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해학이 있는 K뮤지컬이 뜬다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4 11:05
  • 호수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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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저항과 신명 녹아든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주목

우리가 만들고 세계인이 환호하는 K콘텐츠 바람이 거세다. 2000년대 초반 K뷰티, K푸드를 시작으로 현재는 K팝, K드라마, K무비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 중이다. 이제 알파벳 26개 중 하나인 K를 접두어로 붙이면 바로 코리아를 상징한다는 것은 지구촌에서 상식이 됐다.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문화 강국에 여전히 배우고 즐길거리는 많지만 더 이상 그들에게 종속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우리만의 고유한 특질을 살리는 한국 콘텐츠들을 접할 때 더 큰 자긍심과 성취감을 얻는다.

공연 예술의 대표주자인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백 년이 넘는 서구 뮤지컬의 역사에 비해서는 짧지만, 한국 뮤지컬 역시 대중화된 지 어느덧 30년 가까이 지났다. 그사이 해외 유명 라이선스 레퍼토리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 창작뮤지컬들이 눈부신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무대 한 장면 ⓒPL엔터테인먼트 제공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무대 한 장면 ⓒPL엔터테인먼트 제공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무대 한 장면 ⓒPL엔터테인먼트 제공

대학생들이 만든 학교 공연에 뿌리

그런 점에서 한국 뮤지컬의 발전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하나 있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풍자와 해학이라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메시지를 품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도전적인 장르까지 시도한 특별한 작품이다.

출발은 2017년 당시 서울예대 재학생들이 만든 학교 공연 《외쳐 조선!》이었다. 이를 세상에 나오게 해준 제작사 PL엔터테인먼트의 송혜선 프로듀서는 어쩌면 일회성 공연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원석을 발견했고, 이를 개발해 한국 뮤지컬에서 새로움이란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것임을 증명해 냈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하는 중소형 한국 뮤지컬의 소재는 대부분 서양의 역사적 사건이나 위인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역사와 허구를 결합해 조선시대 예술혼을 흥으로 불사르는 젊은 연희집단의 이야기에 힙합과 퓨전 국악의 사운드까지 입힌 이 작품은 단숨에 대학로 창작뮤지컬의 미래로 떠올랐다. 뮤지컬에도 이제 접두어 ‘K’를 붙여도 될 콘텐츠가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K뮤지컬의 등장은 코로나19로 공연계가 얼어붙었던 팬데믹 시기에도 빛났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마스크 너머로 즐거운 표정조차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에도 이 작품은 두 번의 시즌 공연을 통해 한국인에게 흥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팬데믹 시기에 열렸던 두 번의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모두 수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작품의 배경은 조선시대에 극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새로운 설정을 부여했다. 바로 조선의 통치 이념이 ‘시조(時調)’라는 것이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그 시대 백성들은 시조 한 수를 읊으면서 현실 속 고단한 삶의 무게를 잊는다. 하지만 주인공의 아버지이자 당대 최고의 시조 이야기꾼은 역모를 획책한다는 모함에 휩쓸리게 되고 이후 시조는 양반만의 전유물이 됐다.

백성들은 여전히 힘들 때 시조를 떠올리지만 조정에서 하달한 엄격한 금지 정책으로 인해 불행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동파 연희자들의 결사조직 골빈당이 등장한다. 백성들은 사리사욕에 빠진 양반가와 조정 대신들에게 실망하고 있다가 골빈당의 풍자와 해학의 메시지에 열성적인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조선의 실권자 시조대판서 홍국은 골빈당을 일망타진하고자 15년 만에 ‘조선 시조 자랑 대회’를 부활시켜 이들을 조정으로 유인하게 된다.

한편 주인공인 청년 ‘단’은 불행한 가정사에도 특유의 사교성과 운율을 만드는 실력으로 골빈당의 새로운 일원이 되고 양반계급을 풍자하는 내용의 시조를 짓는 능력까지 출중해 승승장구하게 된다. 단과 골빈당 멤버들은 대판서 홍국이 자신들을 잡기 위해 쳐놓은 덫의 위험성을 감지하고도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생생한 메시지를 왕에게 직접 전하기 위해 정체를 숨기고 ‘수애구’라는 팀명으로 대회에 참가한다. 

대판서의 딸이지만 아버지도 모르게 골빈당의 핵심으로 활동하는 ‘진’ 역시 아버지 홍국의 그릇된 권력욕의 실체를 확인하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찾아서 신념을 가지고 활동한다. 결국 이들의 소박하면서도 큰 뜻이 세상과 통해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남녀 주인공 단과 진이 상투적인 로맨스로 엮이지 않으면서 각자 자신이 속한 계급이 전혀 다름에도 ‘인본주의’ 본질에 자연스럽게 다가가며 성장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실재하는 문학 장르인 ‘시조’를 우리글의 맛이 느껴지는 뮤지컬 가사로 치환해 서양의 랩과 통합을 시도한 점도 신선하다. 극 중 가장 흥겨운 장면 가운데 하나인 ‘양반놀음’ 장면은 중독성 있는 멜로디, 흥겨운 탈춤, 관객과의 호흡이 모두 어우려지며 이 작품을 남녀노소 모두 신명 나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콘텐츠로 만들어주었다. 가로세로로 직조된 우리 전통 의복의 느낌을 가진 상징적인 무대 세트도 눈길을 끈다.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포스터 ⓒPL엔터테인먼트 제공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포스터 ⓒPL엔터테인먼트 제공

작은 외침이 세상을 바꾼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주인공 단과 진 역에 초연부터 참여해 큰 인기를 끌었던 양희준, 김수하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전체 캐스트에는 단과 진 역할로 각각 데뷔 공연을 갖는 김서형, 김세영 등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서는 ‘준비된 신인’이 많이 포함돼 있다. 실제로 극의 내용상 주인공 캐릭터들이 젊은 세대이기에 이 작품은 열정 넘치는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으로서도 또 다른 미덕이 있다. 선명한 기승전결 이야기 구성에 한국인의 DNA를 자극하는 흥겨운 음악들을 품은 이 작품은 가족이나 직장 단위의 ‘집합 관람’에도 최적화된 K뮤지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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