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문재인 시대의 ‘민족 중심’ 없애고 ‘두 개의 나라’ 수용?
  • 최경희 샌드연구소 대표·도쿄대 정치학 박사 (kh.c007100@gmail.com)
  • 승인 2023.07.14 14:50
  • 호수 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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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의 “대한민국” 언급 후 ICBM 발사…김정은은 국가제일주의 추구
남북 명맥 이어왔던 민족 개념 후퇴…한국도 민족적 특수성 폐기 검토를

6·25 정전협정(1953년 7월27일) 7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7월10~11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김여정이 대외 선전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연이어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의 내용은 미 공군의 북한 지역 정찰활동을 비난하는 것이었으나 담화의 상대는 한국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남한에 대해 과거의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호칭을 사용한 부분이다. 물론 한국에 대한 조소, 조롱의 직유법을 사용하고 있으나, 북한에서 담화가 국내외의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노동당과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호칭을 사용한 김여정의 담화는 대남·대미 분야의 목적의식과 전략적 방향성을 내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여정의 ‘대한민국’론은 미 공군의 정찰행위에 의한 급조된 상황인식이 아닌 북한이 오랫동안 시도해온 이른바 ‘우리국가제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가주의적 성격을 함유한 ‘우리국가제일주의’는 2017년 11월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한 이튿날 ‘국가 핵무력 건설위업 완수’를 선포한 11월30일자 노동신문 사설에 처음 등장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2017년 핵무력 완성 단계부터 국가주의 천명

이후 노동당 기관지나, 철학, 사회정치학 연구 등 북한의 언론매체와 교재들에 ‘우리국가제일주의’가 빈번히 등장했고 이후 김정은 정권이 지향하는 국가 정체성의 재확립과 미래 전략의 새로운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북한이 말하는 ‘우리국가제일주의’는 “핵 전략자산 보유국으로서 국가의 존엄과 지위를 높이기 위한 결사적인 투쟁의 결과로 탄생한 자존과 번영의 새 시대”로 규정된다.

남북의 공통분모이며 명맥을 이어주는 ‘민족’의 개념이 사라지고 남북을 분리하는 핵에 기반한 국가주의를 강조한 것이다. 김여정의 ‘대한민국’론에는 북한이 지향하는 ‘우리국가제일주의’의 본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첫째: 핵·미사일 가치 극대화다. 북한은 김여정이 담화에서 연이틀 ‘대한민국’론을 언급한 후 급기야 7월12일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8형 발사를 강행했다. 그리고 13일 노동신문에서 “핵전쟁의 참화로부터 우리 국가의 안전과 지역의 평화를 믿음직하게 수호하고 적대 세력들의 위험천만한 군사적 준동을 철저히 억제하기 위한 정당방위권 강화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화성-18형 발사가 전략핵무력을 더욱 고도화하는 데 목적을 둔 필수적 공정이며 한미의 군사력을 압도할 전략무기임을 강조한 것이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9월 핵교리법을 채택해 핵무력의 방어적 성격을 벗어나 공격성까지 사용교리에 명시한 바 있다. 김정은이 집착하는 공인된 전략국가 지위가 핵보유국으로서의 집단의식화를 통해 ‘탈인간적’인 위험천만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급조된 목표가 아니다. 2011년 김정일의 사망 직후 노동신문을 통해 이른바 ‘3대 혁명 유산’(2011년 12월28일) 중 가장 첫 번째 유산(핵보유국)으로 이미 설정해둔 오래된 목표다.

둘째: 남북한의 차별화에 의미를 둔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의 ‘대한민국’론은 그동안 북한이 오랫동안 추진했던 남한과의 문화적 차별이나 정서적 이질화의 연속선상이다. ‘대한민국’ 정식 호칭을 사용해 핵보유국의 우월적 지위를 표현하려 한 점에서도 표현된다. 이는 한민족을 ‘김일성민족’으로 헌법에 명시하거나 ‘평양시간’(2015년 8월15일~2018년 5월5일)을 제정해 남북한의 시공간과 민족의 역사적 사실을 북한식으로 왜곡해 자신들만의 자아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비롯된 행태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매체들이 ‘국풍 확립’을 강조하며 ‘국기와 국장, 애국가를 신성하게 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노동당 행사에서 ‘애국가’를 제창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셋째: 한국의 내정 간섭을 방어 및 경계하는 차원이다. 북한의 집단의식화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내부 결속과 김정은 정권의 정통성 재확립을 위해 지속적으로 반복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수위는 더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가비밀보호법’(2023), ‘국가상징법’(2023), ‘평양문화어보호법’(2023), ‘청년교양보장법’(2021) 등 북한 내 집단 결속과 남한을 상대로 한 외집단 타자화를 위한 각종 법제를 채택하고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분야별 다양한 법제의 공통점은 북한으로 유입되는 ‘자유’의 가치나 정보, 문화 요소들을 제거하고 접근 불가하도록 방어하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내용들이다. 이러한 통치행위들은 김정은 정권의 대남 인식과 ‘남조선’을 ‘대한민국’으로 타자화할 필요성을 설명해 준다.

 

1980년대 김정일이 민족주의 부활시켜

북한은 과거 공산권 국가들이 개방정책을 추진하던 1986년에 김정일에 의해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라는 국가유기체설을 발표했고 여기서 ‘우리민족제일주의’ 개념이 파생되었다. 1980년대 중후반 공산주의 이념이 부정되던 시기에 민족주의를 부활시켜 남한의 수많은 인사와 교류를 시작했고 적지 않은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민족주의를 배제하며 그들의 그림자를 지우고 있다. 문재인 시대의 민족 중심 개념을 북한에서 폐기하고 과거에 그토록 반대하던 ‘두 개 조선’의 수용이라는 수세적 논리를 김여정이 공식화한 셈이다.

하지만 모든 일은 양면성이 존재한다. 김여정의 ‘대한민국’론은 또 하나의 새로운 남북관계 질서를 수립하는 데 명분이 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남북관계는 유엔 동시 가입국(1991년 9월17일)이자 상호 국가 관계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며 잠정적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의 특수관계로 규정되어 있다. 그동안 분단 이후 3년간의 민족상잔의 아품을 겪으며 휴전 상태로 70년간, 서로 다른 체제로 75년간 살아왔다. 이 기간 중 산업화, 민주화, 국제적 위상과 풍요로움을 모두 이뤄낸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선택지 위에 놓여 있다. 북한을 주변 환경의 주요 변수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이라는 애매모호함을 줄이고 좀 더 냉정하고 상호주의적이며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질서 확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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