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회장, 쉰들러와의 ‘20년 악연’ 떨치기 위해 지주사 전환하나
  • 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romancer@sisajournal-e.com)
  • 승인 2023.08.08 07:35
  • 호수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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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매각한 이유
사모펀드 H&Q와 손잡고 대출 상환 및 지주사 전환 준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7월28일 자기 명의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319만6209주(7.83%)를 모두 가족회사인 현대네트워크에 매각했다. 매매금액은 총 1580억원 규모다. 이 거래를 통해 현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은 7.83%에서 0%가 된 반면, 현대네트워크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은 10.61%에서 19.26%로 높아졌다. 현 회장이 지난 4월 M캐피탈로부터 연 이자율 12%, 4개월 만기로 2300억원을 대출받을 당시 현대엘리베이터 보유 주식에 설정됐던 질권 역시 해제됐다. 대신 현대네트워크가 현 회장이 M캐피탈과 맺은 대출의 담보를 승계했다.

현 회장은 이번 거래로 그룹 지배구조를 현정은→현대네트워크→ 현대엘리베이터로 단순화하면서 지주사 전환을 위한 기초 작업도 마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엘리베이터 지주사 전환은 20년 넘게 경영권을 노리고 있는 2대 주주 쉰들러로부터 현 회장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 회장이 지주사 전환으로 쉰들러와 지긋지긋한 악연을 끝낼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현대엘리베이터 제공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가운데)이 7월21일 조재천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오른쪽)와 충주 스마트 캠퍼스 제1공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제공

현정은 회장과 쉰들러의 악연

시곗바늘을 2014년으로 돌려보자. 현 회장은 당시 현대상선(현 HMM)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재무적투자자(FI)들과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체결했다. 우호 지분을 보장하는 대신 현대상선 지분 인수 가격보다 주가가 하락하면 손실을 보전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해운업 불황에 현대상선 주가가 급락하면서 모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FI들의 손실을 보상해야 했다. 2대 주주였던 쉰들러는 2014년 현 회장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지난 3월말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연이자까지 합치면 2700억원에 달한다. 현 회장은 2019년 2심 판결 후 선수금으로 1000억원을 현대엘리베이터에 납입하고 법원에도 200억원을 공탁했다. 지난 3월말 대법원 판결 이후 현 회장은 잔여 배상금을 납부하기 위해 현물과 주식담보대출을 활용했다. 현 회장은 본인 명의 현대무벡스 주식 2475만 주를 모두 현대엘리베이터에 넘겨 약 863억원을 갚았고 자신이 가진 현대엘리베이터 주식과 현대네트워크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담보로 M캐피탈로부터 2300억원을 대출받아 배상금을 모두 납부했다. M캐피탈로부터 받은 주식담보대출 만기일은 8월11일이다. 국내 사모펀드 H&Q가 현대네트워크에 투자를 집행하면 현대네트워크는 M캐피탈 대출을 상환할 예정이다.

쉰들러는 지난 3월말 대법원의 확정판결 직후 현 회장 지분을 상대로 강제집행을 실시해 경영권을 탈취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쉰들러는 대법원 확정판결 직후 곧바로 강제집행을 신청했는데 현 회장이 M캐피탈로부터 받은 대출금으로 강제집행문 발부 전에 손해배상금을 모두 납부하면서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쉰들러는 포기하지 않았다. 쉰들러는 6월21일부터 7월25일까지 수차례에 걸쳐 현대엘리베이터 보유 지분을 일부 매도하고 이를 공시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를 끌어내리려고 했다. 이를 두고 현 회장이 대규모 주식담보대출을 받았기에 주가를 급락시켜 반대매매를 유도하려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이에 맞서 자사주 매입 등으로 주가 부양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쉰들러의 시도는 무위로 끝났다.

쉰들러는 1874년 설립된 세계 2위 엘리베이터 회사로 20년 전부터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 현 회장이 2003년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 측과 경영권 분쟁을 벌일 당시 현대엘리베이터는 쉰들러를 백기사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KCC 측이 5% 이상 지분을 확보하면 이를 공시해야 한다는 ‘5%룰’을 어기고 몰래 지분을 매입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법원은 KCC에 의결권 무효 결정을 내렸고 현 회장은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6년 쉰들러는 KCC로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5.5%를 전격 매입해 2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발톱을 드러냈다. 쉰들러는 이후 현 회장에게 현대엘리베이터 매각을 수 차례 종용했으나 현 회장은 매번 거절했다. 현 회장과 쉰들러의 계속되는 갈등에 감정적 골은 갈수록 깊어졌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에 따르면 국내에 설치된 승강기 대수는 지난해 80만 대에 달하며 신규 승강기 설치 기준 세계 3위, 누적 승강기 설치 대수 기준 세계 7위의 시장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시장 점유율 40%의 1위 업체다. 쉰들러는 중앙엘리베이터를 인수해 국내 법인 쉰들러엘리베이터를 세웠지만 현재 국내시장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현 회장이 지분을 현대네트워크에 매각하면서 지배구조를 단순화한 것을 놓고 지주사 전환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대네트워크는 현재 인적 분할을 추진하고 있다. 통상 인적 분할은 지주사 전환을 위한 과정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현대홀딩스컴퍼니’라는 상표도 이미 출원한 상태다. 지주사 전환을 위해 인적 분할을 하면 자사주의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통상 이를 ‘자사주의 마법’이라고 부른다. 현대엘리베이터는 1분기 말 기준 172만2806주의 자사주를 가지고 있었다. 지분율로는 4.22%에 해당한다. 이후 5월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공시하고 자사주를 235만4981주(6.0%)로 늘렸다. 이어 7월6일에도 3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현대그룹 “지주사 전환 결정된 것 없다”

향후 현대엘리베이터를 인적 분할한 다음 현대홀딩스컴퍼니와 합병한다면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자사주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8월1일 기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5.14%를 들고 있는 쉰들러와의 지분율 격차를 확연하게 늘릴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지주사 전환을 위한 과제도 만만치 않다. 일단 자산 규모가 걸림돌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전환은 자산 규모가 5000억원 이상이어야 가능하다. 현대네트워크 자산 대부분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이고 금액으로는 3000억원 수준이다. 현 회장은 지난 6월 백기사로 사모펀드 H&Q를 선택했다. H&Q는 과거 일동제약 경영권 분쟁 등 국내 재계에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H&Q는 현대네트워크에 전환사채(CB)와 구주, 교환사채(EB)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약 31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향후 H&Q 투자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지주사 전환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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