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옥죄는 ‘킬러 규제’에 반도체·로봇 기업들 ‘사면초가’
  •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mw@sisajournal-e.com)
  • 승인 2023.08.01 10:05
  • 호수 176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부장’ 중장기적 경쟁력 강화위해 과감히 걷어내야”

최근 정부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이른바 ‘킬러 규제’를 없애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같은 움직임의 결과가 저마다 사정으로 사면초가에 처해 있는 기업들에 단비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업 규제 철폐 논의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재계에서 이번에 특히 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관련 논의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7월4일 윤석열 대통령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업인들의 투자 결정을 막는 결정적 규제, ‘킬러 규제’를 팍팍 걷어내라”며 규제 혁신을 지시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가 정기휴무로 닫혀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가 정기휴무로 닫혀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킬러 규제 팍팍 걷어내라”

이어 다음 날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관계부처와 대통령실, 경제단체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고 개선이 필요한 핵심 규제가 무엇인지 의견을 수렴했고, 7월14일 제2차 회의에서 개선이 시급한 ‘업종 규제를 비롯한 산업단지 입지 규제’ 등 ‘킬러 규제 톱15’ 과제를 선정했다.

김재현 한국경영자총협회 규제개혁팀장은 “현재 한국 경제 및 기업들의 저성장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규제 혁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이전과 달리 규제 개혁 추진 조직 및 부처가 많이 있고 국무조정실 차원에서 ‘킬러 규제’를 타파하겠다고 나선 만큼 이와 관련해 기대들을 품고 있다”고 전했다.

재계는 이 같은 움직임을 반기며 빠르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7월24일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제도개선 건의서’를 정부에 전달했다. 대통령 ‘킬러 규제’ 발언 이후 재계 단체의 건의서가 정부에 전달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0일이다.

특히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분야들의 경우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상헌 대한상의 규제혁신팀장은 “규제와 관련한 순위 등을 보면 객관적 수치로 봐도 우리 기업들이 불리한 상황에서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 만큼 공격적으로 규제 개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의 현재 및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사업 부문은 반도체와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두 분야는 전략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각국의 자국 산업 육성 및 지원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이 중 반도체의 경우 메모리 부문은 여전히 강자지만 비메모리 부문에선 경쟁국과 격차가 벌어지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에서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장 및 업계에선 TSMC가 지난해 3분기와 4분기, 올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반도체 매출 1위를 유지할 것으로 추정한다. 파운드리는 메모리와 달리 재고 문제 등에서 자유롭다.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올해 10조원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반도체 기술은 곧 국가 경쟁력 및 외교력으로도 이어지는 만큼 전략적으로 지원 및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선 생산시설 투자와 관련한 환경 규제, 투자세액 환급 관련 규제 등이 해결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중장기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부문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국내 반도체 대기업 규모에 비해 소부장 부문이 열악하다. 그렇다 보니 연구개발(R&D) 관련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소부장 R&D 부문 인재의 경우 선별적으로라도 정부 차원에서 임금 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며 “또 국내 지원자가 거의 없는 소부장 생산직은 해외 인력을 고용했다가 숙련될 때쯤 규제 때문에 다시 내보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생산성 향상을 위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반도체와 더불어 미래 먹거리로 여겨지는 로봇 분야에서도 소부장 지원에 대한 요구가 제기된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로봇 부문은 해외 부품 의존도가 큰데, 국내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부품 업체나 SI,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줄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해외 인력 규제 문제에 대한 호소는 특히 조선업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국내 조선 업계는 슈퍼사이클을 맞아 일감을 쌓아뒀지만, 정작 인력을 구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외국 인력 수요는 있는 상황인데, 고용 한도 등 규제에 막혀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경총에선 비전문 외국 인력 허용 및 특정활동 외국 인력 고용 한도를 상향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한 상태다.

아울러 업계에선 우선 ‘주 52시간’ 근무 예외 적용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한 조선 업계 관계자는 “인력 확보가 어려운 것을 감안해 유동적이고 우선적으로 해운 업계처럼 52시간 특례 허용이라도 해주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규제 개혁에 대한 기대가 커지자 케케묵은 규제 개혁과 관련한 목소리도 다시 한번 부각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형마트 의무휴업 관련 규제다. 해당 규제는 소상공인들에게 직접적 도움을 주는 효과도 의문이고 소비자 불편만 가중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동안 계속 유지돼 왔다. 이와 관련한 법안인 유통산업발전법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휴일엔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 배송 서비스를 더 이용하는 것으로 안다”며 “온라인 서비스와 비교해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력한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7월4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업 투자 결정 막는 ‘킬러 규제’를 걷어내라”고 주문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따로 규제도 문제”

재계에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규제 개혁 논의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입 모아 말한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세계적으로 상법 등 일반 법을 적용해 해결할 수 있음에도 공정거래법상 따로 대기업집단을 규제하는 곳은 없다”며 “과거 불투명한 시대에 하던 제도를 지금도 하다 보니 한국이 규제 체감도가 세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시장규제지수(PMR)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5년간 조사 대상 38개국 중 상위 9위 내에 포함됐다.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확보뿐 아니라, 해외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규제 해결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하는 데 법인세, 노동 비용 등이 문제가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며 “환경 규제 완화도 필요하고, 특히 산업단지가 조성될 때 일단 반대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럴 경우 정부가 적극적 조율자로서 역할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