들겨보며 영화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영화관에서 볼 영화와 OTT에서 볼 영화를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극장 나들이가 전 국민의 오락거리가 아니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티켓값 상승이 한국 영화 위기의 주범처럼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티켓값이 관객들의 영화 보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이것만을 문제 삼는 건 문제 해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치가 말하기 때문이다. 어떤 수치? 외화들은 이미 팬데믹 이전 상황을 회복했다는 수치. 일본 영화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이 각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관객들의 환대를 받았다.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편은 심지어 1편(134만)과 2편(273만)보다 더 많은 관객을 모았다.

높아진 관람료가 한국 영화 위기의 절대적인 이유라면, 이들 외화도 흥행에 죽을 쒔어야 했는데 그러진 않았다. 그렇다면? 관람료 상승에 더해, 한국 영화가 외화에 비해 경쟁력이 뒤졌다고 보는 게 맞다. 어렵게 이야기하지 말자. 한국 영화가 재미없어서다. 그런 점에서 올해 여름 극장가는 신뢰 회복이 중요해 보인다. 이를 위한 제1의 경쟁력은 그 무엇도 아닌 ‘재미’.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재미를 보여줄 것인가. 그 면면을 살펴봤다.

영화 《밀수》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 《밀수》의 한 장면 ⓒ㈜NEW

여성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밀수》

가장 먼저 여름 관객을 만나는 건, 김혜수·염정아가 투톱으로 나서는 NEW의 《밀수》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밀수 범죄에 휘말리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성 캐릭터들이 주도하는 작품이 여름 시장에 나왔다는 점에서 기대 요소로 꼽히는 동시에, 성공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변수로도 꼽힌다. 이 작품의 성적은 여성 투톱 영화의 상업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물론 《밀수》에 김혜수, 염정아만 있는 건 아니다. 조인성과 박정민이라는 매력적이고도 든든한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무엇보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다. 류승완은 코로나19 시국이던 2021년 《모가디슈》를 선보이며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웃은 바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입증했다는 점에서도 《모가디슈》의 결과는 값졌다. 류승완의 저력이 《밀수》에선 어떻게 발휘될지, 결과는 7월26일 공개된다.

영화 《더 문》의 한 장면
영화 《더 문》의 한 장면 ⓒCJ ENM 제공
ⓒCJ ENM 제공

김용화의 꿈은 현실이 된다, 《더 문》

8월2일엔 CJ ENM의 《더 문》이 착륙한다. 지난해 《외계+인 1부》를 시작으로 악몽과도 같은 1년을 보낸 CJ ENM엔 사활이 걸린 작품이다. 영화는 사고로 홀로 달에 고립된 우주 대원 선우와 필사적으로 그를 구하려는 전 우주센터장 재국의 사투를 그린다. 엑소 출신 배우 도경수와 설경구가 타이틀롤을 맡았다. 이 작품의 허들이라면 SF라는 장르 그 자체다. 그동안 《승리호》 《정이》 등이 한국형 SF를 표방하며 나섰지만 관객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고, 도리어 한국 SF에 대한 선입견을 심는 역효과를 냈다.

《더 문》에 거는 기대의 8할은 김용화 감독에게서 온다. 충무로에서 스포츠 영화가 안된다는 선입견을 뚫고 《국가대표》를 성공시키고, 국내 최초로 2부작을 동시에 찍은 《신과 함께》로 쌍천만을 만든 저력의 감독이다. 무엇보다 대중 보편의 마음을 읽는 김용화 감독의 ‘감’은 놀라울 정도로 좋다. 일부에선 ‘신파’라고 저평가하기도 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제대로 된 SF 영화가 없는 한국 영화 시장에 《더 문》이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 궁금하다.

ⓒ㈜쇼박스 제공
ⓒ㈜쇼박스 제공
ⓒ㈜쇼박스 제공
ⓒ㈜쇼박스 제공

하정우-주지훈 콤비를 기대해, 《비공식작전》

몇 해 전 충무로에선 외교관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동시에 제작에 들어가면서 이목을 끈 바 있다. 《교섭》과 《모가디슈》 그리고 당시 《피랍》으로 소개됐던 이 영화, 《비공식작전》이다. 《교섭》과 《모가디슈》가 관객의 평가를 마친 가운데, 《비공식작전》이 마지막 타자로 마운드에 오른다. 흥행과 비평을 모두 거머쥔 《모가디슈》의 길을 갈 것인지, 소재와 재미의 불협화음을 낳았던 《교섭》의 길을 따를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쇼박스의 《비공식작전》은 1987년을 배경으로 실종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간 외교관 민준과 현지 택시기사 판수의 이야기를 그린다. 《끝까지 간다》 《터널》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성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 영화에 대한 최고 기대감은 단연 캐스팅이다.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 찰진 호흡을 맞췄던 하정우-주지훈 콤비가 만들어나갈 티키타카에 기대가 모인다. 김용화 감독과 함께 《신과 함께》라는 전설을 만든 배우들인지라, 《더 문》과 같은 날 맞붙는 상황이 묘하게 됐는데,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라기보다 함께 ‘윈윈’하는 그림을 꿈꾸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장면 ⓒ(주)NEW·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IP의 성공적 확장을 노리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여름 극장가 마지막 주자인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병헌과 엄태화 감독의 만남으로 주목받는 작품이다.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의 2부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대지진으로 폐허가 돼버린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황궁 아파트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병헌은 위기 상황 속에서 단호한 결단력으로 황궁아파트를 이끄는 임시 주민대표 영탁을 연기한다. 박서준과 박보영의 신혼부부 케미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콘크리트 유니버스’ 세계관의 포문을 여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솔깃하다. 이미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황야》가 제작에 들어갔다. 주연이 무려 마동석인데, 《범죄도시4》로 감독 데뷔하는 허명행 무술감독이 이 작품 메가폰도 쥐고 마동석과 호흡을 맞춘다. 이게 끝이 아니다. 영화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드라마 《콘크리트 마켓》도 이미 촬영에 들어갔다. IP(지식재산권)의 확장을 노리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콘텐츠 시장에 새로운 기운이 깃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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