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정원 인사 파동, 김태효·조상준에서 시작됐다
  • 조해수·김현지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3 10:05
  • 호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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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원장 죽느냐 사느냐’ 숙제 안고 尹 대통령은 프랑스·베트남 순방…일단 봉합 국면
“면직된 K 전 방첩센터장, 고속 승진이 문제…간첩 잡는 실력과 국가관은 인정”

편집자 주 : 국가정보원은 언론보도에서 ‘절제’가 필요한 영역에 속한다. 국정원이 총성 없는  정보 전쟁을 치르는 안보기관이고, 무분별한 보도가 적국에 이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최근 ‘국정원 인사 파동’이 터졌다. 시사저널은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 대통령실 전·현직 관계자, 여권 핵심 관계자 등 다수의 취재원을 통해 국정원 인사 파동을 심층 취재했다. 이 중 국가 안보와 직결될 수 있는 국정원 안팎의 민감한 정보는 보도를 자제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이미 이름이 공개되거나 보도 가치가 있는 정무직 인물을 제외하고는 관련 인사들을 익명(이니셜)으로 처리했다.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3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3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국회사진취재단

국정원 62년 역사에서 처음 일어난 ‘인사 번복’

최근 김규현 국정원장이 제청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한 국정원 1급 보직 인사가 일주일 사이 번복됐다. 10여 명의 인사 대상자 중 K 전 방첩센터장 및 그의 국정원 동기 3명, 주미대사관 공사(거점장), 주일대사관 공사, 해외분석국장 등과 인사 책임자인 국정원 인사처장까지 ‘대기발령’ 조치됐다. 최고위급에 대한 인사 번복은 국정원 62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6월16일자 <[단독]“국정원 8인회 숙정?…김규현 원장, 尹 대통령 독대했다”> 기사 참조)

인사 파동은 김규현 원장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K 전 방첩센터장의 ‘인사 전횡’에서 촉발됐다고 알려졌다. 대통령실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주도로 국정원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우선 K 전 방첩센터장이 면직됐다. 다음 차례는 김 원장이 될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 원장의 거취에 대한 숙제를 안고 6월19~24일 프랑스·베트남 순방을 떠났다. 여기까지가 6월22일 현재까지 상황이다.

관건은 이번 인사 파동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 모임’(정교모·공동대표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은 <국정원의 인사문제 논란, 신속하고 분명하게 결론을 내야 한다>라는 성명을 통해 “한쪽에서는 특정인(K 전 방첩센터장을 지칭·편집자 주)의 인사 전횡으로 촉발된 것으로 주장하면서 김규현 원장의 거취 문제까지 거론하고, 다른 쪽에서는 국정원의 정상화 과정에서 과거 좌파 정권에서 정보기관의 구성원답게 처신하기는커녕 국정원을 무력화시켰던 자들이 소외되면서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면서 “섣부른 양시·양비론적 입장에서 양쪽의 몇 사람만 옷을 벗기고 어정쩡한 봉합을 한다면, 그간의 안보·외교정책도 헛수고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대통령의 신속하고 사리 분명한 결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왼쪽 사진)과 조상준 전 국정원 기조실장 ⓒ연합뉴스·뉴스1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왼쪽 사진)과 조상준 전 국정원 기조실장 ⓒ연합뉴스·뉴스1

“김규현 원장은 ‘히딩크’…국정원 內 기득권 척결한 것”

K 전 방첩센터장은 김규현 원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김 원장의 비서실장과 국정원장 직속으로 신설된 방첩센터의 센터장을 지냈다. 또한 이번 1급 보직 인사를 통해 정책 관련 요직으로 옮길 예정이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관계자는 “K는 1년 새 3급(비서실장)에서 2급(방첩센터장), 1급으로 고속 승진했다. 이 정도로 빠르게 승진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면서 “이번 인사에서 K의 입직 동기 3명도 함께 1급으로 승진했다. K가 국정원 요직에 자기 사람을 심으면서 세력화에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K 전 방첩센터장 측은 인사 전횡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 때 망가진 국정원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해명했다.

이들은 “국정원 직원 약 50%가 좌파적 성향을 지녔고, 약 47%는 정권 부침에 따라 좌파 혹은 우파에 기생해온 이익형 집단이다. 3% 정도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혼심의 힘을 쏟고 있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단 3%밖에 없는 ‘진정한 우파’를 중용하다보니 편중된 인사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규현 원장은 국정원에서 ‘히딩크’ 같은 존재다. 김 원장은 외교관 출신으로 국정원 외부 사람이다. 외국인인 히딩크 감독이 지연·학연·파벌을 중시하는 한국 축구계의 오랜 관행을 깨뜨렸듯이, 김 원장은 좌파는 물론 국정원 내 기득권을 누려왔던 각종 ‘라인’들을 척결하고 새판을 짜려 했다”면서 “이번 인사 파동은 국정원 내 좌파와 기득권층 간 ‘담합’을 통한 중상모략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국가안보실이 尹 대통령에 보고…복수의 참모진도 재확인

이번 국정원 인사 파동은 ‘투서’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6월14일 언론 브리핑에서 “투서를 받은 적이 없다”면서 “투서를 받아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K 전 방첩센터장 측 역시 시사저널 기자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K 전 방첩센터장의 인사 전횡을 투서를 통해 알게 됐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대통령실은 투서를 일일이 대통령에게 모두 보고한단 말인가”라면서 “누군가 투서라는 말을 흘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기망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 대통령실 전·현직 관계자, 여권 핵심 관계자 등을 상대로 한 시사저널의 취재를 종합하면, 국가안보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K 전 방첩센터장과 관련한 보고서를 올렸다고 한다. 국정원과 대통령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핵심 여권 관계자 A씨는 “친윤계 중진 의원이 ‘국정원 인사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제보했다”면서 “이에 김 차장이 국정원 고위급을 통해 조사에 착수했다. K 전 방첩센터장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위 정황이 수집되자, 정식 문서를 작성해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보고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전·현직 참모진을 통해 추가 사실관계 확인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조상준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인사 파동 무대에 등장한다. 여권 핵심 관계자 B씨는 “최근 윤 대통령이 조 전 기조실장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면서 “여러 가지 얘기가 나왔는데, 그 가운데 국정원도 있었다. 조 전 기조실장이 윤 대통령에게 ‘K 전 방첩센터장으로 인한 인사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검사 출신인 조상준 전 기조실장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거론될 정도의 인물이다. 조 전 기조실장은 200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론스타 헐값 매각 사건’으로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검찰을 떠난 후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서 김건희 여사를 변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국정원의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는 핵심 자리에 조상준 전 기조실장이 임명됐다. 그러나 조 전 기조실장은 인사 문제로 김규현 원장과 대립하다 4개월여 만인 지난해 10월 자진 사퇴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 국정원 고위 간부는 “김규현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 시절 서훈·박지원 원장 등에 의해 정치적으로 오염된 국정원을 근본적으로 쇄신해야 한다’며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조상준 전 기조실장은 케이스별로 따져봐야 한다는 비교적 온건한 입장이었다. 결국, 김 원장과 조 전 기조실장이 각자 인사안에서 50%씩 절충하기로 했다. 그런데, 김규현 원장이 미국 출장을 나간 사이 조 전 기조실장이 자기 인사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면서 “김 원장이 이를 문제 삼자, 윤 대통령이 김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국가안보실 고위층 출신인 C씨도 국정원 인사 전횡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K 전 방첩센터장을 평가했다고 한다. C씨는 K 전 방첩센터장의 무리한 고속 승진과 인사 전횡 문제에 대해선 비판적이었으나, 그의 투철한 국가관과 탁월한 대공수사 능력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C씨는 김규현 원장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성실함과 충직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나, 조직 관리와 정무적 감각엔 다소 문제가 있다는 식의 보고를 했다고 한다.

ⓒ뉴스1·국회사진취재단·시사저널 임준선
ⓒ뉴스1·국회사진취재단·시사저널 임준선

“차기 후보군으로 김태효·김용현·권춘택·권영세 설왕설래”

국정원 안팎에서는 김규현 원장 사퇴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심지어 차기 국정원장 후보군까지 설왕설래하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 B씨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 권춘택 국정원 1차장,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의 이름이 떠돌고 있다”면서 “그러나 국정원장 교체설이 현실화되려면, 먼저 국정원 인사 전횡에 대한 대통령실의 조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 또한 국정원장 교체는 많은 절차와 단계를 거쳐야 하기에 당장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섣불리 국정원장을 교체했을 경우, 대통령이 국정원장 자리를 노린 ‘권력 내부 암투’에 휘둘렸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B씨는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원이 간첩 잡는 조직이 돼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김규현 원장이 잘해 왔다고 할 수 있다”면서 “김 원장은 신실한 신앙인으로, 자기관리가 엄격하며 사심이 없다. 전임 좌파 정권과 차별되는 투철한 국가관도 지니고 있다. 미국통으로,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 기조에도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인사 파동의 주범으로 지목된 K 전 방첩센터장의 앞날에 대해서도 여러 얘기가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 A씨는 “K가 비록 면직되긴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간첩 잡는 국정원’을 실현할 능력과 정신을 갖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면서 “국정원 내 방첩센터 신설은 윤 대통령이 지시했으며, 첫 센터장이 K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규현 원장의 거취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프랑스·베트남 순방이 끝나는 6월24일 이후에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국정원 인사 전횡을 보고받은 후 K 전 방첩센터장에 대해선 강경하게 대처했지만, 김 원장의 거취에 대해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김규현 원장이 직을 유지할지라도 ‘식물 원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정원 관계자는 “이번 인사 파동으로 국정원 인사처장이 대기발령을 받은 대신 인사기획관에 S가 신규 임명됐다”면서 “김 원장이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조직 장악력을 일부 상실한 상황에서, 몇몇 간부가 S의 인사기획관 임명을 종용해 관철시켰다”고 말했다. 김 원장의 리더십에 이미 상처가 났다는 것이다.

또한 국정원 관계자는 “더구나 S 인사기획관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 적폐청산 TF’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국정원을 오염시키고 망가뜨린 인물이다. S 인사기획관이 정체성이 확고한 직원들(우파)을 솎아내는 작업에 앞장서고 있다”면서 “S는 대통령실 D비서관과 인연이 깊다. 이 인연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파견을 나가기까지 했다. S가 D비서관을 통해 K 전 방첩센터장의 문제를 침소봉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30 세계박람회 유치 활동 지원을 위해 프랑스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0일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서 4차 경쟁 PT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인사 파동 후 국정원 조직 구성에도 큰 변화가 올 수 있다. 김규현 원장은 지난 1년간 문재인 정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대규모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2022년 6월 1급 보직국장 27명 전원을 대기발령한 데 이어, 같은 해 말 2·3급 간부 인사를 통해 100여 명을 또다시 대기발령 조치했다. 또한 이번 1급 간부 인사 후에도 추가로 100여 명을 직무 배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권춘택 1차장으로 대표되는 국정원 공채 출신들은 이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현 원장의 입지가 좁아질수록 대기발령을 받은 인사들이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교모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 북한과 연계된 체제 전복 세력·간첩단이 적발된 것은 그나마 정권교체가 됐기 때문에 가능했고, 국정원 내부의 대못(문재인 정부 세력)들이 정리돼 가는 중에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정말 국민이 모르는 비리가 있다면 조용히 처리하되, 모처럼 정상화되는 국정원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이 사태(국정원 인사 파동)는 윤석열 정권의 시비 판별력과 자유민주 체제 수호 역량을 보여주는 가늠자가 될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시사저널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과 조상준 전 국정원 기조실장의 입장을 듣고자 수차례 연락했으나 모두 응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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