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직자 신차할인 확대에 순이익 30% 성과급…첩첩산중 현대차 임단협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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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회사 어려워지면 일터 자체 없어질 수도”
정년 64세로 늘리고 전기차 30% 할인도 요구
使 “요구안 너무 많아 부담” VS 勞 “기만적 교섭행태”
현대자동차 노사의 2023년 임단협 상견례 모습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자동차 노사의 2023년 임단협 상견례 모습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차 노조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출정식을 열고 본격적인 교섭에 들어간 가운데 협상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예년에 비해 노조 요구안의 수위가 높아진 탓이다. 대표적으로 25년 이상 장기근속 퇴직자에게 2년마다 신차를 최대 25% 할인하는 명예사원증 제도를 모든 정년 퇴직자로 확대해달라는 요구안이다. 이밖에 전년도 순이익 30%(주식 포함) 성과급 지급, 상여금 900% 등 사측에선 부담스러운 내용이 요구안에 다수 포함돼 있어 5년 연속 무분규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 노조의 임단협 요구안의 세부 내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가운데 25년 이상 장기 근속한 정년 퇴직자에게만 제공하는 ‘2년마다 신차 25% 할인’ 혜택을 모든 정년 퇴직자에게 확대 적용하는 요구안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현행 25년 이상 장기근속 퇴직자는 명예사원증을 받는다. 이 사원증으로 퇴직 후에도 2년마다 신차를 최대 25%(친환경차 20%)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가령 명예사원증 소지 퇴직자들은 5000만원짜리 차량을 2년마다 3750만원에 살 수 있다. 이에 실제로 현대차 퇴직자는 2년마다 차량을 중고차 시장에 내놔도, 중고찻값이 본인이 지불했던 가격을 웃도는 덕분에 오히려 이득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근속 25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하면 명예사원증을 받을 수 없어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에 노조는 근속 25년 규정을 폐지하고 모든 정년 퇴직자가 명예사원증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명예사원증 소지자가 아이오닉5 등 전기차와 넥쏘 등 수소차를 살 때 적용되는 신차 할인율도 기존 20%에서 25%로 올려달라고 했다.

노조안이 알려지자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분노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회사가 어려워지면 할인은커녕 일터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모든 부담을 고스란히 부담해야만 할 소비자들을 바보로 취급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지 정말 어처구니없다”며 “현재의 비이성적 노동운동은 반드시 정상화되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원 장관을 지원사격했다. 홍 시장은 “나라를 정상화 시키는데 앞장서는 원 장관이 있어 든든하다”며 “강성귀족 노조의 패악과 싸우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응원한다”고 밝혔다.

명예사원증 확대안이 사측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경력직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정년퇴직자들의 근속연수가 25년을 넘기 때문에, ‘25년 이상 할인혜택’ 요건이 현대차 경영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모습 ⓒ연합뉴스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모습 ⓒ연합뉴스

상견례부터 노사 기싸움…“앓는 소리 반복하면 박살낼 것”

성과급 역시 뜨거운 감자다. 노조는 ‘순이익의 30%(주식 포함)’를 성과급으로 요구했다. 지난해 현대차 순이익은 7조9836억원이다. 해당 순이익의 30%(2조3951억원)를 적용하고 전체 직원 수(약 7만 명)로 나누면 1인당 약 3400만원이 나온다.

관심사인 정년 연장안을 두고도 사측과의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노조는 국민연금 수령이 시작되는 해의 전년도 말인 만 64세까지 정년을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현대차 노조가 이번 임시 대의원 회의를 앞두고 노조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정년 연장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혔다.

‘정년 64세 연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다른 노동자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국회미래연구원이 펴낸 ‘정년제도와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가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지난해 49.3세로 나타났다. 60세 정년 도입 전인 2012년보다 오히려 3.7세 낮아졌다. 법제화 이후에도 대다수 노동자들은 여전히 정년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퇴직하는 셈이다. 특히 300인 미만 사업체의 정년제 도입 비율은 고작 21%에 그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굵직한 이슈들이 대거 요구안에 포함되면서 쟁점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서 현대차 노사는 2019년 이후 4년 연속 무분규 합의를 이뤄냈다. 코로나19 사태, 일본의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수출 우대국) 제외 조치에 따른 한·일 경제 갈등 상황 등을 고려해 교섭을 마무리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를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 13일 이동석 현대차 국내생산 담당 부사장(대표이사)이 임단협 상견례 자리에서 노조 요구안이 과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부사장은 “현대차의 단체협약은 국내 최고 수준임에도 올해 요구안이 너무 많아 부담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노조는 상견례 직후 발간한 소식지에서 “사상 최대 성과에 합당한 분배를 실천해야 한다. 앓는 소리, 기만적인 교섭행태를 반복하면 반드시 박살낸다”고 맞받아쳤다.

무분규를 이끌어낸 지난해 임단협 역시 15차례 교섭이 이어졌다. 첫 만남부터 발톱을 드러낸 올해 임단협 교섭이 실패할 경우 파업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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