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B는 없다”지만 짙은 안개 속에 갇힌 아시아나합병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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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경쟁당국 심사 지지부진…‘제3자 매각설’ 불거져
“컨설팅 용역, 3자 매각과 무관” 산은 해명에도 의구심 증폭
한진칼, 사옥 팔며 2642억 확보…경영권 강화 포석?
인천국제공항에 계류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에 계류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속도가 지지부진하다. 두 회사의 기업결합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등 해외 경쟁당국으로부터 좀처럼 낭보가 전해지지 않는 탓이다. 이런 가운데 제3자 매각설까지 불거지면서 3년 넘게 끌고 있는 합병 작업에 먹구름이 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최근 한진칼이 서소문사옥을 대한항공에 매각한 것을 두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선제적으로 나선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에 대해 여전히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지난 8월3일은 EU 집행위원회의 합병 승인 여부 발표가 예정된 날짜였다. 하지만 지난달 갑작스레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심사 종료 기한을 10월로 미룬 바 있다. 현재 EU 집행위는 유럽경제권(EEA)과 한국 간 여객·화물운송 서비스 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될 수 있다고 보고 대한항공에 시정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DOJ) 역시 대한항공에 “독점을 해소할 경쟁 항공사가 없으면 합병 승인이 어렵다”고 통보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제3자 매각설’이 최근 불거졌다. 산업은행이 합병 무산에 대비해 아시아나항공 안정화 방안 컨설팅 용역을 발주해 제3자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산은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산은은 지난 7일 보도자료를 통해 “삼일회계법인이 현재 수행 중인 용역은 아시아나항공이 포스트 코로나 시기 항공 시장 변화에 대비해 자금수지 점검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며 “해당 용역은 제3자 매각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산은은 줄곧 합병 무산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 6월 강석훈 산은 회장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한진칼 지분 처분 계획을 포함해 무산 이후에 대해 대비할 게 아니라 합병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합병 무산에 대비한) 플랜B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최근 한진칼이 연이어 자금 확보에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진칼은 지난 3일 공시를 통해 대한항공에 서소문사옥 건물과 토지 일부를 매각했다고 알렸다. 매각가는 2642억원, 사유는 유동자금 확보다. 한진칼은 지난 4일에는 240억원 규모의 사모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지난 4월10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프로배구 2022-2023 V-리그 시상식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겸 한진그룹 대표이사(한국배구연맹 총재)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10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프로배구 2022-2023 V-리그 시상식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겸 한진그룹 대표이사(한국배구연맹 총재)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합병 여부에 산은의 한진칼 지분 10.58% 행방 달라져

한진칼이 잇따라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일각에선 합병 무산 이후를 내다보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확보한 자금 규모가 올해 만기 채무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남은 유동성을 경영권 강화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산업은행이 양사 합병을 위해 한진칼의 유상증자에 뛰어들면서 10.58%의 지분을 갖고 있다. 지분 확보를 위해 투입한 자금만 8000억원이다. 만약 인수가 무산된다면 산은은 한진칼 지분을 보유할 명분이 사라진다.

해당 지분을 처분할 경우 급한 쪽은 조원태 한진칼 회장 측이다. 조 회장은 19.79%로 최대주주이지만 친족과 재단 등의 지분을 모두 합친 것으로 조 회장의 순수 지분은 5.78%에 그친다. 경영권 분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사옥 매각 등을 통해 여유 자금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조 회장은 지난 6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은 성사될 것이며 우리는 여기에 100%를 걸었다”며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이든 간에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합병 성사에 강한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대한항공은 2020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2년여 동안 국내·외 법률 비용 등 자문료로 1000억원 정도 투입했다. 미국에서 사용한 로비자금도 7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사활을 걸고 승인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산은과 한진칼의 최근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기업결합심사가 막바지로 가고 있는 가운데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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