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바통 이어받은 ‘초전도체’, 혁신? 거품?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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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체 테마주’ 묶였다 하면 ‘상한가’
학계선 ‘반신반의’…“투자 유의해야”

“우리는 세계 최초로 상온, 상압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LK-99) 합성에 성공했다.”

지난달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실린 한 논문의 이 글귀가 전 세계 과학계를 들썩이게 했다. ‘꿈의 물질’로 불리는 초전도체가 기존의 극저온‧초고압 상태가 아닌 보통 온도와 보통의 기압 환경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면, 산업혁명에 준하는 개발 성과이기 때문이다. 해당 연구를 진행한 이들은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으로, 모두 한국인이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선 초전도체로 바뀔 미래 사회의 모습을 공유하며 기대감을 한껏 부풀리는 모습이다. 특히 신기술 개발 소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주식시장도 들썩였다. 최근 2차전지 열풍으로 ‘광기’ 수준을 보였던 시장의 초점은 이제 초전도체로 옮겨 붙은 분위기다. 다만 국내 연구진의 논문이 아직 학술적으로 완벽히 검증된 게 아니어서, 기대와 함께 경고음도 동시에 울리고 있다.

상온·상압 환경에서 초전도체를 구현할 수 있다고 발표한 국내 연구진의 논문이 전 세계 과학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가 해당 논문과 관련해 비평한 글 ⓒ 사이언스 홈페이지 캡처
상온·상압 환경에서 초전도체를 구현할 수 있다고 발표한 국내 연구진의 논문이 전 세계 과학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가 해당 논문과 관련해 비평한 글 ⓒ 사이언스 홈페이지 캡처

‘초전도’ 스치기만 해도 ‘폭등’…“테마주 투자 유의”

2일 국내 주식 시장에선 ‘초전도체 관련주’가 줄줄이 상한가를 쳤다. 초전도 선재 제조 기술을 보유한 서남은 전날에 이어 이날 개장 직후에도 상한가를 쳤다. 이밖에 ‘초전도체 테마주’로 묶인 신성델타테크, 파워로직스, 덕성, 고려제강, 서원 등도 상한가를 기록했거나 상한가에 준하는 급등세를 보였다.

초전도체 관련주는 국내 연구진의 초전도체 논문 등재 소식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지난달 22일 이후로 본격적으로 상승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서남은 당시 주가와 비교하면 약 일주일 만에 주가가 3배 폭등했다. ‘초전도체 테마주’로 묶였다 하면 주가가 고공행진 하는 흐름이다.

현재 상한가에 준하는 폭등세를 기록한 종목 가운데 신성델타테크와 파워로직스는 퀀텀에너지연구소의 지분을 보유한 엘앤에스 벤처캐피털의 지분을 보유한 업체이고, 덕성과 고려제강은 과거 초전도체 사업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실 등이 알려진 업체다. 또 이번 초전도체가 구리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리 관련주인 서원의 주가도 폭등했다.

문제는 초전도체와 별 관련이 없는 종목들도 변동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번 논문을 발표한 것은 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진인데, 초전도체와는 관련 없는 ‘퀀텀코인’이 5% 이상 상승하는 식이다. 각 종목 토론방에선 “초전도체와 직접 관련 없이 ‘스치기만 해도’ 폭등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에 초전도체 관련주에 ‘투자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서남을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하며 투자 주의를 당부했다. 이외 신성델타테크, 덕성, 모비스, 원익피앤이 등에 변동성 완화장치(VI)를 발동했다. VI란 개별 종목의 체결 가격이 일정 범위를 벗어날 경우 주가 급변 등을 완화하기 위해 냉각 기간을 두는 가격 안정화 장치다.

국내 연구진의 초전도체 'LK-99' 개발 소식에 초전도체 관련주가 큰 주목을 받으며 2일 일제히 상승했다. ⓒ 연합뉴스
국내 연구진의 초전도체 'LK-99' 개발 소식에 초전도체 관련주가 큰 주목을 받으며 2일 일제히 상승했다. ⓒ 연합뉴스

정식 논문 게재 아냐…‘꿈의 물질’ 논란은 현재진행형

국내 연구진의 논문을 두고 학계 일각에선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는 지난달 27일 이번 논란과 관련해 “논문의 세부 사항이 부족해 물리학자들이 회의감에 휩싸여 있다”고 전했다. 사이언스지 논평에 인용된 마이클 노먼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연구진을 ‘아마추어’라고 지칭하고는 “연구진이 초전도성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고 데이터 제시 방식도 수상하다”고 평가했다.

현재 각국의 연구진들은 국내 연구진이 공개한 초전도체 물질 LK-99 제조 ‘레시피’를 토대로 이를 검증하려는 시도에 돌입했다. 이 가운데 지난달 31일 미국의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가 가장 먼저 “LK-00의 구조를 시뮬레이션 한 결과 이론적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는 실제 실험이 아닌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라는 점에서, 학계의 의구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결국 다른 연구진이 LK-99 실험을 재현할 수 있는지에 따라 진위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퀀텀에너지연구소 등 국내 연구진은 일부 언론에 “조만간 정식 논문을 발표하고 학계와 언론을 상대로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냈다.

한편 ‘꿈의 물질’이라 불리는 초전도체는 전기 저항을 0으로 만들 수 있는 물질이다. 전기 저항이 사라지면 내부 자기장만으로 공중에 뜰 수 있게 돼 자기부상열차나 핵융합 발전 등을 실현시킬 수 있다. 그동안 영하 200도 이하의 초저온 등 극한 상황에서만 초전도체 구현이 가능했는데, 국내 연구진은 127도 이하 상온과 강한 기압을 가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상온에서 초전도체가 구현되면 상용화가 빨라져, 꿈에 그리던 미래형 도시를 구현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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