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떼 입찰’에 칼 빼든 정부 중흥·우미·제일·대방건설이 타깃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23.06.27 10:05
  • 호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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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로 공정위·국토부 동시 조사
부당 지원 혐의 따라 처벌 수위 결정될 전망

중흥건설과 우미건설, 제일건설, 대방건설 등 4개 중견 건설사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과거 ‘벌떼 입찰’(공공택지의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위장계열사 등을 벌떼처럼 많이 투입해 입찰하는 것)을 통해 공공택지를 받은 건설사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하면서다. 앞서 호반건설이 공공택지 전매를 통한 부당 지원 혐의로 600억원이 넘는 과징금 폭탄을 맞은 만큼 건설사들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호반건설에 부당 내부거래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608억원을 부과했다. 페이퍼컴퍼니에 가까운 다수의 계열사를 설립해 이들을 공공택지 추첨 입찰에 참가시켜 당첨 확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다수의 공공택지를 확보한 후 이를 총수 자녀 소유 회사와 자회사에 몰아준 혐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022년 9월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벌떼 입찰 현황 및 근절 대책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022년 9월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벌떼 입찰 현황 및 근절 대책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벌떼 입찰 통해 부지 확보 후 고속 성장

공정위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공공택지 수주 경쟁이 치열했던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계열사 여러 개를 만들고 비계열사까지 동원해 공공택지 입찰에 참여했다. 이른바 ‘벌떼 입찰’이다. 공공택지 입찰 방식은 2021년 평가제로 바뀌기 전까지 추첨제로 진행됐다. 가격을 미리 정하고 추첨을 통해 땅을 공급하는 식이다. 더 많은 계열사를 동원할수록 낙찰받을 확률이 커지는 구조다. 실제 해당 부지의 활용과 시공은 사업 능력이 있는 본사가 맡는다.

호반건설은 이렇게 받은 공공택지 23곳을 총수인 김상열 전 회장의 장·차남 소유 호반건설주택과 호반산업에 넘겼다. 화성 동탄, 김포 한강, 의정부 민락 등 알짜 부지가 포함됐다. 오너 2세 회사들은 넘겨받은 공공택지를 개발해 분양매출 5조8575억원, 분양이익 1조3587억원을 거둬들였다. 이 밖에도 호반건설은 2세 회사에공공택지 입찰신청금을 414회에 걸쳐 무상으로 빌려줬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2조6393억원에 대해서도 무상으로 지급보증을 제공했다. 호반건설이 진행하던 936억원 규모의 공동주택 공사를 넘겨주기도 했다.

정부의 다음 타깃은 중흥건설과 우미건설, 제일건설, 대방건설 등이다. 4개 건설사는 호반건설과 함께 지난 정부 5년 동안 공공택지 물량의 40%를 싹쓸이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지난해 8월 공개한 ‘LH의 입찰 관련 업체 당첨 현황’ 자료를 보면 2017~21년 호반, 대방, 중흥, 우미, 제일 등 5개 건설사는 벌떼 입찰로 공공택지 178필지 중 67필지(37%)를 낙찰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호반이 18필지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우미(17필지), 대방(14필지), 중흥(11필지), 제일(7필지) 순이었다.

공공택지 낙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수십 개 계열사를 동원해 입찰에 나선 덕분이다. 건설사별로 계열사를 살펴보면 △중흥 47개 △대방 43개 △우미 41개 △제일 19개 등 150개사나 된다. 최근 3년간 LH 공공택지 당첨업체 101개사보다도 많은 숫자다. 대방은 노블랜드, 대방개발기업, 대방산업개발 등 계열사 23곳에서 5년간 1592건의 입찰 시도가 이뤄졌다. 우미는 강한건설, 디안건설 등 계열사 31곳이 같은 기간 1805건의 입찰에 나섰고 중흥도 나주관광개발, 다원개발, 새솔건설 등 계열사 20곳이 1061건의 입찰을 시도했다.

벌떼 입찰을 통해 ‘땅 부자’가 된 건설사들은 급성장했다. 중흥은 2010년만 해도 시공능력평가 순위 104위의 중소 건설사로 분류됐지만 지난해 18위까지 순위가 올랐다. 시공능력평가는 건설업계에서 회사 규모를 비교하는 데 자주 활용되는 지표다. 같은 기간 대방은 108위에서 지난해 14위로, 제일은 71위에서 20위로 순위가 뛰었다. 우미 역시 60위에서 29위로 상승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통상 아파트 분양을 통해 시공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4%인데 시행사로 참여하면 이익은 20%로 뛰게 된다. 공공택지를 낙찰받아 자체 개발하면 시행·시공을 모두 진행할 수 있어 이익도 극대화된다”면서 “중흥·우미·제일·대방 등 4개 건설사의 경우 벌떼 입찰을 통해 공공택지를 받아 급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4개 건설사에 대한 벌떼 입찰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진행해 왔다. 특히 벌떼 입찰 의혹을 입찰 담합으로 보지 않고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법령상 벌떼 입찰 자체를 담합으로 보긴 어렵다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 과거 공공택지는 추첨 방식에 의한 입찰이라 사전에 낙찰자와 낙찰 가격 등을 의도한 대로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조사도 입찰 담합 담당인 카르텔조사국이 아닌 부당 지원, 부당 내부거래 등을 담당하는 기업집단국이 진행 중이다. 벌떼 입찰이 총수 일가의 상속을 위한 부당 지원 수단으로 쓰였는지 여부가 처벌의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봐주기 조사’” 지적도

다만 업계에선 공정위가 ‘봐주기 조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입찰 담합이 부당 지원보다 과징금 규모가 큰 편인데도 공정위가 부당 지원 혐의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앞서 호반건설 역시 임찰 담합이 아닌 계열사 부당 지원, 총수 일가 사익편취 혐의를 적용받았다. 과징금이 분양이익의 4.5%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토부 역시 부당 지원 행위에 쓰인 자금이 공공택지 입찰 과정에서 벌떼 입찰로 마련됐다는 점에 주목하며 강력한 조사 방침을 밝혔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6월1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토부에서 해당 시기에 택지를 낙찰받은 업체들이 입찰 등록기준을 충족했는지 등을 조사한 후 더 자세한 불법성 여부는 경찰·검찰 수사로 밝혀질 수 있게 하겠다”고 적었다. 이어 “호반건설뿐 아니라 그동안 적발된 수십 개 벌떼 입찰 건설사가 현재 경찰·검찰 수사와 공정위 조사 등을 받고 있다”며 “제도적 보완을 통해 벌떼 입찰을 원천 봉쇄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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