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금고 대란으로 무너진 ‘서민 금고’의 자존심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24 12:05
  • 호수 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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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시중은행의 지원으로 뱅크런 사태는 조기 진화
고객 신뢰 회복 위해서는 ‘든든한 금융’ 기본으로 돌아가야

이른바 ‘새마을금고 대란’이 정부와 시중은행의 지원에 힘입어 조기에 진화됐다. 일부 기업의 주가 조작 사건과 달리 새마을금고 사태가 시장이나 서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질적으로 다르다. 새마을금고의 총 거래자는 현재 2260만 명에 이른다.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특정 기업의 사태로 간주하기엔 부정적 파급효과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기에 정부는 이번 사태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연합뉴스
새마을금고 위기설로 인해 확대 분위기이던 자금 이탈 규모는 7월7일 처음으로 감소세로 전환됐다. 사진은 서울의 한 새마을금고 지점 모습 ⓒ연합뉴스

‘안전한 자산’ 외친 새마을금고의 위기

새마을금고는 고객에게 든든한 금융, 안전한 자산을 홍보해 왔다. 시중은행 대비 고금리를 제공하면서도 주요 금융권의 포지션에 설 수 없기에 고객이 느낄 수 있는 불안을 최소화하는 데 마케팅 전략을 집중했다. 2012년에도 새마을금고는 ‘2배 더 안전합니다’라는 슬로건을 강조해 과대 광고 논란에 휩싸이면서까지 안전성을 부각했다. 새마을금고는 말 그대로 서민의 금고라는 상징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새마을금고의 슬로건은 든든한 금융과 안전한 자산이지만 정작 든든함, 안전함과는 거리가 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에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대란은 시작됐다. 새마을금고의 고금리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라는 굳건한 믿음에서 나온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고금리를 이끌었지만 부동산 경기가 둔화하자 서민의 금고라는 상징성을 유지해온 새마을금고의 위기는 더 빠르게 서민 경제를 위협해 나갔다. 앞서 말했듯이 새마을금고는 5대 시중은행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한다. 각 지점은 항상 예·적금 금리를 커다랗게 광고하며 고객을 유치해 왔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신뢰는 경제적 요인보다 심리적 요인을 토대로 형성된다. 고객 입장에선 새마을금고의 총자산 284조원, 총 거래자 2260만 명이라는 숫자보다 새마을금고의 ‘부동산 대출액 56조원 초과’라는 기사가 더 크게 다가온다.

불신은 큰 혼란을 유발한다. 지난 두 달간 고객이 7조원의 자금을 새마을금고로부터 찾은 것은 그만큼 불신으로 인한 심리적 충격과 상실감이 매우 컸음을 의미한다. 고금리라는 수익보다 발생 가능성이 높은 손실을 참기 힘든 건 인간의 본능이다. 새마을금고의 결정적인 실수는 ‘금고’라는 특유의 상징적 키워드를 이번 대란을 통해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서울 전체 230개 지점의 절반에 육박하는 109곳의 연체율은 5%를 넘어섰다.

특히, 고객은 숫자로 제시되는 연체율보다 내 주위에 있는, 그리고 내가 자주 방문한 지점이 폐업 후 합병되는 모습을 지켜볼 때 더 많은 충격을 받는다. 연체율은 남의 일이 될 수 있지만 내가 방문한 지점의 폐쇄는 남의 일이 아닌 온전히 나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새마을금고의 지점은 총 1294개. 남양주 동부새마을금고의 폐업과 합병 소식은 남은 1293개 지점의 뱅크런을 가속화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새마을금고 사태를 비판하던 정부가 진화의 방향을 급격히 유턴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위원장과 행정안전부 차관 등이 모 지점을 방문해 금융상품에 가입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새마을금고 역시 예·적금 재예치를 다시 신청한 고객에게 당초 약정 이자를 복원하고 비과세 혜택을 유지하는 등 발 빠르게 후속 조치를 단행했다.

금융 불신이나 신뢰는 늘 심리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새마을금고 사태가 진정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과제는 남아있다. 새마을금고의 유동성 위기가 정부와 시중은행의 협력으로 일단락됐다고 해도 대출 잔액 및 연체율 이슈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새마을금고의 대출 잔액과 연체율은 2019년부터 4년간 꾸준히 누적되다가 폭발한 이슈다. 하루아침에 생겨난 문제가 아닌 만큼 철저한 감독과 투명성이 요구된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새마을금고의 위기를 거론하는 보도가 이어지자 인터넷과 모바일에는 각 지점별 경영 공시 자료를 살펴보고 지점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재무지표가 무엇인지 상세히 공개됐다.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지점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공시 자료를 살펴보는 고객이 늘어나자 새마을금고는 공개했던 경영 공시 자료를 성급히 닫았다. 정보에 관한 폐쇄적 운영은 단언컨대 불신만 키운다. 공시 자료가 비공개 처리되자 일부 지점은 자신들의 신용등급과 안전성을 직접 현수막으로 홍보하는 등 각자도생에 나섰다. 이래서는 든든한 금융, 안전한 자산이라는 새마을금고의 방향성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연체율보다 더 위험한 건 투명하지 못한 정보 공유에 있다. 불투명은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불확실성은 위기를 키우는 촉발 요인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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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7일 서울 시내 한 새마을금고 지점에 예금자 보호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미국 SVB 파산과 새마을금고 대란 사이

새마을금고의 감독기관을 행정안전부에서 금융위원회로 변경하자는 논의가 현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새마을금고의 각 지점별 정보가 언제나 투명하게 모든 이에게 공개돼야 한다는 데 있다. 이번 대란도 일부 지점의 무리한 PF 대출에서 비롯됐다. 감독기관 이전도 중요하지만 각 지점의 경영 상황을 365일, 24시간 고객이 언제든지 살펴볼 수 있도록 정보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3월 200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보유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하 SVB)이 유동성 부족으로 파산한 소식을 접한 바 있다. SVB는 설립한 지 40년이 넘은 미국 내 16위 은행이다. 실리콘밸리에선 예금 기준 3위 안에 드는 대형 은행이다. 그랬던 SVB도 고객 예금의 절반을 조용히 미국 국채와 모기지 채권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가 몰락을 자초했다. SVB 사태는 새마을금고 대란과 묘하게 닮아있다.

고객의 허락 없이 든든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투자와 대출에 나섰다가 위기를 자초했다는 점에서 SVB 파산은 새마을금고 사태에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그 어떤 감독기관도 금융기관의 신뢰를 결코 대신하진 못한다고 강조했다. “자발적 의지에 의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수록 시장의 공포는 빠르게 가라앉는다”는 그의 발언이 더욱 크게 와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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