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당은 왜 일타강사 ‘억대 연봉’을 저격했을까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6.22 14: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與 지도부 “범죄이자 사회악” 맹공에 “보수가 할 소리?” 반박 충돌
국민의힘과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출제를 배제하고, 수능의 적정 난이도 확보를 위해 출제 기법 등 시스템을 점검하기로 협의한 1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교육 내용이 안내돼 있다. ⓒ연합뉴스
정부·여당이 수능에서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출제를 배제하고, 수능의 적정 난이도 확보를 위해 출제 기법 등 시스템을 점검하기로 협의한 1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교육 내용이 안내돼 있다. ⓒ연합뉴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빼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가 사교육계 전반에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정부‧여당은 고액 연봉을 받는 일타강사들에게 연일 칼날을 겨누며 대통령 지원 사격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사교육 시장에 ‘카르텔’을 형성하고 교과 과정을 벗어난 고난이도 문항을 출제해 이권을 챙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중심으로 강사들을 향한 원색적 비난까지 이어지자 여권 일각에서 “지나친 악마화”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특히 ‘자유’와 ‘시장’ 가치를 강조해 온 보수 진영에서 고소득을 비난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수능 논란은 어느새 여권 내 ‘일타강사 소득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른바 '일타강사 고소득 논쟁'으로 충돌하고 있는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왼쪽)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이른바 '일타강사 고소득 논쟁'으로 충돌하고 있는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왼쪽)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쉬운 수능 논란이 여권 내 일타강사 소득 논쟁으로

여당 지도부는 한 마디로 일타강사들이 학생들의 ‘불안’을 이용해 부당하게 초과이익을 거둬들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윤 대통령의 지시마저 묵살하고 킬러 문항을 유지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21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일부 강사들 연 수입이 100억원, 200억원 가는 것이 공정한 시장 가격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고 그 피해를 바탕으로 초과 이익을 취하고 있다”며 ‘범죄’이고 ‘사회악’이라고 규정했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 또한 논평을 통해 “망국적 사교육은 일부 업계 종사자들의 배만 불릴 뿐, 학생들을 힘들게 하고 가정 경제를 위협한다”고 비판했다. 

일타강사를 저격하는 여권의 여론전에 지지층도 즉각 동요하고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낸 주요 강사들을 집중 저격했다. 고가의 시계를 차거나 호화 주택에 거주하는 강사들의 모습을 공유하거나 이들의 SNS에 ‘댓글 폭탄’을 날렸다. 결국 일부 강사들은 기존의 비판 글을 삭제한 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여권 일각에선 비이성적이라며 우려를 제기하고 나섰다. 대표적으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사교육 업계 강사들이 고소득자라고 공격하는 것은 막무가내 악마화이자 바보 같은 행동”이라며 “근본적으로 보수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일타 강사들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정글 같은 사교육 시장에서 그의 강의를 시청한 수십만 명에게 냉정한 잣대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즉 강사들의 수입은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스러운 시장 원리에 따른 결과이며, 정해진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한 영리활동일 뿐이란 주장이다.

김웅 의원도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부자를 악마화하고 계층과 직역을 구분하여 갈라치기 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하는 짓”이라며 당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에선 강사들의 고소득을 ‘법 테두리 내 영리활동을 넘어선 것’으로 규정하고 바로잡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철규 사무총장은 “교육 수혜자에게 불공정한 이런 서비스를 계속 받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며 “사회악을 비호해선 안 된다”고 단언했다.

교육부도 사교육 시장 ‘집중 단속’에 팔을 걷어붙이며 화력을 더했다. 2주 간 학원가의 허위 광고 등 부조리를 단속해 카르텔을 때려잡겠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주기적으로 사교육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이 있어왔지만, 교육부가 이번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불법 행위까지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사교육계는 이미 바짝 위축된 상태다.

이러한 여권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두고, 앞선 윤 대통령의 발언에 따른 교육 현장 혼선을 수습하려는 행위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한 원외 인사는 22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최근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나오는 말들을 보면 오로지 ‘대통령 엄호’에 몰두하고 있다. ‘대통령이 조국 수사를 하며 입시 전문가가 됐다’는 최근 박대출 정책위의장의 말이 단적인 예”라며 “교육 문제 전반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고민 없이 당장 고액 강사들만 타깃으로 삼고 여론몰이에 나서는 것처럼 비친다”고 비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끌고 나가는 사안에 있어선 본인들 진영의 철학과 상관없이 비호한다”며 “내년 총선이니 공천 받아 이름 알리고 지지층에 존재감을 띄워야 하니 더욱 이 같은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