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정치부패 척결 기대감에 재 뿌린 ‘권도형 게이트’
  • 김휘동 유럽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4 12:05
  • 호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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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총리 유력한 제1당 대표에게 거액의 정치자금 제공” 폭로 나와
급부상한 신생 정당의 집권 막으려는 현 정권의 기획설 등 음모론도 제기돼

가상화폐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정치권 로비 의혹이 몬테네그로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몬테네그로에선 올해 4월 대통령선거와 6월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신생 중도정당 ‘지금유럽’이 석권하며 지난 30년간 이어진 밀로 주카노비치 대통령을 필두로 한 사회주의자민주당(DPS)의 집권 가도에 마침표가 찍혔다. 특히 지난해 6월 탄생한 지금유럽당은 81개 의석 중 24개를 가져가며 의석수 기준 제1당으로 발돋움했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3월24일 몬테네그로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3월24일 몬테네그로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AP 연합

권도형 의혹에 발목 잡힌 ‘지금유럽’당 

하지만 몬테네그로 법상 지금유럽당이 집권하기 위해선 연립정부 구성이 필수적이다. 현재 몬테네그로 의회는 주요 정당과 군소 정당 간 연합체 등을 포함해 9개 원내교섭단체로 이루어져 있다. 제1당인 지금유럽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과반인 41명의 의원을 확보해야 하므로 타 정당들과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총선 직전 폭로된 권 대표의 정치자금 의혹이 지금유럽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앞장서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건 생태주의 계열인 ‘개혁행동연대’ 소속의 드리탄 아바조비치 총리대행(전 총리)이다. 그는 총선 직전인 6월7일 기자회견을 열어 권 대표로부터 옥중 자필편지를 받았다면서, 권 대표가 밀로코 스파이치 지금유럽당 대표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해 왔음을 고백했다고 주장했다. 스파이치 대표는 현재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다.

아바조비치 총리대행은 총선 결과 발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스파이치 대표와 권도형의 관계를 문제 삼으며 지금유럽당과의 협력에 대해 걸고 넘어졌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금유럽당과 협력할 수 있지만, 우선인 것은 스파이치 대표가 직접 권도형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라며 스파이치 대표에게 일대일 TV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파이치 대표는 “권도형 문제로 TV토론에 나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쌓여있다”며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몬테네그로 정가에선 아바조비치 총리대행이 ‘권도형 게이트’ 논란을 주도하는 이유가 불안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방증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바조비치 총리대행은 지난해 8월 총리 재직 당시 임기 4개월 만에 불신임 투표로 실각해 현재는 차기 총리 선출 때까지만 총리대행직을 맡고 있다. 지난해 말 차기 총리 선거에서 데모스당 소속 미오드라그 레키치 의원이 신임 총리에 당선되며 아바조비치 총리대행도 물러날 것으로 예측됐으나, 레키치 총리 지명자가 연립정부 수립에 실패하면서 대통령의 의회 해산 명령으로 이어졌고, 아바조비치 총리대행은 수명이 연장됐다. 

지금유럽당 입장에서도 난감한 건 연립정부 구성을 위해선 아바조비치 총리대행 소속의 개혁행동연대와 민주몬테네그로당의 연합인 ‘용감한 계산’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폭로전을 지렛대 삼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해 계산적인 공세를 펴고 있는 아바조비치 총리대행과 집권을 코앞에 둔 스파이치 지금유럽당 대표 사이의 신경전 때문에 이른바 ‘권도형 게이트’가 탄생했고 부풀려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또 한 가지 권도형 게이트와 관련해 주목할 지점은 집권당 DPS의 몰락과 신생 정당 지금유럽당 부상의 정치적 배경이다. 이번 대선에서 지금유럽당 소속 야코브 밀라토비치 현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데는 ‘몬테네그로의 미래를 위해’ 연합(이하 미래연합) 소속의 안드리야 만디치 대선후보가 1차 투표 패배 이후 밀라토비치 지지를 선언한 게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만디치 후보의 지지 선언은 이례적인 행보로 평가됐는데, 그 배경은 지난 30년간 장기 집권한 DPS 정권에서 벌어진 반복된 조직범죄와 부패 스캔들에 대한 ‘응징’이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만디치 후보와 그가 속한 미래연합 대표인 밀란 크네즈비치 의원은 2016년 러시아와 함께 몬테네그로 정부에 대한 쿠데타를 꾀했다는 혐의로 2017년 각각 5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당시 야권에선 두 사람에 대한 수사를 정치탄압으로 봤다. 당시 DPS 주도하에 이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야당은 민주화 요구에 DPS가 ‘폭정과 억압’으로 대응한다고 비판하면서 내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후 2021년 2월 몬테네그로 상고법원은 두 사람에게 5년형을 선고한 원심을 뒤집고 재심을 명령했다. 따라서 만디치 후보의 지지 선언은 집권당 DPS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있었다.

실제 현재 몬테네그로의 국민 여론 또한 집권당 교체와 함께 부패 척결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유럽당이 그 기대를 한몸에 받던 상황인데, 갑작스럽게 터진 권도형 게이트는 여론에 동요를 불러오고 있다. 만약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이전과 전혀 다르지 않은 또 다른 부패 집단이 다시 집권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유럽당 입장에선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곧바로 장애물에 부닥친 셈이 됐다.

 

권도형, 검찰 조사에서 의혹 전면 부인

다만 현재 권도형 게이트가 어디까지 밝혀질지,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등은 상당 부분이 미지수다. 앞서 아바조비치 총리대행 외에도 필리프 아드지치 내무부 장관은 “권도형에게서 압수한 노트북에는 정치자금 후원의 증거가 담겨있다”며 “액수는 밝히지 않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6월16일 몬테네그로 특별검찰청 파견 검사에게 8시간 동안 구치소에서 조사를 받은 권 대표는 정치자금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대표의 법률대리인은 “지난 열흘간 언론에서 추측성 기사로 나온 스파이치 대표의 불법 선거자금 조달에 권 대표는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단호하게 부인했다”고 설명했다. 아바조비치 총리대행 등 현 정권에서 지금유럽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권 대표와 거래한 것 아니냐는 얘기 등 음모론도 상당한 상황이다.

한편 3월23일 도피 중에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서 체포된 권 대표는 6월19일 지방법원으로부터 위조 여권 사용 혐의에 대해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았다. 지난 3개월여 동안의 구금 기간이 형량에 포함되기 때문에 남은 형기는 1개월 정도지만, 범죄인 인도에 대한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석방 여부는 불분명하다. 만일 정치자금 의혹과 관련해서도 현지에서 추가 기소가 이뤄진다면 구금 기간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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