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억대 국정농단 청구서, 또 혈세로?…“박근혜·이재용이 내야”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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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연루자들에 대한 구상권 청구 압박 커질 전망
고심 커진 법무부, 판결문 검토해 대응 방안 내놓을 듯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9월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9월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1300억원에 달하는 '국정농단 청구서'를 받아들었다.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막대한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법무부의 고심도 한층 커지고 있다. 혈세 투입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이번 사태 출발점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국정농단 연루자들에 배상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는 22일 한국 정부가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약 69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정문을 분석 중이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서 당시 박근혜 정부가 국민연금에 찬성투표를 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봤다며 2018년 7월 국제투자분쟁해결절차(ISDS)를 제기했다.

PCA 중재재판부는 전날 엘리엇 측 주장 일부 인용, 우리 정부에 5358만6931달러(약 690억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배상 원금과 지연이자, 법률비용 등을 더하면 정부가 지급해야 할 돈은 1300억원이 넘는다. 엘리엇이 입장문에 적시한 배상 총액을 기준으로 하면 법률비용 포함 1억850만달러(약 1402억원)가 된다.

1300억~14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혈세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ISDS는 불복 절차가 없고, 판정 취소소송을 별도로 청구해야 하는데 이 역시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어야 하는 등 조건이 제한적이어서 결과 자체가 뒤바뀔 가능성은 없다. 

론스타와 엘리엇을 비롯해 외국투자자와 총 7000억원에 달하는 5건의 국제분쟁 소송을 진행 중인 정부 입장에서는 고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압력을 행사하고, 이에 관여한 '국정농단' 연루 인물들이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국가배상법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공무원에게 국가가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국정농단 특검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과정에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점을 확인,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공단 본부장 등을 기소했다.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은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해 4월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확정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이 국민연금을 압박하게 된 것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나 승인이 있다고 봤다. 

이 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경영권 승계 등을 염두에 두고 부정한 청탁과 함께 뇌물을 건넨 혐의로 별도 기소돼 2021년 1월 징역 2년6개월을 확정받았다. 이 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 측에 건넨 뇌물 86억원이 국민연금에 대한 압박 등 국정농단으로 이어졌다는 게 특검과 사법부의 판단이다.  

엘리엇도 특검 수사와 기소, 사법부 최종 판단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당시 박근혜 정부의 전방위 압박이 확인된 점을 점을 적극 부각했고 결국 중재 판정에서 승기를 잡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구상권 청구 가능성 등에 대해 "현재는 판정서를 검토하는 단계로, 구상권을 포함해 구체적인 후속 절차나 대응과 관련해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논란과 관련해 2016년 11월23일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한 검찰이 압수물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논란과 관련해 2016년 11월23일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한 검찰이 압수물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연합뉴스

"1300억원 세금으로?…손해 끼친 자가 배상 해야"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21일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판정 결과에 동의하지 않지만 우리가 불복할 방법이 없어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국가에 미치는 손해를 발생시킨 자들에 대한 구상권 책임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패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인정된 것"이라며 "그 위반의 출발은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의 경우 한·미 FTA 준수 책임이 있는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판정문 속 박 전 대통령 위반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관여도가 어떻게 기술됐느냐에 따라 구상권 행사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 변호사는 법무부가 신속히 판정문을 공개해야 한다며 "우리 국민이 왜 1300억원이라는 돈을 세금으로 내야 되는지 바로 알 수 있게 이름을 가리지 말고 바로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도 전날 공동논평을 내고 "국민이 세금으로 마련한 나랏돈이 국민의 복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명목으로 지출되게 됐다"며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이재용 회장과 삼성물산, 박근혜씨,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박근혜 게이트 국정농단과 이재용 뇌물 사건 수사 현장의 최일선에 있었던 전문가이므로 이러한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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