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은 한화 M&A 승부수 통했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7.18 07:35
  • 호수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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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이 금융, 장남 김동관이 방산 밸류체인 완성…한화오션 이을 그룹의 새 먹거리 어디가 될지 주목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재계에서 ‘인수합병(M&A)의 마술사’ 혹은 ‘인수합병의 승부사’로 불린다. 공격적인 M&A를 통해 그룹의 고속 성장을 견인해 왔기 때문이다. 공정위 기업집단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한화그룹의 계열사는 96곳, 자산은 83조280억원(공정자산 기준)으로 재계 7위를 기록했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재계 순위는 10계단이나 올랐고, 자산은 9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그룹의 모태 사업인 방산 부문의 성장세가 무섭다. 지난 5월 숙원이었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를 15년 만에 마무리 지으면서 육·해·공을 아우르는 방산 밸류체인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김승연 회장이 2017년 천명한 ‘한국형 록히드마틴’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 당시 한화그룹은 2025년까지 매출 12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해 세계 10위 방산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6년 16위에서 2020년 28위로 순위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미국 국방매체 디펜스뉴스는 지난해 세계 100대 방산업체를 발표했다. 한화그룹의 경우 매출 47억8000만 달러(6조1638억원)로 30위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국내 조선업계 ‘빅3’인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서 방산 부문 매출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은 현재 국내 군함 시장의 25.4%, 잠수함 시장의 97.8%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한화오션의 연결 매출이 4조8601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 방산 매출은 목표에 어느 정도 근접하거나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왼쪽)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
(왼쪽)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연합뉴스·시사저널 사진자료

공격적인 M&A 통해 재계 7위 도약

김 회장의 다음 행보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을 주목하고 있다. KAI는 1999년 삼성과 대우, 현대의 항공산업부가 통폐합되면서 출범했다. KT-1 기본훈련기와 T-50 고등훈련기, FA-50 경공격기, 수리온 등 전투기와 헬기 등을 제작·판매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형 전투기인 KF-21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한화테크윈이 전투기 엔진 등 핵심 부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KAI를 인수하면 전투기 사업을 수직계열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한화그룹이나 KAI 측은 “당분간 M&A 계획은 없다”거나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일각의 소문을 일축했다. 한화오션 인수를 진두지휘한 김동관 부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한화오션의 경영 정상화가 우선이다. 추가 M&A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강구영 KAI 사장도 “한국 항공·우주 전력의 70% 이상을 KAI가 담당하고 있다. 이를 민간에 넘겼을 때 안보가 담보되겠냐는 의문이 있다”면서 “정부도 KAI를 민간에 넘기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화그룹은 그동안 KAI 민영화 계획이 발표할 때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돼 왔다. 김승연 회장 역시 KAI 인수에 그동안 많은 관심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한화가 다시 KAI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한화그룹은 1980년대부터 대형 M&A를 진행해 왔다. 김 회장은 1981년 29세의 나이에 회장직에 올랐다. 이듬해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현 한화솔루션 케미칼·첨단소재 부문)의 인수 검토를 지시했다. 당시 두 회사는 적자 상태였다. 글로벌 석유파동으로 업황도 좋지 않았다. 그룹 내 경영진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뚝심 있게 인수를 진행했고, 매매대금 전액 분할 납부라는 유리한 조건으로 회사를 인수할 수 있었다. 이듬해 석유화학 경기가 회복됐고, 두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 시기가 한화그룹의 첫 번째 도약기였다. 1980년 7300억원 규모였던 그룹 매출이 1984년 3배 증가한 2조1500억원으로 3배나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한양유통(현 갤러리아)과 정아그룹(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을 인수하면서 기존의 화약, 기계, 석유화학 중심의 외형이 유통과 레저로 확대됐다.

한화그룹은 IMF 외환위기 당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계열사 수는 37개에서 17개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인수에 나섰다. 당시 대한생명은 대주주의 전횡과 계열사에 대한 부실대출로 금융감독원의 특별감사를 받고 있었다. 김 회장은 금융업이 신성장동력이라고 판단했다. 2002년 12월 일본 오릭스, 호주 맥쿼리와 컨소시엄을 결성해 한화생명을 인수했다. 재계 일각에서 “새우가 고래를 삼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였다. 

당시 대한생명은 누적결손금이 3조원에 이르렀고, 보험의 핵심인 영업 조직 역시 붕괴 직전이었다. 조직과 경영을 안정시키기 위해 김 회장이 직접 나섰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은) 당시 모든 계열사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고, 대한생명 대표만 무보수로 2년간 맡았다”면서 “덕분에 인수 당시 2.3조원의 손실도 6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29조원에 불과하던 총자산도 지난해 161조2355억원으로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때가 한화그룹의 두 번째 도약기였다고 말한다.

김 회장의 M&A 승부사 기질은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으로 이어졌다. 한화그룹은 2012년 10월 독일 기업인 ‘큐셀’(현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을 인수했다. 이전까지 큐셀은 태양광 셀 생산능력 세계 1위 기업이었다. 하지만 태양광산업 불황과 중국 업체 도전을 견디지 못하고 2012년 4월 파산했다. 누적 영업적자는 4420만 달러에 달했고, 공장 가동률은 20~30%에 불과했다. 김 회장은 태양광 사업의 수직계열화와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는 차원에서 큐셀 인수를 강행했다. 이때 부친을 도와 M&A의 세부 작업을 진두지휘한 인사가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었다. 

 

“추가 도약 위해선 김동관 부회장 역할 중요”

한화그룹은 2014년 삼성그룹의 방산 및 화학 계열사 4곳을 인수하는 빅딜을 단행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항공엔진·항공사업)를 중심으로 한화디펜스(방산), 한화시스템(IT·방산), 한화정밀기계(정밀·공작기계), 한화파워시스템(에너지), 한화테크윈(시큐리티) 등 5개 자회사가 자리한 사업구조를 완성했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 인공위성인 ‘우리별1호’의 개발사 세트렉아이와 가스터빈 성능 개선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PSM, 네덜란드 토마센에너지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이 빅딜 역시 김동관 부회장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목되는 사실은 한화그룹이 최근 계열사인 한화시스템을 통해 위성통신 사업을 위한 기간통신사업자 등록을 신청했다는 점이다. 세계 최초 우주 인터넷 기업인 원웹과 협업도 진행 중이다. 원웹은 스타링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페이스X와 함께 저궤도 통신 위성을 통해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재계에서는 군 전술과 같은 방산 분야에서 이 사업모델을 우선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2010년부터 추진했다가 지지부진한 제4 이통사 진입을 노린 행보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지난 6월7일부터 부산에서 열린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에서 저궤도 위성통신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시스템 부스를 직접 찾아 임직원 격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과 교수는 “한화의 한 축인 금융 밸류체인을 김승연 회장이 이뤄냈다면 또 다른 축인 방산 밸류체인 완성은 김 회장의 장남이자 유력 후계자인 김동관 부회장이 맡았다”면서 “한화의 추가 도약을 위해서는 김 부회장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미래 사업인 신재생에너지와 항공, 방산 등을 김 부회장이 총괄하는 만큼 향후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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