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그룹 복귀 앞둔 전경련, 류진 차기 회장에 쏠리는 눈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7 15:43
  • 호수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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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정의선 등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
방위산업 기반 풍산그룹, 韓·美·日 외교·안보·경제의 ‘보이지 않는 중심’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국내 4대 그룹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재가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4대 그룹 복귀와 조직 쇄신, 위상 회복 등 대형 과제들을 짊어진 전경련에 지금 절실한 것은 강력한 리더십이다.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이 표면적으론 조직을 이끌고 있지만, 벌써부터 무게추는 조만간 선임될 차기 회장 쪽으로 옮겨간 모습이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앞줄 왼쪽부터)이 4월25일 워싱턴DC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미국 기업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풍산 회장, 막역한 총수들과 긴밀 소통 중 

전경련은 8월7일 보도자료를 통해 차기 회장으로 류진 풍산그룹 회장(65)을 추대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류진 차기 회장 내정자는 글로벌 무대에서의 경험, 지식, 네트워크가 탁월한 분으로, 새롭게 태어날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글로벌 싱크탱크이자 명실상부 글로벌 중추 경제단체로 거듭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해줄 적임자"라고 내정 배경을 설명했다. 전경련은 8월2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임시총회를 연다. 총회 안건은 한경협으로의 기관명 변경과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흡수 통합, 차기 회장 선임 등이다. 새로운 수장이 이미 정해졌기에 관건은 조직 개편을 기점으로 4대 그룹 복귀가 이뤄질지 여부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전경련은 지난달 초 류 내정자를 차기 회장으로 낙점하고, 그를 중심으로 한 새판 짜기에 돌입했다. 전경련은 7월4일 한경연 해산과 전경련으로의 흡수 통합 등 정관 변경 안건을 의결한 데 이어 7월19일 새롭게 출범할 한경협 가입 요청 공문을 4대 그룹에 보냈다. 전경련이 4대 그룹에 공식적으로 재가입을 요청한 것은 처음이다. 전경련과 4대 그룹의 의사 결정자들 간에 사전 조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조치라고 재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4대 그룹에서는 전경련 복귀와 같은 중대한 사안을 당연히 총수가 결정한다. 전경련의 경우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이 아닌 류 내정자가 한 달째 의사 결정자 역할을 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김 직무대행보다 류 내정자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과 긴밀히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류 내정자는 (손아래인) 이재용 회장, 정의선 회장과 오래전부터 ‘형님’ ‘동생’ 해왔을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며 “(4대 그룹 중) 1·3위 그룹 총수들의 확실한 지지를 받는다는 점이 차기 회장으로 낙점된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풍산이 현재 (자산 5조원 미만의)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점을 고려하면 류 내정자의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으나, 이는 피상적인 접근이다. 류 내정자는 고(故) 류찬우 풍산 창업자의 2남2녀 중 차남이다. 소전(素錢·액면가 등이 없는 원형 상태의 동전)과 탄약 제조가 주력 사업인 풍산은 ‘동전과 총알의 왕국’으로 불린다. 1970년 한국조폐공사로부터 주화용 소전 제조업체로 지정되면서 급성장했다. 아울러 1973년 박정희 정권의 지원을 등에 업고 민간기업으로는 처음 방위산업에 뛰어들어 우리 군이 사용하는 탄약의 95%를 국산화했다. 

 

굴지의 재벌 부럽잖은 명문家 

류찬우 창업자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류성룡 선생의 12대손이다. ‘나라를 구한’ 데 더해 대를 이어 국토 방어에 기여하는 가문이라는 자부심은 풍산가(家)를 그 어떤 재벌가와 비교해도 기죽지 않게 해줬다. 류 창업자는 생전에 “서애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주국방에 앞장서고자 풍산을 세웠다” “선조에 누가 되는 일을 절대 해선 안 된다”고 되뇌었다. 회사 이름 풍산도 본관인 풍산 류씨를 따서 지은 것이다. 

류 창업자의 경영과 인생 철학은 2세인 류 내정자에게 고스란히 계승됐다. 류 내정자는 군사, 행정,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류성룡 선생의 뒤를 이으려는 듯 남다른 이력을 쌓아갔다. 재일 미국인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일본 아메리칸고를 졸업한 게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류 내정자는 일본어와 영어를 동시에 습득하고 끈끈한 해외 네트워크도 구축하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학부를 서울대 영문학과에서 마친 다음에는 미국 다트머스대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류 내정자의 혼맥도 화려하다. 류 내정자의 부인 노혜경씨는 고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딸이다. 노 전 총리의 장남 노경수 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딸 정숙영씨와 결혼했다. 차남 노철수 애미커스그룹 회장의 부인은 고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딸인 홍라영 전 삼성미술관 리움 총괄부관장이다. 홍라영 전 총괄부관장은 고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의 동생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이모다. 

1982년 6월 풍산에 입사해 1999년 11월24일 류 창업자 별세 후 경영권을 이어받은 류 내정자는 한국과 미국, 일본을 넘나들며 재계는 물론 정·관계, 스포츠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미치는 재계 대표 마당발로 우뚝 섰다. 특히 방위산업과 긴밀히 맞닿아 있는 미국 내 인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15년 초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인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를 인천 송도에 유치한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10년 전 프레지던츠컵 때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커미셔너(최고 책임자)를 소개해줘 친분을 쌓았고, 그게 국내 개최로 이어졌다”면서 “아버지 부시(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과 1년에 두 번은 함께 식사하고 아들 부시 전 대통령과는 1년에 대여섯 번 본다”고 밝힌 바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 앞에 놓여 있는 표지석 ⓒ시사저널 박정훈

한·미·일 아우르는 화려한 경력과 인맥 

류 내정자는 기본적으로 부시 부자(父子) 같은 미 공화당 인사들과 각별한 가운데 민주당, 거대 방위산업체 등 다른 집단에도 숱한 조력자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번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대미 외교에서 두루 핵심 가교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동안 류 내정자가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쓰임 받은 사실은 전경련을 둘러싼 정치색 논란도 완화시킬 수 있다. 이런 점 또한 4대 그룹 총수들이 류 내정자를 지지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다만 류 내정자 입장에서 전경련 회장직은 결코 선뜻 맡겠다고 자처할 수 없는 부담스러운 자리다. 실제 류 내정자의 수락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올해 초 전경련 회장후보추천위원장 겸 미래발전위원장으로 선임된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은 류 내정자를 비롯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LS 이사회 의장), 박정원 두산 회장 등을 두루 만나 차기 회장직을 제안했다. 가뜩이나 회장감으로 꼽히는 인물이 적은데, 모두 고사의 뜻을 밝혀 회장 인선 작업은 난항에 빠졌다. 정작 이웅열 명예회장도 일찌감치 해당 제의를 거절한 상태였다. 재벌 총수들이 워낙 전경련 회장직을 부담스러워하다 보니 결국 임시로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 체제가 출범할 수밖에 없었다. 

4대 그룹 복귀 이슈에 대한 일부 전경련 회원사의 따가운 시선도 차기 회장 후보군을 위축시켰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정경유착 프레임이 고착화한 탓에 전경련 회원사는 600여 개에서 420여 개로 쪼그라들었다. 전경련 회원사인 재계 20위권 대기업의 한 고위 임원은 “국정농단 사태 때 무거운 혐의를 받은 4대 그룹이 꼬리 자르듯 전경련에서 탈퇴하고 잔류 회원사들만 힘겹게 뒷수습을 감당해야 했다”며 “4대 그룹이 선제적으로 전경련에 돌아와 쇄신을 주도해도 모자랄 판에 우리가 이들에게 복귀해 달라고 읍소하는 건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비판과 우려, 기대감이 혼재하는 가운데 주사위는 던져졌다. 류 내정자의 차기 전경련 회장직 수락이 독배가 될지 성배가 될지는 4대 그룹 복귀 이후 상황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 프로필 

△1958년 3월5일 경상북도 안동 출생 △1976년 4월 일본 아메리칸고 졸업 △1983년 2월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1985년 미국 다트머스대 경영학 석사 과정 수료 △1982년 6월 풍산금속 입사 △1996년 3월 풍산 대표이사 부사장 △1997년 3월 풍산 대표이사 사장 △1997년 3월 한미경제협의회 부회장 △1997년 5월 대한상의 상임위원 △1999년 2월 미국 LA 다저스구단 특별상담역 △1999년 12월 서애기념가업회 이사장 △2000년 4월~ 풍산 대표이사 회장 △2000년 5월 전경련 국제협력위원회 위원 △2001년 2월 전경련 부회장 △2001년 3월 OECD 경제산업자문기구 한국위원회 위원장 △2004년 5월 OECD 경제산업자문위원회 이사회 회장 △2005년 3월 한국무역협회 비상근 부회장 △2008년 2월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2011년 2월 APEC 기업인자문기구 한국위원 △2015년 2015프레지던츠컵조직위원회 위원장 △2020년 11월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이사회 이사 △2023년 4월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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