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참사 키운 ‘무책임 행정’…“내 책임 아니다” 골든타임 놓쳐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7.21 10:05
  • 호수 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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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때마다 되풀이되는 ‘네 탓 공방’에 사실상 ‘무정부 상태’ 반복
안 보이는 재난 컨트롤타워…“국정 운영의 기본이 안 지켜지고 있다”

또 수마가 대한민국을 할퀴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7월9일부터 계속된 장맛비로 인해 20일 기준으로 모두 46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부상자도 35명이나 된다. 비 피해 우려가 커지면서 학교나 마을회관 같은 임시 거처로 긴급 대피한 주민이 1만6000명을 넘는다. 주택은 660채 넘게 침수되거나 부서졌다. 도로와 하천제방, 교량 등 공공시설 1170여 곳도 유실되거나 파손됐다. 

무엇보다 인명 피해가 뼈아프다. 아무리 ‘극한호우’(시간당 50㎜ 이상의 강수량을 보이며 홍수와 침수를 유발하는 극심한 호우)가 쏟아졌다고 해도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수해로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국민이 숨질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지금 국민은 묻고 있다. 작년에 이어 수해 때마다 왜 인명 피해가 반복되는지, 예보된 날씨에도 행정 실패는 왜 되풀이되는지,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지, 대체 어떻게 해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인지 등을 묻고 있는 것이다. 특히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지금 대한민국 재난 관리 시스템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국가의 실패’이자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로 평가된다. ‘무정부 상태’라는 질타가 나올 만큼 재난 대응 시스템이 무너진 이유를 오송 침수 사고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7월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책임 떠넘기기 급급한 청주시와 충북도

최악의 지하차도 침수 참사로 기록될 오송 사고는 교통 통제만 미리 이뤄졌어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교통 통제가 적시에 이뤄지지 않았다.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①관련 행정기관들이 제때 제대로 움직이지 않은 채 책임을 떠넘겼고 ②낡은 매뉴얼은 일상화된 극한호우 등을 막기엔 역부족이었으며 ③재난 관리의 컨트롤타워는 제 역할을 못 했고 대통령의 리더십도 보이지 않았다. 국가를 지탱하는 세 개의 축 모두가 무너져 있었다는 뜻이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오송 지하차도에서 침수 사고가 난 7월15일 오전 8시45분까지 참사를 막을 교통 통제의 기회, 그 골든타임은 분명히 존재했다. 홍수경보는 참사 발생 4시간30분 전에 발령됐고, 사고 발생 1시간40분 전부터 침수 우려가 있다는 여러 건의 신고가 112와 119 등에 접수됐다. 하지만 어느 행정기관도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았다. 

침수 사고 당일 ‘홍수경보’는 오전 4시10분 발령됐다. 금강홍수통제소는 이 시각 미호천교 주변에 홍수경보를 발령하고 직후 국무총리실, 행정안전부, 충북도, 청주시, 흥덕구 등 기관 76곳에 통보문 등을 발송했다. 오전 6시34분에는 청주 흥덕구에 전화를 걸어 “미호강 수위가 홍수계획 수위에 도달했으니 주민 대피 등 매뉴얼대로 대응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흥덕구청은 이 내용을 오전 6시36분 청주시 하천과에, 오전 6시39분쯤 청주시 안전정책과에 각각 전달했다. 하지만 청주시는 이 내용을 오송 지하차도를 관리하는 충북도로관리사업소에 전하지 않았다. 청주시는 소방 당국 요청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전 7시51분쯤 “미호강 제방이 유실될 것 같다”는 민원인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소방대원들은 오전 8시3분쯤 현장에 도착해 “제방 둑이 무너져 미호강이 범람하고 있다”고 상황실에 보고했다. 상황실은 이 사실을 청주시 당직실에 전달했지만, 청주시는 도로 관리 주체인 충북도에 통보하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도 대응이 부실했다. 오전 7시4분부터 침수 우려 관련 112 신고 2건이 접수됐고, 이 중에는 장소까지 특정하며 “교통을 통제해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출동 인력이 부족하다며 지하차도에 출동하지 않았다. 소방은 신고를 받고 무너지기 직전인 임시 제방에 출동하고도 청주시 등에 상황만 전달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철수했다. 광역자치단체부터 기초단체, 경찰과 소방 당국 모두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뀐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재난 매뉴얼

대통령실이 미호강의 관리 주체로 지목한 충북도는 왜 제대로 된 대처를 즉시 하지 않았을까. 충북도는 당시 상황이 교통 통제 요건 중 일부는 충족했지만 ‘지하차도 중심부 수위 50cm’라는 매뉴얼 기준에 맞지 않아 교통을 통제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순식간에 이 정도 높이까지 물이 들어차면 이미 사람은 빠져나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행정기관 매뉴얼이 물이 빠르게 유입될 경우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지금의 재난 관리 매뉴얼은 ‘극한호우’가 일상화된 최근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많다. 기상청에 따르면 7월13일부터 16일 오후까지 충청·경북·전북에는 300~570mm의 많은 비가 내렸다. 특히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벌어진 충북 청주 상당구에는 같은 기간 474㎜의 폭우가 퍼부었다. 지난 30년간 청주에 한 달간 내린 평균 장맛비는 344.7mm다. 불과 사흘 남짓한 기간에 평년 장마철보다 38%가량 많은 비가 쏟아진 것이다. 

이처럼 기상이변이 일상이 된 지금 상황에는 과거 데이터에 근거한 재난 시스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특히 현행 매뉴얼은 대부분 과거의 기후를 기준으로 작성돼 있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예측 불허의 호우에 대비하려면 기존의 소극 행정이 아닌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이번 사태에서도 기존의 상식에 근거한 매뉴얼과 기준은 더 이상 현재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국가하천에 설치하는 댐이나 둑 등의 시설은 100년에 한 번 나타날 강수량을 의미하는 계획홍수위(제방이 버틸 수 있는 한계수위)를 기준으로 건설하도록 돼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미호강의 임시 제방이 이보다 1m가량 높게 시공됐는데도 단시간에 수량이 늘어 범람했다고 밝혔다. 행복청의 주장대로라면, 현행 기준으로는 극한호우 등 집중호우 시 강이 넘치는 상황을 막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이와 관련해 송창욱 전 청와대 제도개혁비서관은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극한호우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예상을 뛰어넘는 재난이 빈번해지고 재난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재난 대비 계획이 필요한 이유”라면서 “변화된 재난 양상에 맞는 재난 대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범정부 차원의 재난 취약계층 파악이 새롭게 필요하다. 재난 사각지대가 기존과 다를 수 있는 만큼 철저한 관리와 점검 등을 통한 새로운 방식의 대응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덕수 총리가 통솔했지만 구멍 ‘숭숭’

오송 참사는 재난 시스템의 붕괴로 야기됐지만, 이 모든 책임을 실무진에만 돌릴 수는 없다. 긴급한 자연재해 상황에선 재난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중앙부처와 지자체, 소방·경찰 당국 등이 유기적 소통을 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기관 간 정보 공유는 원활한지, 소방 등이 신고에 적극 대응하는지, 지자체가 위임받은 하천 관리 등을 제대로 하는지 점검하고 독려하는 것이 바로 컨트롤타워 역할이다. 

하지만 나라에 큰 재난이 닥쳤는데도 정부의 재난 컨트롤타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재난과 안전의 주무부처 장관인 행정안전부 장관은 5개월째 공석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중대본을 통솔했다지만 구멍은 여기저기 숭숭 뚫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이었는데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현장에) 뛰어가도 크게 바꿀 것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재난 대처 인식을 국민 앞에 내놓았다. 지난해 태풍 ‘난마돌’ 대응을 위해 방미 일정을 하루 연기한 일본 기시다 총리와도 대비된다.

강정구 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선임행정관은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의 ‘재난 컨트롤타워를 중대본으로 봐야 한다’는 말은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역할을 부정하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잘 조직돼 있지만 어떻게 쓰느냐는 리더십의 문제”라면서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오합지졸이 된다. 위기 상황에 공무원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사전에 준비하고 적재적소에 자원을 투입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게 바로 컨트롤타워다. 지금 이게 안 보인다. 그러니 재난 관리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송창욱 전 비서관도 “이번 사태는 재난 상황에서 행정주체 간 책임성 결여가 부실한 현장 관리로 이어져 발생한 인재”라면서 “재난 컨트롤타워 부실로 후진국형 참사가 반복되는 것은 결국 정부가 무능하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윤재관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도 “충북도와 충주시, 경찰 당국 등 누구도 유기적인 협조와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컨트롤타워 부재가 증명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작년 수해의 최대 피해는 반지하에서 발생했다. 이번엔 지하차도다. 지하라는 공간이 수해에 취약하다는 걸 모르는 국민이 있나. 장마 예보는 계속됐고 하천 주변 지하차도가 가장 위험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조치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국정 운영의 기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로 국민 희생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주무부처 장관의 부재도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정구 전 선임행정관은 “재난·안전의 주무장관이 장기간 공석으로 있는 것은 마치 국방부 장관을 계속 공석으로 두고 합참의장이 대신 일을 해도 괜찮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차관이 말하면 힘이 실리겠나. 이번 사태에서 컨트롤타워로서의 대통령의 역할이 더욱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사후 대처를 잘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송 전 비서관은 “오송 참사에 대해 국무조정실이 감찰에 착수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사불란하게 참사를 수습하는 게 우선”이라면서 “재난에 대응하고 복구에 총력을 다해야 할 때 일선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조치는 오히려 현장 대응 시스템을 붕괴시킨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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