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보다 러시아’ 챙긴 김정은…러 국방장관에게 北 무인기 직접 소개
  •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5 10:05
  • 호수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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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戰 ‘무기 지원’ 놓고 ‘韓-서방 vs 북-러’ 구도 펼쳐지나

7월27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양옆에는 베이징과 모스크바에서 온 축하 사절이 함께했다. 2월 군 창건 기념 군사 퍼레이드 때 김정은이 딸 주애를 앉혔던 자리를 중·러 대표단이 차지한 것이다.

북한 아나운서가 먼저 소개한 건 리훙중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아닌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었다. 러시아어 통역까지 제공돼 장내방송을 통해 전달됐다. 이 자리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 전문도 소개됐다. 행사 내내 김정은의 시선은 쇼이구 장관 쪽에 머물렀다.

전통적으로 중국을 더 예우하던 관행이 깨진 건 이뿐만이 아니다. 김정은은 열병식 하루 전에 쇼이구 장관 일행을 노동당 본부청사 내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별도로 접견했다. 리훙중 일행을 축하공연장에서 약식으로 접견한 것과 차이가 난다.

북한이 ‘전승절’ (6ㆍ25 전쟁 정전협정기념일) 70주년인 7월27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김정은 국무위원장, 리훙중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중앙통신 연합

쇼이구 러 국방장관·리훙중 中 부위원장 참석

김정은이 방산 마케터가 된 듯한 모습도 연출됐다. 쇼이구 장관 일행과 무장장비 전시장을 찾은 김정은은 북한이 개발한 무기체계를 하나하나 설명하며 공을 들였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은 물론 미국의 고고도 무인정찰기 RQ-4 글로벌호크와 무인공격기 MQ-9 리퍼를 카피한 새 항공무기 체계도 이 자리에서 처음 공개됐다.

주목되는 건 북·러 국방장관 회담이다. 북한은 쇼이구 장관의 평양 도착 때 순안공항 활주로에 강순남 국방상과 총정치국장 정경택, 총참모장 박수일 등 군부 핵심 3인방이 총출동하는 파격 예우를 하며 공을 들였다. 강 국방상과 쇼이구 장관이 참석한 회담에서는 “호상 관심사로 되는 지역 및 국제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완전한 견해일치를 봤다”는 게 북한 관영 선전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맥상 쇼이구 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협력을 주축으로 한 밀착관계를 구축했을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수행 중인 상황에서 국방장관이 푸틴의 친서를 들고 평양을 찾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군사 문제, 특히 돌파구 마련이 필요한 우크라이나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뭔가 다급한 현안이 있지 않다면 쇼이구 장관의 방북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공교롭게도 쇼이구 장관 일행이 평양 체류 일정을 마치고 귀환한 이튿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군이 북한제 122mm 다연장로켓(MLRS) 포탄을 사용하고 있는 사실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북한군이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때 사용했던 것과 동종인 이 포탄은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하려던 것으로, FT는 우크라이나에 ‘우호적 국가’ 측에서 도중에 압수해 우크라이나에 공여한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에는 MLRS의 북한식 표현인 방사포 포탄임을 의미하는 ‘방-122’라는 한글 표식이 적혀 있다. 이 로켓탄은 러시아 측이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구소련제 그라드(BM-21)에 장착해 발사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같은 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에 쓸 무기를 절박하게 찾고 있다”면서 쇼이구 장관의 방북을 “무기 확보 차원”이라고 단언했다.

물론 북·러는 이런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백악관이 지난해 11월과 올 1월 러시아 용병 바그너그룹이 철도를 이용해 북·러 접경지역에서 북한제 무기를 실어 나르고 있다고 위성사진까지 공개했지만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쇼이구 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김정은까지 전면에 나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이는 모습이 드러나자 포탄 등 재래식 무기 지원 차원을 넘어서는 은밀한 거래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서울 외교가와 군사전문가 사이에서 나온다. 김정은이 무기 전시장까지 쇼이구 장관을 안내해 자체 개발한 무인공격기까지 브리핑하고 나선 건 한미에 이를 과시하려는 차원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제공 의사를 드러낸 것이란 얘기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게임체인저 모습을 보이고 있는 드론 무기에 착안한 김정은이 자신들의 무인공격기를 내세워 푸틴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다. 방종관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전력개발센터장은 “북한 무인공격기가 미 리퍼와 외관상 유사하지만 고도나 체공시간, 장착된 무기체계 등에서 현저하게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사정이 다급한 러시아 입장에서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이번 열병식에서 연설이나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서울과 워싱턴을 향해 거친 도발적 발언을 쏟아내거나 주민들에게 경제난 극복 등 대내 메시지를 전하던 과거의 모습과 달랐다. 열병식에 등장한 무기도 이전처럼 백화점식으로 줄줄이 달고 나오는 형태가 아니라 화성-18형 ICBM 등 간판급으로 최소화 했다. 

그러면서도 가장 내세우고 싶었을 법한 무인공격기 여러 대를 부각시켰다. 조선중앙TV는 자료영상까지 편집해 무게를 실었다. 북한은 미군이 보유한 RQ-4 글로벌호크와 MQ-9 리퍼의 외관뿐 아니라 이름까지 ‘새별-4’와 ‘새별-9’로 그대로 모방했다. 김정은에게는 “미국제를 본뜬 짝퉁무기 아니냐”는 뒷말에 신경 쓰기보다 미국과 맞상대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게 더 다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우크라이나전을 계기로 세계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K방산’과 관련해 경쟁적 심리를 드러내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년 넘는 집권 기간 동안 양자·다자 정상회담과 주요 7개국(G7) 및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등을 계기로 벌인 외교활동의 중요한 한 축이 방산 마케팅이었다는 점을 의식했다는 설명이다.

 

김정은, 푸틴 찾아 정상회담 가질 가능성

일각에서는 내친김에 김정은이 모스크바나 블라디보스토크를 전격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급속하게 밀착하고 있는 북·러 관계를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좀 더 통 큰 대러 전쟁 지원 방안을 직접 논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직접적인 전투병 파견은 아니더라도 지원 병력이나 제공된 북한제 무기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고문단 파견도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전쟁 복구 현장에 북한 근로자를 파견하는 문제도 김정은으로서는 북·러 친선을 다지고 외화벌이도 챙길 수 있는 일거양득의 카드일 수 있다.

북·러 밀착과 무기 제공은 자칫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남북이 맞대결을 펼치는 양상으로 번질 공산도 있다. 윤 대통령은 7월15일 키이우를 직접 방문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살상무기를 제외한 지뢰 제거 장비나 방탄복 등 물자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부인하지만 미국이 한국군이 생산·보유한 155mm 포탄을 우회지원(한국→미국→우크라이나) 방식으로 사실상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상당수 무기를 비밀리에 러시아군과 바그너그룹에 제공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김정은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설 경우 남북 간에 이를 둘러싼 갈등과 신경전은 물론 미묘한 기류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NK-방산’ 마케터를 자처하고 나선 김정은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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