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금감원·공정위의 전방위 압박에 숨죽이는 재계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7 07:35
  • 호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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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서울남부지검 합수부 공조로 ’여의도 저승사자’ 라인 완성
금융·증권 범죄 겨냥 수사 강화되면서 사정 칼바람 우려도  

재계가 연이어 터져나오는 각종 금융 범죄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국내 토종 사모펀드 한앤코 임직원들의 ‘미공개 정보 이용’ 불공정거래 행위 혐의를 포착했다. 한앤코 직원 4명이 2021년 5월 남양유업 경영권 인수 직전에 주식을 매입한 혐의다. 금감원은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했고, 최근 사건을 검찰에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양석조 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5월2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유관기관 합동토론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기업들의 금융·증권 범죄 

한앤코는 남양유업의 지분 53.08%를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 바 있다. 계약 체결 직전 31만원 선이었던 남양유업 주가는 계약 체결 발표 이후 80만원 선까지 치솟았다. 금감원은 한앤코 일부 직원이 남양유업 지분 인수 사실을 미리 알고, 주식을 매집해 시세차익을 거두는 등 불공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 직원들도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이브 직원들은 글로벌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2022년 6월14일 유튜브를 통해 활동 중단을 선언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팔아 2억3000만원가량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로 BTS 활동 중단 유튜브가 공개되기 하루 전인 지난해 6월13일과 공개 직후인 14일에 하이브 주가는 각각 11%, 3% 급락했다. 검찰은 하이브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내부 직원들이 BTS 활동 중단이라는 악재를 미리 알고,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주식을 사전에 매도했다고 보고 있다.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는 시장에 공개되지 않은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된 내부자의 유가증권 거래로 자본시장법 제174조에 의거해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은 호재성 정보로 인한 이익을 노리거나 악재성 정보로 인한 손실을 회피할 의도에서 시작된다. 법률이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 행위 시 1년 이상의 징역 등에 처하고 이득 액수에 따라 가중 처벌하는 이유는 증권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공정에 반하기 때문이다. 

기업 임직원뿐만 아니라 오너까지 이 같은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에 연루되면서 ‘오너 리스크’로 번졌다. 최근 국내 증권가를 떠들썩하게 한 ‘SG증권 주가 폭락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에 회사 주식을 대거 매도해 논란을 자초한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과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이 대표적이다. 김익래 전 회장은 4월20일 다우데이타 140만 주를 605억원에 매도했고, 김영민 회장은 같은 달 17일 서울가스 10만 주를 456억원에 팔아치웠다. 

다우데이타와 서울가스 등 8개 종목의 주가 폭락이 시작되기 불과 나흘, 일주일 전에 벌어진 일이다. 이들 종목은 4월24일 이후 3~4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으며, 일반 투자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막대한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이 기간에 다우데이타와 서울가스 주가는 각각 76%, 62%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SG증권 주가 폭락 사태 배후 세력으로 지목돼 구속된 라덕연 H투자자문 대표 측은 “김익래, 김영민 회장은 공매도 세력과 공모해 자신들이 보유한 회사 주식을 장외거래로 매도한 것처럼 꾸미고, 해당 주식에 대한 매도 주문을 대량으로 제출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하락시켜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시장에서는 김익래 전 회장이 주가 하락 정보를 사전에 인지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다우키움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논란이 일파만파 확대되자 김익래 회장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키움증권 이사회 회장직도 사퇴했다. 이후 SG증권 주가 폭락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 검사에 이어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받게되면서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연합뉴스
SG증권발 주가 폭락의 배후로 지목되는 투자컨설팅업체 H사 라덕연 대표가 5월11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원장 취임 후 금감원-검찰 공조 5배 급증

주목되는 사실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금융 범죄 수사가 그 어느 때보다 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있다. 취임 1주년을 맞이한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지난 5월까지 25건의 금융 사건을 패스트트랙 방식으로 검찰에 이첩했다. 올해 들어서만 7건을 검찰에 보냈다. 이 원장이 취임하기 전인 2021~22년 5월 1년간 5건 미만의 사건이 패스트트랙을 통해 넘겨진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5배 늘어난 것이다. 

패스트트랙은 금융위원회나 금감원이 불공정거래 사건을 조사하다가 사안이 중대하거나 긴급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심의 및 의결 절차를 생략하고 곧바로 검찰에 이첩하는 절차다. 이 원장 취임 이후 대표적인 패스트트랙 사건은 에디슨EV의 쌍용차 먹튀 의혹, 에코프로 임직원의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거래 의혹, SM엔터테인먼트 주식 공개 매수 과정에서 벌어진 카카오의 SM 시세조종 혐의 사건 등이 꼽힌다. 

아울러 이복현 원장은 주가 조작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강력한 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이 원장은 5월23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유관기관 합동토론회에서 “올해는 불공정거래 세력과의 전쟁에 집중하겠다. 거취를 걸다시피 한 책임감을 갖고 추진하겠다”면서 “이 자리에 모인 것은 검찰과 금융 당국이 시장교란 세력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걸로 봐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최근 금감원은 증권범죄 조사인력을 70명에서 95명으로 대폭 확대했다. 또 특별조사팀과 정보수집전담반, 디지털조사대응반을 신설한다. 특별조사팀은 중대 불공정거래 사건 발생 때 총력 대응을 맡는다. 정보수집전담반은 불공정거래 정보를 수집하고, 디지털조사대응반은 신종 디지털자산에 대한 조사기법 도입 등을 검토한다. 현재 기획조사·자본시장조사·특별조사국 체제를 조사 1~3국으로 전환해 부서 간 업무 경쟁도 촉진한다.

이 같은 금감원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검찰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합수부) 외에도 전국 각지의 검찰청이 다수의 불공정거래 금융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남부지검이 자본시장에서 이름을 떨친 주가 조작 세력들을 추려 수사선상에 올려놨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실제로 검찰은 기업사냥꾼들의 ‘쩐주’ 역할로 유명한 원영식 초록뱀미디어 회장을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를 적용해 피의자로 입건해 두 차례 소환조사를 벌였다. 아울러 쌍용차 인수를 내세워 에디슨EV 주가 조작을 주도했던 M&A 전문가 이아무개씨도 최근 구속했다.

최근 서울남부지검 합수부 수장으로 단성한 합수부장까지 전진 배치되면서 이른바 ‘여의도 저승사자’ 체제가 완성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단성한 합수부장은 금융·증권사기 범죄 수사 전문가다. 초임 검사 시절인 2004년 고객 명의를 도용해 휴대전화 구입 할부 계약서를 위조하고 시가 6000만원 상당의 휴대전화를 빼돌린 업자를 구속 기소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서울남부지검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허위 타이틀을 내걸고 주식 인터넷 카페를 연 다음 유료 회원들을 모아 투자상담료 등을 명목으로 수억원을 챙긴 8명을 기소했다.

이미 법조계와 자본시장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금융·증권 범죄 ‘사정 드라이브’가 강하게 걸릴 것으로 관측했다.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린 서울남부지검 합수부가 현 정부에서 부활한 게 1차적 배경이다. 서울남부지검에 설치돼 금융범죄 수사를 전담해온 합수부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1월 폐지됐다. 이후 각종 금융 범죄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로 부상하면서, 윤석열 정부는 이 같은 원인이 합수부 폐지로 증권 범죄 대응 역량이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더해 서울남부지검장과 금감원장에 전·현직 강골 특수통 검사가 배치되면서, 두 기관의 공조체계도 강화됐다. 특히 사상 첫 검사 출신 금감원장이 취임하면서, 금융·증권 범죄 조사 역량을 강화했다. 양석조 서울남부지검장과 이복현 원장은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며, 두 사람은 국정농단 특검팀에서 함께 손발을 맞춘 적도 있다. 이 같은 인사는 증권·범죄 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는 한편, 두 기관장을 통해 검찰과 금감원의 공조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재계·금융권, 사정 칼바람 불까 조마조마

실제로 금감원과 검찰 간 유기적 협력 수준이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SG증권 주가 폭락 사건과 관련해 금감원과 서울남부지검 합수부는 합동수사팀을 꾸렸다. 아울러 최근 금감원 등 금융 당국과 검찰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행위를 뿌리 뽑기 위한 비상 회의체도 가동했다. 이들 기관은 당분간 격주로 모여 불법행위 대응 체계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한편 단속·조사 업무 공조 수준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증권가와 재계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공정위가 최근 ‘벌떼 입찰’에 가담한 중견 건설사 4곳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호반건설의 경우 오너 2세 회사 부당 지원 혐의로 6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와 정치인의 코인 투자 논란, 금융권 거버넌스 이슈까지 겹치면서 금융·증권 범죄를 겨냥한 사정 칼바람이 불 것이라는 불안감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던 이동채 에코프로그룹 회장이 2심 때 법정 구속되면서 에코프로그룹이 발칵 뒤집어지기도 했다. 더욱이 6월21일 이원석 검찰총장이 사상 처음으로 한국거래소까지 방문해 주가 조작 엄단 조치 의지를 보이면서 당분간 각종 금융·증권 범죄가 사정기관들의 타깃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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